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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Mar 11. 2022

여행에 대한 단상

  코로나가 터진 지 어느새 2년이 넘어간다. 돈 문제도, 시간문제를 떠나서 여행을 자제해야 하는 시대다. 그나마 잠잠해진 것 같아 이번 겨울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계획했다가 연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어서면서 다시 포기하고 말았다. 방랑벽 때문에 대학 시절 내내 방학마다 파리니, 네팔이니, 베이징이니 하며 해외여행을 다니고, 주말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던 나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러 사진첩을 뒤지다가 부모님과 캄보디아 여행을 갔던 사진을 보니, 당시 가이드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몇 년 전(지금으로 치면 10년도 지난) 태국에서 일하던 가이드는 막 완공된 7성급 호텔을 이용하는 초호화 패키지 손님을 받게 되었다. 숙소가 최고급 호텔인 것도 모자라서 스노클링을 포함한 모든 옵션도 진행하는, 그야말로 VVVVIP 모임이었다.     

출처 : 구글 Hotel 검색

  VVVVIP 모임의 손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하면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한참을 지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한국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안쪽에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계시다고 했다. ‘효도 관광쯤 오신 건가?’ 생각하며 30분쯤 기다렸을까.     


  입국장 문이 열리더니 어르신 한 분이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나오셨다. 뒤를 이어 차례차례 요가 자세를 취하며 어르신들이 천천히 나오셨다.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아흔, 막내이신 분이 환갑을 넘긴, 가이드 인생 최고령 팀이었던 것이다. 전라남도 목포의 한 섬마을에서 오셨다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가이드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행여나 사고나 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숙소로 가던 중 괄약근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몇 분이 계셔서 성인용 기저귀를 사야 했고, 다음날 조식 시간에 어르신들이 한국에서부터 싸온 젓갈을 뷔페에서 꺼낸 탓에 호텔 측으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그 이상의 사고는 없이 지나갔고, 스노클링을 체험하는 날이 되었다. 다른 코스와 달리 스노클링은 물에 들어가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불안한 마음에 가이드는 평소보다 몇 배는 긴장한 채로 아는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어르신~ 장비 착용하셔야 돼요~     

  


  스노클링 체험을 하기 전 안전교육도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던 어르신들은 안전장비도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셨다.     


  “아 됐어~ 그거 하면 답답햐~”     

  

  가이드는 속이 타 들어갔지만 혹시나 VVVVIP의 심기를 거스를까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할머님 한 분이 휘적휘적 걸어가시더니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신 것이다. 아 시 xx 댔다. 가이드는 속으로 투덜대면서 호루라기를 불면서 동생들과 가드들을 닦달했다.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몇 분이 지나갔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가이드와 달리 다른 어르신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였다.     


언니~! 다금바리!! 


  그 순간, 저 멀리서 할머님 한 분께서 한 손에 다금바리의 아가미를 쥔 채 해맑게 웃으며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가이드는 그저 넋이 나갔다.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든 어르신이 맨손으로 물고기를 건져 올리다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전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가이드에게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어르신들이 자꾸 건져내는 다금바리, 전복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어르신들은 목포 섬마을의 부녀회에서 오신 ‘해녀’들이셨던 것이다. ‘막내’이신 부녀회장님이 처음 회장이 됐을 때 ‘언니들~ 우리도 해외여행 한 번 갑시다~’며 곗돈을 모으기 시작하셨다. 올해는 누가 아프고, 누구 아들 결혼하고, 누구 아버지 돌아가시고 미루고 미루다 보니 시간이 흘러 20년이나 지난 것이다. 마흔이었던 ‘막내’도 어느새 환갑을 넘기고, 제일 큰 어르신이 아흔을 넘기게 되었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갑시다. 이러다 우리 여행도 못 가보고 죽겄소!  

   

  사람 일이야 어찌 될지 모르는 거라지만 아흔이라는 나이는 절대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여행을 오셨다고 했다. 다들 열심히 일만 하면서 살아오시다 보니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고, 그저 비싸면 좋겠지 싶어서 제일 비싼 숙소, 제일 비싼 비행기, 제일 비싼 프로그램 모두를 신청하신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가이드는 “여러분,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내 입으로 먹을 수 있을 때 여행 한 번이라도 더 하세요.”라고 했다. 아마 어르신들처럼 나이가 너무 많아지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기껏 비싼 돈 들여서 여행을 갔는데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아니, 무척 슬픈 일일 것이다.


  특히 이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슬펐던 이유는 그야말로 ‘헛돈’을 쓰셨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스노클링은 잊지 못할 추억이고, 버킷리스트급의 특별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50년 이상 지속해 온 일상이었을 뿐이다. 일상을 누리는데 비싼 돈을 내는 일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스노클링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어르신들이 과연 체크를 하셨을까? 아마 안 하셨을 것이다.

    

  마치 디자이너들이 비싼 돈을 주고 떠났는데 벽화 그리기 체험을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조차도 여행이라 할지 모르지만 아마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여기까지 와서?...’라는 생각과 함께 여행 괜히 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비일상성’이 여행의 본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여행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평소 다니던 학교 앞, 회사 앞을 가면서 ‘여행 간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말하는 여행을 되새겨보면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를 찾아갔었다. 여행(旅行)이라는 단어 자체에 공간적 이동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인지 공간적 비일상성은 여행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사람에게 해운대를 가는 것은 여행이지만, 광화문 광장에 가는 것은 여행이라고 하기 힘들고, 반대로 부산 사람에게 해운대를 가는 것은 여행이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그들이 광화문 광장에 가는 것은 여행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공간적 비일상성의 범주일까? 여행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해외여행’ 일 것이고 국내라면 제주도, 해운대 같은 유명 관광지나 국립공원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었다. 몽골의 초원, 네팔의 히말라야, 노르웨이의 빙하 정도는 돼야 여행이지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바뀌게 된 일이 있었다. 최근 들어 답답한 마음에 바람 쐬러 벽제역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형이 오랜만에 연락이 왔었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여행을 가보려고 하는데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추천해달라고 했었다. 벽제역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라고 들어서 추천해주었고, 마침 나도 가보고 싶던 곳이라 날짜를 맞춰 함께 다녀왔다.     

  그때 형한테 ‘이게 무슨 여행이야 형... 나들이 정도로 합시다 ㅋㅋ’라고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벽제역도 충분히 여행이라고 할 만했다. 폐기차역이라니.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공간이 아닌가? 1시간 남짓 둘러보고 사진 몇 장만 찍었을 뿐이었지만 일상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을 소설에 비유했다. 여행을 통해 공간적으로 현실의 세계와 동떨어진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면 소설은 현실과 아예 시공간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둘 다 시작과 끝이 있으며, 여행이 끝난 후(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사람들은 크든 작든 변화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도 시작할 때의 설렘 가득한 마음과 흥분은 다른 것과 비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상과 다른 세계에서 뭔가 변화를 느끼는 것이 여행의 정의라면 벽제역처럼 근교의 가까운 곳을 가는 것 또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일주가 대하소설이라면, 한 달짜리 미국 횡단이 장편소설이라면, 당일치기 근교 여행은 단편소설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벽제역뿐만이 아니었다. 남한산성을 걸으면서 옛 성터의 구조를 보면서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던 석촌호수는 벚꽃과 아름다운 조명이 어우러져 장관을 만들어냈고, 송도의 센트럴파크에서는 답답한 서울을 벗어나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 번쯤 꿈꿔왔던 오로라를 보고, 고래상어와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나면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먹어보고,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듣고,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눈에 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기분도 전환되고 생각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다시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2017년의 몽골이었으니 벌써 6년이 지났다. 회사를  다닐 때는 시간이 없어서, 퇴사 후에는 돈이 없어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 갔다고 생각하니 우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해외여행, 장기간 여행을 가지 않았을 뿐이지 코로나 직전에는 강릉에도 다녀왔고, 영흥도, 대구에도 갔다 왔었다. 생전 처음으로 서핑도 해봤고, 근 10년 만에 가평에서 바나나보트도 타봤다. 코로나가 터진 후에도 부모님과 가평, 단양, 한탄강, 속초 등에 다녀왔고, 출장 때문이긴 하지만 작년에는 목포, 광주, 대구, 부산도 다녀왔다. 일주일씩 일산에서 머물면서 동네 곳곳을 훑고 다니기도 했다. 아마 그렇게라도 지방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출입금지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제주 한 달 살기를 포기하진 않았을 거다.


  서울을 떠나지 않았을 때도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썸 스쿨의 청년 강사 교육, 트레바리의 사진을 읽다 모임, 크리에이터 클럽의 열정에 기름붓기 모임 등을 하면서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을 다니면서 드라마 작법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덕분에 글쓰기 커리큘럼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 지난달에는 처음으로 글쓰기 특강도 열어볼 수 있었다.     

  언제 또 해외여행이나 장기간의 여행을 갈지는 모르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가고 싶지만 지금도 나는 여행 중이라고 믿기로 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책을 읽고, 내가 만나는 비일상성들이 나를 한 단계 성숙시키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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