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을 공부하면 많은 성찰을 얻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정규분포다. 왜 갑자기 정규분포 이야기를 하냐면, 뭐랄까, 가운데, 중간, 중용... 이걸 이야기하고 싶어서랄까.
이 세상은 불규칙적 규칙, 혹은 규칙적 불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는 분명 극단에 치우쳐 있겠지만 대부분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중앙에 모여 있다. 이걸 시간의 흐름에 대입하면 '정반합'이라는 균형이 만들어진다.
정반합. 드라마를 공부할 때도 배우는 철학적 개념인데, 이 세상 모든 것은 반대쪽에도 균등한 무게가 있고 이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초월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미래를 예측할 때 사람들의 예상은 대부분 극단에 치우친다. 누군가는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극히 위태로운 작업환경에서도 사고 날일 없다며 안일하게 굴어대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모두 아무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그 중간의 어디 쯤 위치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박이 나지도 않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는 사고를 당하거나 대박이 터져 부자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가 처음 나왔을 때 대부분의 예측 역시 비관과 낙관에 치우쳤다. 나 같은 낙관론자는 두어달 지나면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고 끝이 날거라고 봤고,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몇년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 중간 쯤 어디다. 분명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이 감염되고 수십만명이 사망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치료제나 백신은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매일같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 역시 그 중간 어디쯤이다. 처음에는 감염 확산과 사망자가 공포스러워졌지만 사람들은 어느새 익숙해진다. 병이 무섭다고 계속 폐쇄정책을 펴면 결국 굶어 죽게 된다. 이러나 저러나 죽는 건 같으니 이제는 그 중간쯤 어딘간의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방역 전문가들은 이걸 뉴 노멀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세계 경제 이후의 달라진 상황을 뜻하는 말인데, 이번 코로나 역시 그렇게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일상속에서 최대한 방역 수칙을 준수하면서, 그러다 운 나쁘게 병에 걸리면 걸리는 대로 대처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극단적인 비관도, 그렇다고 극단적인 난관도 아니다. 딱 그 중간 어느 지점의 타협점이다.
세계는 이제 뉴 노멀의 시대가 되었다. 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무서워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집 안에 있었다면, 이제는 사람이 죽으면 죽는대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마치 에이즈가 처음 나왔을 때는 걸리면 무조건 죽는, 극복 불가능한 불치병처럼 여겨지며 인류는 에이즈로 멸망할 거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약만 먹으면 평범하게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된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은 그런 감염의 위험속에서 다시 전과 같은 일상으로 복귀가고 있다. 세계가 멸망할 것 같았던 세계 전쟁속에서도 그랬듯, 코로나라는 감염병의 창궐 속에서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