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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료료 Oct 06. 2024

매일을 12월처럼

매일을 12시처럼

매일을 12월처럼

매일을 12시처럼
안녕, 난 료료야. 너는 슬픔을 인정할 수 있니? 절망적인 감정이 깜빡임도 없이 처절한 순간에 꺼져버린다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숨은 어떻게 쉬어지는 걸까? 호흡을 뱉을 때 어떻게 해야 숨이 차지 않는 걸까? 박자를 놓치고, 영원히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늘 필요 이상의 불안을 삼키며 지냈어. 눈을 감으면 내가 사라질까 봐 매일을 12월처럼, 매일을 12시처럼 마지막일까 봐 두려워했어. 영원한 건 있을 리가 없잖아?      


이상하게 말이야. 여름이 지나서 가을이 오면 시원해져서 정말 좋은데 말이야. 금세 여름이 그리워. 그렇게 다시 가을이 가버리고, 겨울이 오잖아? 그러면 다시 또 가을이 그리워져. 이 가을 새벽에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려 하니 눈물이 고여. 하지만 무엇 때문에 괴롭고, 무엇 때문에 아픈지 복잡한 향기가 잔뜩 묻어 있는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어려워. 떨려오는 감정에 주저하게 될 때가 있어. 넌 어때? 항상 함께할 그날을 기대할 수 있니?      

언제 슬펐을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는 거 같아. 갑자기 울려오는 전화 같은 거 말이야. 그만하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건 버릴 수 없는 일과 같은 거 말이야. 언제 바람이 불어도 나에게는 그 바람이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 바람에 차가운 빗방울이 섞여 있어도, 그 바람에 비록 나를 닮은 시간에 마주친다 해도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작별을 한다고 하여도 말이야. 빗속에서 계절을 녹이는 잊혀가는 말을 다시 그리워할 뿐이야.      

우연의 구속
안녕, 난 료료야. 너는 슬픔을 바라볼 수 있니?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네가 서 있는 그곳을 떠나올 수 있니? 환호에서 뿜어내는 두려운 향기가 나에게 아찔한 부담을 줘. 슬픔은 일상에서 오는 절규이며 다른 어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폭발음과 동시에 도망칠 수 있는 구속과 해방 아니었을까. 어둠에서 밝혀야 제대로 보이는 불빛에 하염없이 홀연히 외로워지는 건 아니었을까. 어떠한 정적이 나를 위협해도 악함과 선함의 격렬한 논쟁의 시대에서 우연은 없어.    

얼마 전에 엄마와 통화를 했어. 엄마가 말했어. “그때가 좋았지.”  나는 지옥 같은 삶이라 생각했던 그 언젠가를 좋았다고. 울부짖고 떼를 쓰고 소리치고 숨어들었던 그 시간을.  젊었던 어린 시절이라 그래서? 꾸준히 힘든 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버틸 수는 있었어. 즐거웠던 시간들은 가뿐히 꽃향기처럼 시들어버리는 같았어. 추억하는 건 생각하지 않았던 건데 그때가 좋았다는 한마디에 엄마가 정말 가엽게 느껴졌어. 하나의 사람으로 태어나 존재하는 기쁨을 잘못 선택한 거 같았어. 가족들에게 희생하고 집착한 그녀의 세월을 향해서 말이야.      

갈기를 빗겨줘요
어떤 때에는 엄마의 냄새가 너무 좋아 폭 안겨 있기도 했어. 어떤 때에는 너무 무서워 도망치고 싶기도 했어. 세상에 없는 것은 너무나 많고, 세상에 있는 것도 너무나 많아. 세상은 세상으로 세상 밖은 세상 밖으로.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여행지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길 바랄 뿐이야.      


기쁨에도 그늘이 생기는 걸까?

무의식에 비치는 그림자는

슬픔을 통해 존재할지도 몰라

미세한 붓으로 행복한 그림자를 칠하면

행복에게도 그늘이 생기는 걸까?

기쁨에 갈기처럼 그늘이 번지기 시작한다면

세한 붓으로 기쁨의 갈기를 축하한다면


기쁨을 빗겨주는 그림자는 기쁨일까 슬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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