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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익재 Sep 20. 2019

독일에서 광주를 기억하다 / 2-2편

그들의 광주, 우리의 광주

https://brunch.co.kr/@stillwithyou/23


앞서 발행했던 2-1편에 이어 2-2편을 끝으로 <독일에서 광주를 기억하다 - 2편>을 마치려 한다.


2-2편의 주 내용과 목차는 이렇다.


5.18 기념재단 이철우 이사장, 박진우 연구실장,
위인백 교수와 망월동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찬호 과장

9월 19일, 두 번째 일정: 5.18 기념재단 박진우 연구실장


앞서 광주 MBC 김철원 기자와의 일정을 마치고서 상무지구에 위치한 5.18 기념재단을 찾았다. 원래 오후 2시에 약속이 잡혀있었지만, 재단까지 차로 태워다 준 덕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여 5.18 기념재단 박진우 연구실장님을 만나러 갔다.


개인적으로 5.18 기념재단을 방문하기도 처음이다.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구실에 방문하여 박진우 연구실장을 만나 약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현재 독일에서 하고 있는 공부와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분야 등을 말씀드렸다. 잠시 밖으로 나가시더니, 책을 한 가득 들고 오셔서는 말씀하셨다.


"김 선생님께서 필요하다고 했던 내용이 있는 책들이니,
가져가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5.18 기념재단 박진우 연구실장으로부터 받은 책들. 예상보다 너무 많은 책들을 받았다. 저 책들은 결국 들고 가지는 못하고 우체국을 통해 부산으로 부쳤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일정을 위해 나서는 길에 방문 기념사진(?) 한 장을 부탁드려 찍고서 나서려는데,

독일에서 함께 활동하는, 그리고 내가 존경하는 어르신의 글과 독일에서의 연대활동에 대한 내용이 두 기둥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5.18 기념재단 사무실 앞, 당시 독일 교민과 유학생들로 시작된 연대의 흔적.
5.18 기념재단 사무실 앞, 당시 독일 교민과 유학생들로 시작된 연대의 흔적.
5.18 기념재단 사무실 앞, 당시 독일 교민과 유학생들로 시작된 연대의 흔적.
5.18 기념재단 사무실 앞에서. 방문 기념사진.

여러 이야기를 마치고 오래간만에 만나 뵌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서 다음 일정인 위인백 한국인권교육원 원장님을 만났다. 그리고 망월동 구 묘역으로 향했다. 고 류연창 목사(고 류동운 열사의 부친)의 이장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일정: 위인백 교수, 이철우 이사장(5.18 기념재단) 그리고 망월동


이번 광주 일정은 여러모로 행운이 많이 따랐다. 연락을 드렸던 모든 분들과 연락이 닿았고, 만나 뵙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위인백 교수와의 일정도 그랬다. 김철원 기자와의 점심 일정과 일정 이후의 배려 덕에 30분 일찍 재단 박진우 연구실장을 만난 덕에 일찍 마칠 수 있었고, 그 덕에 위인백 교수와 오늘 예정된 고 류연창 목사의 이장식이 있었던 5.18 구묘역에 함께 방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5.18 기념재단 이철우 이사장과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행운인가.



망월동으로 간다.

1980년 광주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힘썼던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이다.


국립묘지에는 방문을 한 바가 있었지만, 구묘역 방문은 처음이었다.


그중에서도 방문한 묘역은 '제3 묘원'으로서, 고 류연창 목사 이외에 고 백남기 농민, 고 이한열 열사, 고 박관현 열사 그리고 1980년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제1 공영방송 소속 고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기자의 유품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 날 진행된 이장식에서 이철우 5.18 기념재단 이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5.18 기념재단 이사장이자 목사 출신인 그가 이장식의 집례를 맡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었다.


이장식은 이철우 이사장의 집례 아래, 유가족 그리고 관련 단체의 많은 사람들이 참석 아래 엄숙히 치러졌다.


위인백 교수와 함께 참석한 고 류연창 목사 이장식. 집례는 목사 출신인 이철우 5.18 기념재단 이사장에 의해 엄숙히 치러졌다.
1980년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고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 기자의 유품이 잠들어 있는 곳.
고 백남기 농민의 묘
고 이한열 열사의 묘
고 박관현 열사의 묘

오전에 김철원 기자와의 점심식사를 시작으로 5.18 기념재단 박진우 연구실장, 위인백 한국인권교육원장 그리고 이철우 5.18 기념재단 이사장 그리고 망월동을 끝으로 2일 차 일정을 마쳤다.


이 날 일정의 마지막이 망월동이었던 탓이었는지, 갈무리는 불현듯 떠오른 이 문장으로 하려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9월 20일,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

광주광역시청 민주인권평화국 5.18 선양과 / 김태헌 5.18 지원관


늦잠을 잤다. 숙소에서도 늦게 일어난 탓에 체크아웃 시간인 11시가 다 되어서야 11시 반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왔다.


마지막 일정은 김태헌 5.18 지원관 (광주광역시청 민주인권평화국 5.18 선양과)과의 점심 약속이었다.


광역자치단체를 통틀어 민주인권평화 그리고 5.18에 대해서 국(Division) 단위의 부서를 가지고 있는 곳은 광주광역시가 유일하다.

민주인권평화 그리고 5.18에 대해서 국(Division)단위의 부서를 가지고 있는 곳은 광주광역시가 유일하다.

첫날 첫 일정이었던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만나 뵙고 난 이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일정에 시청으로 초대해 주어 한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광주시청의 규모는 꽤 컸고, 무엇보다도 누구나 청사 내 부서를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완전히 개방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별도의 출입증을 발급받을 필요가 없었으며, 엘리베이터 탑승 역시 그랬다.


김태헌 지원관과 구내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고서 청사 1층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카페 역시 특별했다. 지금은 전국에 퍼져 있지만, 장애인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카페였다.


김 지원관에 따르면, 장애인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카페는 광주광역시가 시 조례를 제정하며 전국 최초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이후 전국으로 퍼졌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앉은자리 앞에 있는 광주광역시의 캐치퍼레이즈가 보였다.

"광주, 대한민국 미래로!"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광주시 홍보글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미래'로 가는 것이 별 것 있겠는가, 이렇게 하나씩 변화를 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미래로 향하는 길 아니겠는가.


김태헌 지원관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었다. 그 역시도 5.18 유공자로서 1980년 광주에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으로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간의 짧고도 길었던 광주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광주로 왔던 길을 되돌아 부산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다.


<광주 일정을 마무리하며>

지난 5월,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9주년 재유럽 오월민중제에서 알게 되어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과 감사하게도 광주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고, 아직은 한없이 부족한 저라는 사람이 과분할 정도로 후한 대접을 받으며 공부하고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2일 차에 만난 김철원 기자는 너무 후한 대접에 "제가 많은 신세를 지니 어찌할 도리를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에 과공비례(過恭非禮, 과한 공손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지요.


다만, 오늘 배운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한없이 배워야 하겠지만, 언젠가 제가 광주에서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또 그러라고 이렇게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언젠가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며 광주 일정은 마무리하려 합니다.


하며 글을 닫으려는데... 중요한 일정 한 가지를 빼먹었다.

9월 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국 김찬호 과장님과의 만남


한국에 도착하고 나흘 째 되던 9월 9일, 역시 베를린 오월민중제에서 인연을 맺게 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찬호 과장께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있는 경기도 의왕으로 초대해 주셨다.


김찬호 과장님과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베를린에서 함께 고기 구운 인연"이다.


다른 것이 아니라, 오월민중제는 2박 3일로 매년 치러지고 작년부터는 주독대사를 비롯하여 각지 각계의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탓에 저녁식사가 바비큐로 제공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함께 고기를 굽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올해 오월민중제 참석을 위해 일부러 한국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왔고, 거기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찬호 과장님에 대한 기사 두 편을 첨부해 본다.

http://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90303_0000574689#RedyAi

http://gjpress.co.kr/module/board/board.php?bo_table=0103&wr_id=922&page=5


여러모로 베를린 오월민중제에 감사한 것이 많다.


9일 오전, 광명역으로 가는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점심 즈음 열차는 광명역에 도착했고, 나를 데리러 일부러 본사가 있는 의왕에서 광명역까지 데리러 와 주셨다.


광주에서도 그렇고 난 참 인복을 타고 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감사하다.


도착해서 함께 인근 냉면집에서 비빔냉면과 왕만두를 먹고 의왕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사로 향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사 도착

결기도 의왕에 위치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사 건물과 입구


도착해서 김찬호 과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독일에서 알게 되어 오래간만에 한국에서 다시 보니 반갑다는 이야기부터, 궁금했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사업분야 그리고 구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에 대한 이야기까지.


사업회에 방문한 김에 베를린에서 뵈었던 정진우 상임부이사장님도 함께 뵈려 했으나, 명절 전이기도 하고 일이 바쁘셔 출타 중이셨던 탓에 뵙지는 못했다. 홍계신 기념관추진단장께선 앞서 언급했던 구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의 민주인권기념관에 계신다고 했다.


민주인권기념관 방문기는 별도로 글을 업로드할 생각이다.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분야에 있어 선배님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하루였다. 더불어 큰 선물도 함께 받았다.


제1 공화국 수립부터 문민정부까지를 다룬 '한국민주화운동사' 1편부터 3편까지 전 권을 주셨다.


앞서 글을 적었던 광주에서 만나 뵌 분들과 같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오래간만에 뵈었음에도 너무도 친근하게 대해주셔 몸 둘 바를 몰랐던 너무나 좋은 분이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찬호 과장으로부터 받은 '한국민주화운동사' 전권 그리고 사업국에서 근무하시는 동료분으로부터 받은 민기사 굿즈.

의왕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기 전, 사업회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찬호 과장님과 함께.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다시 뵙기를 바라며.

<독일에서 광주를 기억하다 / 제2편>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많은 귀한 분들과 귀한 경험을 하며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이야기를 또 적지만, 한없이 부족한 제가 많은 분들을 만나 뵙고 과분할 정도로 후한 대접을 받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분들과는 지난 5월 있었던 39주년 재유럽 오월민중제라는 연결고리가 있었습니다.


이 연결고리에 이르기까지 물심양면 언제나 곁에서 도와주신 '복흠 한국인 민중문화모임' 최태호 회장님, 이종현 선생님(코리아협의회 상임고문), 윤운섭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께 특별히 더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며 2편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나 뵌 모든 분들과 멀지 않은 시일 내에,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 뵙기를 소망합니다.


1. 5.18 광주 민중항쟁 40주년이 되는 내년, 재유럽 오월민중제에서는 40년 기념 자료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 광주 민중항쟁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데 있어 모두의 생각이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악성 댓글은 자제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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