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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료 Sep 03. 2024

‘멍때리는 자유’

라몬 카사스 _ 첫 만남, 검은 고양이, 통증 _퇴고로 가는 길

멍때는 자유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내 이름은 말야.

이 순간, Feels so wonderful. 조금은 뚝딱거려도 어색한 인사까지도 너와 나의 첫 만남

우리의 사이 Beautiful 내일도 내일모레도 기억해, 영원히 반짝일 순간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

내일 또 봐 안녕  _ <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TWS(투어스) 노래 가사 中       


살롱 드 까뮤의 첫 만남은 생소함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곽효진이라 합니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삐거덕거렸다. ‘예술 수업인데 보드게임은 웬 말이지?’ 속으로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배경음악으로 투어스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가 자동 재생 된다. 보통날은 가족들과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보드게임 하면서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이랑 책을 좋아한다고 했었나?’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말할 걸 그랬나?’ ‘좋아하는 영화는? 늘 생각의 꼬리에 끌려 주의가 산만했다.      


두 번째 만남은 난감함이었다.      


작품에 대해 글을 썼다. 순서대로 호명하면 합평하고 싶은 사람이 마이크를 켰다. ‘합평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하는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우리는 정해놓은 약속처럼 첫 번째도 다정함, 두 번째도 다정함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까뮤의 취지는 그림을 보며 치유하고, 글쓰기로 성장하는 것이라 했다. 나는 몰랐다. 겉에서 속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멀지 신중하지 못한 채, 난감한 상냥함에 안절부절못했다. 새로운 세계에 호기심만 커질 뿐이었다.      


최후의 검은 자유

수업이 없는 날은 쪽지창(메신저)에서 음악, 책, 여행, 날씨, 그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서로 마주했다. 만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중에 나는 그림을 상상해 깊숙이 내면으로 빠져드는 것을 좋아했다. 라몬 카사스의 ‘무도회가 끝난 뒤’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처럼 말이다.     


“너는 삶이 지루했던 거야. 부유하지만 퇴폐적이었고, 자유롭지만 권태로웠던 거야. 아름다운 시절, 화려한 검은 고양이처럼 말이지.”      


그림 속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여인이 대답했다.     


“최후의 시간이야. 녹색 소파에 기대  멍때리기로 마음먹었어. 나태한 균형 속에서 비현실적인 자유를 맛보면서 말이야.”     


여인과 짧은 대화를 하며 일상에 대해 생각했다. 최후의 자유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나의 녹색 소파는 어디에 있는 걸까? 늘 어디론가 숨어있던 우리의 진짜와 가짜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멍때리기에 늘 자유로웠다.      


일상의 통증

결혼을 한 후 일상 동일된 삶으로 살아내듯 가족의 존재 이유가 돼버린 채 십팔 년을 살아왔다. 새끼 오리가 어머 오리를 졸졸 따라다니듯 오히려 가족들을 쫓아다니며 불안해하며 지내왔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쇠사슬로 묶여있는 것 같이 간절하게 굴다. 하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자유로움에 자기 삶의 주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버렸다.


‘그림의 여인은 화려한 검은 고양이의 가면을 쓰고, 무도회에서 흘러나오는 왈츠에 맞춰 춤을 췄겠지.’


19세기말부터 빠르게 발전해 오던 시대와 지금의 폭발하듯 변화하는 21세기의 박자에 쉼 없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검은 구두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해지며 반짝인다. 이 세계의 무도회에서 일상의 통증을 느끼며 각자의 가면과 드레스를 준비한다. 가면무도회의 왈츠에 맞춰 둥글게 춤을 추며 흘러가는 강처럼 그 시간을 살아갈 이유를 찾아 나선다.      


까뮤가 그랬다. 현실이란 세계에서 삶의 바람처럼 불어왔다. 생소함과 난감함만이 가득했던 그녀들은 나의 글을 포근히 끌어안아주었다.


라몬 카사스 '무도회가 끝난 후', 1899


*아름다운 시절은 프랑스어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 부른다.

19세기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1914년)까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기     

*검은 고양이는 19세기에 파리시 몽마르트 언덕에 있던 카바레(1881), 화가 루돌프 살리가 세운 최초의 예술 카바레

 



안나 카레니나 영화에서 _아람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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