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창

화음 속에 남은 기억들

by 장기혁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 어느 교회 문학의 밤 행사에서 고등학교 중창단이 불렀던 남성 사중창 무대가 너무 인상 깊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 기억 덕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중창단에 지원했고, 바리톤 파트로 선발되어 3년 내내 활동했다. 학교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고, 교회 행사에 초청되어 외부 공연도 했으며, 졸업 후에는 후배들의 졸업 연주회에 참여하고 학교 축제에도 찾아가 교류를 이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10대 후반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여학교에 연주회 포스터를 붙이러 갔던 기억, 수도여고에서 여학생들 앞에서 노래했던 기억, 영동여고 중창단과 조인트 공연 후 함께 저녁을 먹었던 일들까지. 고3 선배들의 졸업 연주회를 YWCA 강당에서 개최하면서 대관부터 무대장식, 팸플릿, 티켓 제작까지 준비했었다.. 어린나이에 대단했다 ㅎㅎ. 우리 깃수 졸업 연주회 때는 음식점과 서점을 돌아다니며 찬조금을 받고 팸플릿에 광고를 실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점심시간마다 모여서 화음을 맞추던 시간, 혼자 파트 연습을 하면서 부끄러워하던 내 모습도 또렷하다. 안타깝게도 한 친구는 세상을 떠났고, 리더였던 친구와는 갑자기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어색해졌던 기억도 있다. 브라질에 이민 간 친구와는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후 계산 문제로 감정이 상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저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지금은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이후에도 남성 사중창과 아카펠라 음악을 즐겨 들었고, 최근에는 <팬텀싱어>를 통해 다시금 그 매력을 느꼈다. 함께 진심으로 음악을 즐겼던 친구 한명은 우연한 기회에 MBA 동문의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정말 세상은 좁다.


테너를 맡았던 친구는 내 여동생과 자선 연주회를 함께 다니며 봉사활동도 했었다. 당시의 9명 중창단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온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친구들도 있다. 얼마 전에는 평준화 이전의 선배들이 만든 OB 남성합창단이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지만, 내가 활동하던 시절의 멤버들은 명단에 없었다. 평준화 이전 세대의 선배들이 아직도 엘리트 의식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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