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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Mar 02. 2022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기자의 눈

  “이러다 3차 세계대전 발생하는 거 아냐?”


  지난 24일 러시아가 전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3차 세계대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틈을 타서 중국도 대만을 침공하고, 미국 등 소위 민주주의 국가들이 참전하면서 전 세계로 전쟁의 여파가 퍼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다행스럽게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세계 각국에서 반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러시아 내의 여론도 푸틴을 비롯한 주전파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솔직히 남의 수술보다, 내 손가락 찔린 고통이 더 큰 것처럼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아무리 참혹하다 한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큰 이슈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코로나와 전쟁을 치르는 가운데 뭐 그리 신경들 쓰나 싶지만, 예상외다. 푸틴도 아마 이렇게까지 반전 여론이 거셀 거란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아마 인터넷의 발달, SNS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전쟁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전쟁이 잘못되었다고 백날 외쳐봐야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있다.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만큼 얼마나 더 많은 피가 흐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쟁이 더 길어진다 한들 지구 반대편이나 다름없는 유럽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 같지만 생각 외로 한국에서도 연일 시끄럽다. 지구 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요, 휴전 국가인 데다 때마침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갖다 붙이기 너무나 좋은 떡밥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2가지 주장을 보자면 ‘무능력한 지도자를 뽑으면 전쟁이 발생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해서 전쟁이 발생했다.라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출처 : 네이버 뉴스 화면 캡처


  무능력한 사람이 리더가 되면 국민들이 고통을 겪는 건 당연하다. 조선말 쇄국정책으로 일관했던 흥선대원군이 그랬고,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겪었던 인조가 그랬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역사가 무능력한 리더 때문에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만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말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무능력한 지도자일까? 흔히 사람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코미디언 출신’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는 키예프 국립 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다. 사실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코미디언’과 ‘석사’에 대한 선입견을 기준으로 볼 때 지도자로서 마냥 무능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전쟁 발발 이후 젤렌스키가 미국 정부의 망명 제의까지 마다하고 키예프에 남아 전쟁을 독려하는 모습, 그리고 대통령 취임 후 젤렌스키가 했던 노력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유능한 리더, 책임감 있는 리더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단언컨대 나는 시기와 형태만 다를 뿐 러시아는 언젠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쟁이 터지기를 바라는 미치광이라서가 아니다. 자원이 유한한 인상 전쟁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지만, 제국주의 열강 시절 부동항을 얻고자 남진을 거듭했던 역사가 있다.


  2022년에 벌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은 좀 더 복잡하지만, 크림반도를 생각하면 제국주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반구에서도 최북단에 자리한 러시아가 바닷길로 외국하고 교역하려면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흑해를 통하는 길이 가장 빠르다. 물론 정상적인 현대 사회에서는 우크라이나에게 통행료를 내고 이용하는 것이 합당하겠지만, 사람 심리라는 것이 괜히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크림 반도는 소련 해체 전에는 러시아의 땅이었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크림 반도 일대를 관리하던 흑해 함대 절반이 우크라이나에 귀속되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억울한 느낌도 들 수 있다. 그 결과가 2014년의 크림 반도 병합 사건이다. 오해하지 말자. 러시아의 침공을 합리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가 침공한 이유를 말하는 거니까.

출처 : 연합뉴스 인포그래픽


  바닷길 외에도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만큼 가까운지라 우크라이나가 마음만 먹으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가 언제든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추진하자 강하게 반발한 이유고, 몇몇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자극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NATO 가입이 러시아를 자극한 것은 맞지만, 왜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꼭 필요한 땅이다. 모스크바의 안전을 위해서도, 바닷길 교역로를 위해서도. 문제는 러시아의 고압적인 태도다. 소위 말하는 반에서 만만한 친구에게서 돈을 빌리고, 숙제를 대신시키는 일진처럼. 우크라이나는 반발할 수밖에 없고, 힘이 없으니 NATO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비난한다는 건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이 친한 형한테 등하교를 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해서 가해자가 학교 쉬는 시간에 ‘나를 자극했어.’라며 피해자를 폭행해도 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쉽게 말하자면, 러시아는 미친놈이고 우크라이나는 약한 친구라 전쟁이 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NATO 가입 신청은 전쟁을 막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마지막 몸부림이나 마찬가지였다. 냉정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아무리 전쟁이 잘못되었다고, 전쟁하면 안 된다고 백날 외치고 떠들어도, 미친놈은 어딘가 존재하고, 언제나 약한 사람 한 명쯤은 있다. 내 주변은 평화로웠다면, 그건 당신이 운이 좋았던 거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낭시 대학의 행동생물학 연구소에서 생쥐를 가지고 실험을 한 적이 있다. 6마리의 생쥐들이 먹이를 구하려면 헤엄쳐서 건너편으로 건너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생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한 것이다.


  2마리는 먹이를 열심히 구해왔지만 다른 2마리에게 빼앗겼고, 1마리는 빼앗기지도, 빼앗지도 않았으며 나머지 1마리는 구하러 가지도 않고 빼앗지도 않았다. 일명 ‘착취형’과 ‘피착취형’, ‘독립형’, 그리고 ‘천덕꾸러기형’으로 나뉘었다. 재미있는 것은 유형별로 모아서 다시 실험을 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착취형끼리 모인 그룹에서도 착취형과 비 착취형이 등장했고, 비 착취형끼리 모인 그룹에서도 새로운 착취형이 나타난 것이다. 일명 ‘또라이 보존의 법칙’(혹은 진상 보존의 법칙)이다.


  쉽게 말해서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처럼 확률적으로 폭력성에 대해 둔감한 개체가 존재하는데 심지어 상대적으로 약한 개체와 함께 있으면 숨겨진 폭력성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생쥐와 사람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 영원하다면 전쟁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미친놈이 되는 것이다. 북한이 진짜 미친놈처럼 핵 개발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 정말 미쳐서가 아니라 핵이 없으면 언제든 짓밟힐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은 두 번의 전쟁을 일으켰다. 2001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다. 결과는 다들 잘 알다시피 미국의 승리였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야 9.11 테러에 대한 일종의 응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원인이었다. 정말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미국이 그렇게 압도적으로 승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미국은 안심하고 이라크를 침공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 달리 북한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고, 온갖 공작질을 해도 미국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미 두 차례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이 착해서? 전쟁이 터졌을 때 쑥대밭이 될 한국을 걱정해서? 절대 아니다. 미국이 부담스러운 건 오직 하나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다. 한국과 미국이 연합하면 북한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어차피 미국의 본토도 아니니 국제적인 여론이면 몰라도 전쟁 후유증까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문제는 북한이 에라 모르겠다 핵을 터뜨리면 한국은 물론 일본, 최악의 경우에는 싱가포르, 미국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참전이라도 하면? 그때는 전쟁의 승패마저 장담할 수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북한이 연합하면 아무리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해도 한국이 입을 타격은 막심하다.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육로로 대규모 군대를 지원할 수 있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상대적으로 지원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중국도 소위 간만 보는 이유는 한국이 핵무기는 없지만,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도시를 타격 가능한 현무 미사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유력한 후보지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이 조용한 이유다.

출처 : 미국 CSIS(국제전략연구소) 자료 화면 캡처


  반대로 우크라이나는 북한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992년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당시만 해도 유럽 내 군사력 3위에 해당했고, 핵탄두는 무려 2,000여 기나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경제 상황이 너무도 열악해서 핵무기를 관리할 자원도, 인력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경제 원조와 안전 보장을 대가로 핵무기를 폐기하는 한편 국방 예산을 줄이고, 경제 개발에 투자하였다.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관리할 수 없었지만, 만약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유럽 3위는 아니더라도 5,6위 정도의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러시아는 감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자체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에게 계속 휘둘리거나, NATO와 같은 든든한 동맹군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멍청해서 러시아를 자극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는 뜻이다.


출처 : 월스트리트 저널


  유사한 사례로 대만이 있다. 중국은 호시탐탐 대만을 합병하려 하지만, 위구르, 티베트와 달리 적극적인 군사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 대만이 UN에 가입은 못 했어도 중국 내 자치구인 위구르, 티베트와 달리 엄연히 독립 국가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과거 중국의 영토였으니까. 하지만 중국이 섣불리 대만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대만이 만만치 않은 무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력 도발에 맞서 대만은 전투기와 미사일, 잠수함 등의 군사 장비를 확보하는 한편, 미국과 일본의 최첨단 무기를 들여오고 있다. 대만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은 이시가키 섬에 미사일 기지를 구축했는데, 이시가키 섬에서 미군 미사일을 발사하면 상하이는 5분, 광저우는 6분이면 타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출처 : 한국일보 기사


  한국의 현무 미사일,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 대만의 동맹 강화 등은 이른바 ‘고슴도치 전략’으로 불린다. 맹수들은 고슴도치를 잡아먹고 싶어도 고슴도치가 가진 가시, 독침 때문에 섣불리 손을 못 댄다. 대신 맹수들은 부상 입었거나, 아직 어려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새끼들을 공격한다. 그게 훨씬 쉬우니까.


  우리가 힘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대선을 앞두고 안보 문제에서 대화를 주장하는 후보들을 보니 화가 치민다. 상대가 북한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심지어 미국일지라도 대화가 통할 거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부터 전쟁은 늘 있었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나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약한 사람들의 물건을 빼앗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었다. 그들에게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분노조절장애라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마동석을 보고는 얌전해지는 것처럼 상대방이 강하다 싶으면 함부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게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고, 슬프고, 외면하고 싶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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