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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Oct 18. 2020

08.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

장면은 곧 내 시선이라던데

작년이었던 것 같다.

아마추어 사물놀이 동호회를 거의 8년째 다니고 있는데(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장기적으로 모임이 중단된 상태이다.) 그분들과 여러 대회를 다니면서 여러 도시들을 전전했던 적이 있다. 나는 작년과 재작년 즈음 가장 활발히 대회 활동을 참여했었다.

그중 경주에서 열리는 대회를 마치고 경주에서 황리단길 구경을 했는데, 그때도 나는 미놀타와 함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결에 옛날 집 콘셉트의 가게 앞에 놓인 고무신을 보고,


"저 고무신 봐, 너무 예쁘게 놓여있어."


라고 옆에 있던 연인에게 말했다.(사물놀이의 '사'자도 모르는 나의 연인에게, 사물놀이를 전파했다.)

그때는 별 말 없으셨던 다른 오빠 하나가 나중에 술자리에서 하는 말이,


"지영이 너는 참 시선이 남다른 것 같다. 참 신기해."


라고 하시며 나를 칭찬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도 이미 느끼고 있었다. 내 시선이 남다르다는 것을 안다는 뜻의 거만한 말이 아니라, 내 시선이 미놀타로 인해서 조금씩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따지고 보면 전혀 남다르지 않다. 아마 취미나 직업으로 출사를 가는 이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내 시선이 남다르다기보다는 끊임없이 카메라에 담을 피사체를 찾아 헤매며 눈품(?)을 팔고 발품을 파는 그 행위가 좋아서 좇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의 이쁜 구석을 어쩔 수 없이 알아차리게 된다. 조금이라도 담아낼만한 장면이 그 풍경 속에 있으면 어떻게든 그럴듯한 각도를 찾아서 찍게 된다는 사실을 카메라를 취미로 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변화였다. 시간을 내어 어딘가 가지 않을 때, 미놀타로 촬영은 하고 싶고 손이 근질근질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하늘을 담았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씩 같은 장소에서 여러 방향으로 셔터를 눌러댔다.




야외 풀장에 발을 담고 찍어본 물속 빛의 가장자리들




촬영을 할 때 가장 지루하지 않은 대상은 자연물이다. 그중에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것으로 하늘, 파도, 빛처럼 형체가 정해져 있지 않은 자연물들이 가장 편했다.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더라도 시간별로 날짜별로 다른 얼굴을 하며, 어떻게 찍든지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루에 하늘을 한 번 쳐다볼까 말까 했던 내가 미놀타를 만나고난 후에 몇 번이고 하늘을 확인하고, 같은 동작들을 반복하게 되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해 질 녘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 마음은 몸을 움직이는 일에 인색한 내가 한 번 더 옥상에 올라가 기어이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2층 난간에서 찍은 집 앞 하늘과 전봇대




하늘을 찍다가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도시에 사는 우리들이 일상에서 자연물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드물다는 사실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어딘가로 출사를 나가지 않으면 그 마저도 찍기가 힘들었다.

맨날 2층 난간이나 우리 집 옥상에서 같은 풍경들을 찍어내다가 지루해지고 나서는, 친구들과 어디를 갈 때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어서 친구들의 얼굴을 마구마구 찍어댔다.




친구 N과 함께 카페에서 한 컷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난 한 사람과 시선을 계속해서 나누는 일을 유난히 어색해했다. 특히 우울감이 가장 심했을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싫고 고돼서 거의 만나러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제주 여행 메이트 S와 가로수 길 위에서




그 시기를 지날 때 즈음부터 미놀타를 만나 여러 사람들을 담으며 깨달은 사실은, 어떤 이유였던 내가 무관심하게 굴었던 내 앞의 사람들의 모습에 이 정도로 집중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역시 시간을 내어 만나지 않으면 그럴 기회조차 없는 건 나무나 꽃과 같았지만, 그나마 사람들은 띄엄띄엄 만났으므로 자연물보다는 미놀타에 담을 일이 자주 있었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도 한 번 언급했었지만, 난 다른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이 싫어서 내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처음에 미놀타로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으려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원하는 표정과 선을 놓치기 일쑤였다. 어떤 친구는 왜 자꾸 안 찍고 가만히 있냐며, 어색해서 가만히 못 있겠다고 손사래를 치며 사진 찍히는 일을 마다했다.

나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생각보다 셔터를 누르기까지 오랜 정성을 쏟아야 했었는데, 36컷 중에 한 컷을 실수 없이 담아내기 위한 나름의 욕심도 있었고 한 땀 한 땀 예쁘게 담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필름 카메라 초심자였던 것도 한 몫했다.




록 페스티벌에 함께 갔던 친구 중 한 명인 S




사진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르고 참고, 뷰파인더 너머의 사람을 응시하고 기다리다가 절묘한 순간 셔터를 누른다. 미놀타는 색감도 디자인도 아주 끝내주는 카메라지만, 셔터를 눌렀을 때의 그 '찰칵'하는 손맛도 기가 막힌 카메라이다. 가끔 내가 미놀타를 넘겨주어 사진을 부탁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꼭 한 마디씩 보태는 것을 보면 다들 느끼는 바가 비슷한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나 셔터를 누르기 직전까지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참 좋았다. 무력한 마음의 탄성을 찾아서 팽팽하게 당겨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 내 신경계를 자극하면 어김없이 셔터를 누른다. 필름 속에 담긴 장면이 어떻게 세상에 나올까 기대하면서 인화 전까지 고대하는 그 느낌마저 좋았다. 사진을 찍고 난 후에도 그 설렘이 계속되는 과정 속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필름 카메라가 가진 큰 메리트 중 하나이다. 혹여 필름 안에 보관된 장면을 잊고 있다가 인화했을 때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금상첨화. 미놀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억에서 잊혔던 기억 속 한 장면을 고스란히 펼쳐 그때의 오감이 살아나는 경험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필름 카메라에 찍히는 일을 좋아해 주어서, 수월하게 여러 가지 얼굴들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미놀타에 찍히는 얼굴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다른 이들의 눈을 쳐다보는 일이 점점 편해졌다. 그들의 예쁜 구석들을 찾으면 찾을수록 사람을 대하는 일이 신기할 정도로 편해졌다.




낚싯대를 손질하는 아빠




사진을 찍다 보면 다른 이들의 사진이 궁금해지고, 자연스레 사진작가들의 사진이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된다. 아마추어와 프로로 나누는 게 무색할 정도로 한 장의 사진에는 작가 특유의 고유한 에너지가 담겨있다. 한 장의 장면을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작가의 에너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진 속에 녹아 영원히 박제된다. 좋은 사진들은 멈춰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역동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에너지에는 피사체를 아름답게 보는 시선이 함께 담길 수밖에 없다. 의식적으로 뷰파인더 너머의 장면의 가장 예쁜 구석을 찾아 담는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모난 시선들이 카메라에 의해 깎이고 다져진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새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예쁘다 예쁘다, 계속해서 말하다 보면 정말 그 대상이 예뻐 보이는 것처럼, 어느새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습관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마치 미놀타가 나에게 최면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난 피사체들의 예쁜 구석을 집요하게 찾고 또 찾았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피사체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 바뀌어져 있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뀌자 내가 가장 친해질 수 없었던 나 자신을 예쁘게 보려 노력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사진에 담긴 장면은 결국 그 사람의 시선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사진작가들의 뮤즈들은 대게 작가의 연인이라고 한다.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대상이자 작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단면을 잘라 붙인 그 찰나의 장면은 담은 이의 시선으로부터, 나아가 마음으로부터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정말 낭만적인 과정이다.

나 또한 얻어걸리긴 했지만, 미놀타 덕분에 힘들었던 시기에 나 자신과도 서서히 그리고 안전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화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요즘에는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사진을 찍으러 나갈 일이 없다. 촬영을 하더라도 필름의 컷 수보다 적게 촬영되어서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필름들이 몇 개 있기도 하고, 한 번에 맡기면 더 저렴하게 현상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는 필름도 두어 개 된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필름 카메라의 결과물들을 만날 일이 없어서 심심하다.

작년에는 당시 갖 만나게 된 지금의 연인과 필름 카메라로 서로의 모습을 자주 찍어주었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놀타가 참 톡톡히 중간 역할을 해주었다. 쑥스러워서 잘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연인을 앞에 두고 촬영할 때는 내가 보고 싶은 만큼 실컷 눈에 담고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인의 예쁜 구석을 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또 이런 면은 이렇게 생겼구나, 저런 면은 저래서 이쁘구나 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덤으로 연인이 담아주는 나는 이렇구나, 연인이 보는 나의 모습은 저랬구나 하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나를 구성하는 여러 사람들, 그 얼굴들을 사랑하려 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실 사랑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다만,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나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그저 말없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풍경들과 얼굴들을 사진에 담아보는 게 어떨까.

멈춰있는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내 시선마저 사랑하게 되는 스스로를 만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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