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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시지푸스 Apr 04. 2019

에로스: 미친 사랑에 대하여

- 사랑의 세 가지 이름: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1)

사랑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미친 사랑'을 이성적으로 고찰한다고 하면 더더욱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바로 그런 시도의 산물이다. 필자가 이 위험천만하면서도 매혹적인 감정을 붙잡고 숱한 날들을 씨름해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얻은 작은 깨달음들을 이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사랑의 감정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손에 잡게 되는 것은 아마도 아름다운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시집이거나 소설일 것이다. 바쁘고 여유가 없어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연인끼리 느끼는 절절한 사랑을 묘사한 영화나 드라마를 선호할 것이다. 종교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이들은 성서나 불경 등의 종교 경전이나 그와 관계된 종교서적을 찾아 읽게 될 것이다. 반면 사랑에 대해 알고 싶고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싶어 철학서적을 읽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므로 이성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며 따라서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오직 예술적 표현의 대상이거나 윤리적 혹은 종교적 실천의 덕목일 뿐이라는 생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선지 종교나 예술과는 달리 철학의 오랜 역사를 통틀어 사랑을 자기 사상의 핵심으로 제시한 학자는 거의 없다. 사랑은 신비의 영역에 속하며 따라서 학문적 성찰의 대상이 될 수 없거나,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중심에 위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전원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Amor vincit omnia.) 참 멋진 말이다. 사랑의 이렇듯 엄청난 능력에 대한 찬사는 이외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위대한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심지어 사랑은 기독교의 덕목 중에서도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공자도 유교의 핵심원리인 인(仁)이 무엇인가 제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어질다는 것은 곧 인간을 사랑하는 것”(仁者愛人)이라 대답했다. 사랑은 인간이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잘 가꾸고 키워나가야 할 감정인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처럼 많은 사람들은 사랑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람들은 너무나도 사랑한다. 실연의 상처가 엄청나게 커서 사랑을 증오하기에 이른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 사랑한다는 말인 걸 보면 사랑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 헤맨다. 거의 모든 문학이나 예술 작품들이 사랑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매우 소중한 감정이라 생각해서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고백하지 못한 사랑에 대해 상담을 구할 때는 물론이고 누군가와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렇다. 고통과 슬픔, 좌절을 안기는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면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누구나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보려는 순간 이 단어가 지니고 있던 당연함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만다. 또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 단어는 같지만 내용은 다른 경우가 아주 많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과 연인끼리의 사랑은 분명 다르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도 사랑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종교적 사랑은 이런 사랑들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신에 대한 사랑, 이웃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 같은 뜻을 지닐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경우에 똑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혼란을 겪거나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끼고 어떨 때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어쩌면 사랑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서양의 경우 사랑의 이렇듯 서로 다른 특징들을 구분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이 바로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라는 개념이다. 에로스가 광기에 이를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 종족 보존의 본능, 성욕, 연애감정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던 반면, 필리아는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 사이의 정이나 친구 간의 우정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아가페는 모든 인간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나 신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주로 살펴보게 될 사랑은 종종 미친 사랑이라고도 불리는 에로스다. 나머지 두 사랑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빌려 계속 다룰 수 있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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