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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l 10. 2022

“빨리빨리 해야지”

  “빨리빨리 그런 말 좀 하지 마. 아주 치가 떨리게 들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던 어느 명절날, 둘째 고모는 치가 떨린다며 빨리빨리 움직이자던 동생의 말에 타박했다. 고모가 일하던 ㅊ농산에서 질리게 들으셨다고 한다. 아마 작업반장쯤 되는 사람이 작업량에 대해 닦달을 했던 모양이다.


  워낙 빨리빨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한국 사람들이니 사실 큰 의미가 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을 그만두신 지금조차도 동생이 가볍게 던진 말에 치가 떨린다고 할 정도라면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참 가혹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고모의 이야기를 가볍게 흘릴 수 없었던 이유는, 네팔에서 만난 가이드 푸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푸리는 한국에서 몇 년 간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말을 좀 배웠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에 우리를 깨울 때나 이동할 때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외국인 특유의 어색한 말투로 “빨뤼빨뤼 해야지~”를 주문처럼 외우곤 했다. 그 당시에는 그가 한국말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고, 한국 공장에서 일할 때 배웠다는 사실도 막연히 그런가 보다 했었다.


구글 검색 빨리빨리 中

  이제와 생각해보면 푸리에게도 “빨뤼빨뤼 해야지”라는 이야기는 고모처럼 치가 떨리는 말이었을 것이다. 고모와는 달리 외국인 노동자(불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분이었고, 어쩌면 단순히 치가 떨리는 얘기가 아니고, “너 짤리고 싶냐?” 쯤의 살벌한 협박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푸리가 일했던 공장 사장이 우리가 흔히 기사에서 보는 외국인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악덕 사장이 아니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60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고모조차도 치가 떨린다고 할진대, 한국말로 의사표현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그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고 하는 모양이다. 누군가에게 ‘빨리빨리’는 열정을 떠올리는 붉은색, 뜨거운 온도일지도 모르지만, 고모나, 푸리처럼 또 누군가에게는 시퍼렇고 차가운 비수 같은 한 마디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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