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12시처럼 안녕, 난 료료야. 너는 슬픔을 인정할 수 있니? 절망적인 감정이 깜빡임도 없이 처절한 순간에 꺼져버린다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 숨은 어떻게 쉬어지는 걸까? 호흡을 뱉을 때 어떻게 해야 숨이 차지 않는 걸까? 박자를 놓치고, 영원히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늘 필요 이상의 불안을 삼키며 지냈어. 눈을 감으면 내가 사라질까 봐 매일을 12월처럼, 매일을 12시처럼 마지막일까 봐 두려워했어. 영원한 건 있을 리가 없잖아?
이상하게 말이야. 여름이 지나서 가을이 오면 시원해져서 정말 좋은데 말이야. 금세 여름이 그리워. 그렇게 다시 가을이 가버리고, 겨울이 오잖아? 그러면 다시 또 가을이 그리워져. 이 가을 새벽에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려 하니 눈물이 고여. 하지만 무엇 때문에 괴롭고, 무엇 때문에 아픈지 복잡한 향기가 잔뜩 묻어 있는 시간을 찾아가는 길은 여전히 어려워. 떨려오는 감정에 주저하게 될 때가 있어. 넌 어때? 항상 함께할 그날을 기대할 수 있니?
언제 슬펐을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는 거 같아. 갑자기 울려오는 전화 같은 거 말이야. 그만하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건 버릴 수 없는 일과 같은 거 말이야. 언제 바람이 불어도 나에게는 그 바람이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 바람에 차가운 빗방울이 섞여 있어도, 그 바람에 비록 나를 닮은 시간에 마주친다 해도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작별을 한다고 하여도 말이야. 빗속에서 계절을 녹이는 잊혀가는 말을 다시 그리워할 뿐이야.
우연의 구속 안녕, 난 료료야. 너는 슬픔을 바라볼 수 있니?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네가 서 있는 그곳을 떠나올 수 있니? 환호에서 뿜어내는 두려운 향기가 나에게 아찔한 부담을 줘. 슬픔은 일상에서 오는 절규이며 다른 어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러운 폭발음과 동시에 도망칠 수 있는 구속과 해방 아니었을까. 어둠에서 밝혀야 제대로 보이는 불빛에 하염없이 홀연히 외로워지는 건 아니었을까. 어떠한 정적이 나를 위협해도 악함과 선함의 격렬한 논쟁의 시대에서 우연은 없어.
얼마 전에 엄마와 통화를 했어. 엄마가 말했어. “그때가 좋았지.” 나는 지옥 같은 삶이라 생각했던 그 언젠가를 좋았다고. 울부짖고 떼를 쓰고 소리치고 숨어들었던 그 시간을. 젊었던 어린 시절이라 그래서? 꾸준히 힘든 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버틸 수는 있었어. 즐거웠던 시간들은 가뿐히 꽃향기처럼 시들어버리는 같았어. 추억하는 건 생각하지 않았던 건데 그때가 좋았다는 한마디에 엄마가 정말 가엽게 느껴졌어. 하나의 사람으로 태어나 존재하는 기쁨을 잘못 선택한 거 같았어. 가족들에게 희생하고 집착한 그녀의 세월을 향해서 말이야.
갈기를 빗겨줘요 어떤 때에는 엄마의 냄새가 너무 좋아 폭 안겨 있기도 했어. 어떤 때에는 너무 무서워 도망치고 싶기도 했어. 세상에 없는 것은 너무나 많고, 세상에 있는 것도 너무나 많아. 세상은 세상으로 세상 밖은 세상 밖으로.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여행지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길 바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