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빔프로젝터와 스피커를 구입해 거실에 작은 홈시어터를 만들었다. 주말 저녁이면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영화를 골라 본다. 화질도 훌륭하고 음향도 풍부해서,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30년 전쯤 잡지에서 “미래에는 온라인으로 원하는 영화를 골라 보는 시대가 온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당시엔 그저 공상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간편하고 경제적으로 세계 각국의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의외의 어려움이 생겼다. 막상 집에서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비용과 시간의 투자가 큰 극장과 달리, 집에서는 언제든지 끄고 나올 수 있으니 중간에 관두는 일이 잦아졌다. 또 다른 문제는 ‘고르기 어려움’이다. 보고 싶은 영화를 찜해두고도 정작 ‘두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선뜻 재생버튼을 누르지 못할 때가 많다. 기대에 못 미치면 그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건 영화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너무 많고, 너무 편리해지면 선택이 더 어려워진다. 넘쳐나는 옵션 속에서 ‘정말 이걸 고른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풍요 속에서 오히려 결정은 느려지고, 집중은 약해진다. 문명의 발달이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닌 이유다.
먹거리가 풍부해질수록 비만율은 올라가고, 컴퓨터의 보급으로 손글씨를 잊어간다. 이제는 생각이나 글을 정리할 때조차 AI의 도움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분업화와 시스템화는 더 정교해지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뇌는 더 적게 쓰이고, 더 작아진다고도 한다. 대신, 여러 영역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능력은 더 요구된다는 글이 떠오른다.
이제는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그냥 누리기보다, ‘어떻게 누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생각 없이 누리는 풍요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무언가를 고르고, 그것에 몰입하고, 끈기 있게 마무리 짓는 태도는 이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