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업무 경험이 1도 없던 디린이(?)의 빅테크 디자인 인턴십 경험기
학교에 프로젝트하러 가는 길에 받은 메일 한 통. 수많은 탈락메일과 고스팅으로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에 시달렸는데 M사의 프로덕트 디자인 인턴십 오퍼를 받았다. 디자이너로 일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한 번에 빅테크 인턴십 오퍼라니. 사실 한 이틀 간은 정말로 합격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게 맞나...? 꿈인가...? 오퍼 잘못 나갔다고 취소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었다.
이렇게 믿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운 좋게 얻게 되어 잠시잠깐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아름다워 보였지만... 막상 여름에 인턴십이 시작하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많은 것들이 순탄하지 않았고, 힘들었다 (하하) 몇 가지 이유를 꼽아보자면:
인생 첫 테크회사
인생 첫 디자이너 업무
내 인턴매니저 너무 대단하신 분 (신입사원에서 시작해 입사 5년 만에 매니저가 되어계심)
모두가 처음 겪는 풀 리모트 근무/인턴십
인턴십 중에 발생한 부서 전체 조직개편(re-org)
내가 일했던 팀은 뉴욕 오피스 소속으로, 업무 커뮤니케이션 툴을 디자인하는 곳이었다. 메인 제품들이 SNS인 회사다 보니 입사하기 전에는 이런 툴도 만드는지 전혀 몰랐는데, 슬랙과 비슷한 느낌으로 M사 내부에서는 일할 때 이걸로 소통하고 외부 회사들도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툴이었다. 원래는 3개월 간 뉴욕에 건너가 오피스로 출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2020년 3월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로 전환이 되었고, 인턴십 역시 완전히 풀 리모트로만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M사의 여름 인턴십은 총 12주로 학교 졸업 후 입사하는 풀타임 리턴 오퍼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outcome으로 삼는다. 5주 차쯤 중간 평가가 있고, 또 10주 차에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남은 2주 동안은 그동안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최종 평가 결과를 확인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5주 차 중간 평가에서는 “Is this person trending towards an offer?”라는 질문에 Yes/No라는 명확한 답변을 받게 되고, 이때 받는 다각도의 피드백을 참고해 나머지 5주를 더 발전해 나가며 최종 평가를 받는다. (2020년 기준이에요, 지금은 어떤지 잘 몰라요...) 평가의 기준은 이 친구가 신입 풀타임 디자이너만큼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인턴들에게는 꽤 챌린징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첫 주에는 회사 온보딩을 했고 두 번째 주부터 starter project라고 해서, 회사 업무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위해 2주간 몸 풀기 과정과 같은 프로젝트를 했다. 간단한 리디자인 프로젝트라고 듣고 시작을 했는데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까지 간단하지는 않았다. 디자인을 두 가지 다른 제품에 적용되게 할 예정이었어서 PM 두 명과 동시에 확인을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첫 프로젝트로 인턴에게 주어지기엔 스콥이 다소 컸고 (당시엔 경험이 없어 그게 그렇게 2주 만에 끝나기 어려운 스콥이었단 걸 몰랐음 ㅎㅎㅎㅎ) 처음으로 "디자인 업무"를 해보는 거라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었다. 글자 그대로 밤을 새 가며 열심히 한 결과 인턴 매니저는 결과물에 꽤 만족스러워했고 내가 인턴십을 끝마치기 전에 쉽핑까지 되었다. 덕분에 디자인만 한 게 아니라 개발자들과 소통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그 부분은 예전 커리어에서도 매일 하던 거라 수월하게 넘어갔다.
두 번째 메인 프로젝트는 4주 차부터 시작해 10주 차 최종 프레젠테이션까지 진행을 했는데, 새 feature를 만드는 end-to-end 프로젝트였다. 기본적인 리서치도 하고, 유저 테스팅도 하고, 바로 출시할 MVP 버전도 만들고, 쉽핑하기 직전까지의 모든 단계를 정석적으로 밟았다. Project brief부터 시작해서 킥오프 미팅과 프로젝트 방향성부터 전부 내가 이끌고 나가도록 매니저가 독려해서 5주 차부터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사람이 하다 보면 다 되더라. 하하. 제일 어렵고 힘들었던 건 인턴십 중간에 발생한 조직개편(re-org)이었다. 내 메인 프로젝트는 결국 새 로드맵의 방향성에 맞추어 스콥핑을 다시 해야 했다. 난 인턴인데... 프로젝트 스콥핑까지 알아서 잘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 인턴 매니저 덕분에 정말 쉽지가 않았다. 결론적으로 디자인 스콥이 크게 늘어나 3개의 각기 다른 제품에 조금씩 다르게 적용될 디자인 프로젝트를 7주 만에 끝마쳐야 했다. 인턴십이 아니라 정규직이었다면 시간적 여유가 좀 더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열심히 꾸역꾸역 어떻게든 헤쳐나가긴 했지만 그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아무리 분야가 다르다고 해도 한국에서 회사생활 짬밥을 쫌 먹었는데, 그래도 좀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처음에 했었는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 12주는 너무 짧았고 내 기대는 완전한 오판이었다는 걸 아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제일 큰 어려움은 이게 내 첫 번째 디자인 인턴십이었다는 점이었다. 7-80명 정도 되는 인턴 동기들 중에 이전에 디자인 인턴 경험이 없는 친구는 내가 알기로 나를 제외하고 한 명도 없었는데 (정말로, 얼마나 운이 좋게 합격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한두 주 지나 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10주라는 짧은 시간 내에도 퍼포먼스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보장된 실력과 경험을 가진 친구들을 원했다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보다 10살 정도는 족히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하던지, 정말 깜짝 놀랐고 위축이 되기도 했다. 나는 호흡이 긴 정규직을 오래 했던 사람이라 이렇게 빠른 적응 속도를 상상도 못 해 크게 당황을 했고, 디자인 exploration을 할 때 적절한 깊이와 속도를 조절하는 것에도 몇 주가 걸렸다.
그리고 한국 대기업과 미국 대기업의 차이도 피부로 체감을 했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회사는 제조업이었으니 IT와는 업종 차이가 큰 것도 있었지만, 회사 컬처가 다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 지난 커리어 내내 사장님 상무님 말씀 모시며 탑다운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이 이제 본인이 잘 해낼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어필을 하라고 푸시받을 때의 그 고통스러움과 희열(?)이란...! 시키는 것만 해선 안 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게 미덕이라니. 병아리 디자이너가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은 일들이 정말 많아서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리고 큰 회사의 구조가 수직적이지 않으니 큰 조각을 이해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또 원하는 정보와 결과값을 빠르게 구하기가 어려운 것도 많이 다른 점이었다. 여러 부서가 수평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데, 어느 하나로 의견을 모으기가 어려울 때가 가장 난감했다. 아무튼 그냥, 너무 달랐다.
리모트 근무도 장벽 중 하나였다. 나는 한국에서 일할 때에도 여러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데일리로 연락을 주고받는 경험을 했지만 온보딩부터 리모트로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원래도 전화 별로 안 좋아하고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거는 거 진짜 못하는데, 처음에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팀원들과 인사하기 위해서 일일이 챗으로 말 걸고 1:1 미팅을 세팅하는 과정이 너무 어색하고 어려웠다. 그래도 리모트라서 다행이었던 점 하나는 내 맘대로 티 안 나게 야근/특근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부족한 내 디자인 경험을 집에서 밤을 새 가며 메꿀 수 있었다!
우당탕탕 끝에 디자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잘 풀려서 10주 차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쳤고, 인턴 매니저와 하이어링 매니저도 만족스러워해 이후 평가에서 무사히 hire recommendation을 받았다. Verbal offer와 같은 것인데, 공식 풀타임 오퍼 문서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020년은 코로나 시국이었고, 회사도 영향을 받아 인턴십을 마친 친구들에게 신입 디자이너 오퍼를 줄 헤드카운트를 줄이게 되었다. 모든 친구들의 인턴십이 끝이 나고 내부적으로 한번 더 리뷰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이후 나를 포함한 다른 인턴들 중 일부는 두 달을 맘 졸이며 기다린 끝에 최종 풀타임 오퍼를 받지 못했다. ㅠㅠ
M사에 못 가게 된 것 자체는 두 달간 대기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던 터라 금방 털고 일어났지만, 그 해 잡 마켓이 너무 좋지 않아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이후 나는 5개월 뒤 지금 다니고 있는 S사에 둥지를 트는 결정을 하게 됐다.
과정도 쉽진 않았고 목표했던 풀타임 오퍼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턴십은 나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우선, 모든 면에서 진짜 빨리 늘었다. 테크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방법의 정수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배웠다고 생각한다. Project brief를 쓰는 것부터 디자인 리뷰를 하는 것까지 전부 다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었고, (코로나 팬데믹 속 불안한 잡마켓에서 꼭 오퍼를 받아야 하므로) 잘 해내기 위해서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늘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일하던 PM, 디자이너, 리서처, 개발자 모두 최고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고 다들 일을 잘해서 배울 점들이 정말 많았다. 다른 회사에서 일했다면 절대로 이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 같다.
두 번째로,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인턴십 오퍼를 받았을 때까지는 스스로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인터뷰라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의 진짜 실력이 완전히 보이지는 않는 거니까 - 이게 그저 운만 좋아서 받은 건 아닌지, 아무런 디자인 업무 경험 없이 이제 석사 공부를 겨우 9개월 한 내가 빅테크의 디자인 인턴 & 풀타임 디자이너로 일할만큼의 역량이 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많이 들었다. 최종적으로 풀타임 오퍼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12주 동안의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의 내 업무능력을 보고 hire recommendation을 받았었다는 사실은 이제 내가 어느 테크 회사를 가도 신입 디자이너 정도의 실력은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세 번째, 반쯤 농담이지만 인턴 월급을 생각보다 많이 줬다...ㅋㅋ 스트레스받는 여름 동안 그 보상으로 풍족하게 맛있는걸 많이 사 먹었다. 한국에서 퇴사한 뒤 3년 만에 처음 내 손으로 벌어보는 돈이어서 의미가 컸고 통장에 월급(정확히는 2주급)이 꽂힌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말 감격스러웠다. 나도 이제 미국에서 평범하게 밥벌이를 할 수 있다!!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걸 숨기기 어려웠다.
솔직히 당시 인턴십 기간 동안엔 첫 디자인 인턴십에서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스트레스가 넘쳐났었는데 다 지나고 보니 좀 더 그 시간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어차피 원하는 대로 안 될 거였는데 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 볼 걸...ㅎㅎ 그리고 결과는 아쉬웠지만 정말로 의미 없는 경험은 하나도 없다고, 이 M사에서의 인턴십이 연을 만들어준 게 계기가 되어 나는 졸업 후 현재의 회사에서 두 번째 인턴십을 하게 되었고 곧바로 풀타임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쭉 회사생활을 하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 열정 있는 팀, 임팩트가 큰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어서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다 싶어 이 또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인생에서 이제 다시는 인턴십이라는 걸 할 일이 없을 텐데 이렇게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첫 디자인 인턴십, 고마웠어. �
미국 UX디자인 유학취업 가이드에는 이 글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연재글에서 저희의 또 다른 경험담들을 가지고 올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