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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공 Nov 26. 2019

삶의 의미에 대해

1942년 어느 날, 빅터 프랑클은 오스트리아 점령군에 의해 예고도 없이 인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강제로 기차에 태워졌다. 컴컴한 차량 한 칸에 금세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졌다. 빽빽한 사람들로 가려진 창문 위쪽으로 어스름한 잿빛 새벽빛이 겨우 새어 들어왔다. 목적지도 모른 채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을 공간 하나 없이 서서 이리저리 기차의 움직임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드디어 기차가 덜컹거리면서 속도를 줄이고 선로 밖으로 빠져 목적지로 진입했다. 저 멀리 낡은 팻말 위에 대충 적혀진 역 이름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우슈비츠’.      


기차 문이 열리고 총을 멘 군인들이 고함을 치며 대형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마르고 키가 커서 군복이 잘 어울려 보이는 한 장교가 끌려온 사람들을 살펴보며 손가락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은 그 움직임에 맞춰 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프랑클의 차례가 되자 장교는 그를 면밀히 살폈다. 프랑클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주시했고 장교가 가리키는 오른 방향으로 향했다. 프랑클은 군인들의 눈을 피해 수용소 생활을 한 지 좀 되어 보이는 수감자에게 자신과 함께 온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갔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왼쪽으로 갔다고 말하면서 위쪽 하늘을 가리켰다. “아마 저기로 가고 있을 거요. 하늘 위로.” 수감자가 가리키는 곳은 굴뚝이었는데 희뿌연 연기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에 따르면, 수용소에 함께 온 사람들 중 90퍼센트가 왼쪽 ‘목욕탕’으로 향했는데, 목욕탕은 화장터를 의미했다.      


빅터 프랑클(Victor Frankl, 1905~1997)은 정신과 의사였다. 그는 매 순간 죽음이 고개를 쳐드는 수용소의 극한 상황을 수년간 견디면서 살아남았고 몸소 겪은 체험을 온전히 녹여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새로운 정신치료법을 창안했다. 로고테라피에서 로고는 ‘의미’를 뜻한다. 프랑클은 현존했던 지옥, 즉 아우슈비츠의 구덩이에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바로 ‘삶의 의미’임을 캐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체험과 로고테라피 방법이 담긴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를 1959년에 출간했다. 프랑클이 죽고 난 이후 지금까지도 로고테라피는 정신질환으로 인해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을 치유하는 치료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아직까지도 심리학계와 정신치료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죽음이 코앞까지 닥친다면, 그 순간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을까. 프랑클의 말에 따르면 죽음을 앞에 두고 떠오르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다. 프랑클은 삶의 의미에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창조와 관련된 것으로, 책이나 그림 같은 예술작품을 만들거나 어떤 이론을 고안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부모, 자식, 친구 등 사랑하는 이들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고난과 마주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삶의 의미, 다시 말해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지루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이 우리에게 무수한 고난과 시름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는가. 어떤 군인이 추운 겨울 새벽에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잠을 떨치고 일어나 먼지 그득한 내무반을 청소하고,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꾸역꾸역 욱여넣고, 혹한기 훈련에 참가해 딱딱하게 얼어붙은 땅에 텐트를 설치하고 영하의 날씨에서 잠을 청하는 괴로움을 견뎌내는 의미가 무엇일까. 어떤 직장인이 아침밥 한술 제대로 못 뜨고 눈 비비며 헐레벌떡 뛰어가서 만원 지하철에 비집고 들어가 갑갑하고 더운 출근길을 몇 시간 동안 견디고, 또 정신없이 책상에 앉아서 쏟아지는 업무와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일과를 마치고 쓰린 속을 쓴 소주 한잔으로 식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떤 고시생이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서 한 자세로 앉아 수업을 듣고 비좁은 쪽방에 돌아와 소리 없이 오열하면서도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싸움을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문득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이모부가 떠오른다. 이모부는 이모를 일찍 하늘로 보냈고 학원에서 사무직 일을 하다가 해고당한 뒤로 하나 있는 아들을 위해 날품팔이 일을 전전했다. 일과를 끝낸 뒤에 찾는 위로라고는 오로지 막걸리 한 잔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모부는 고혈압을 앓았는데 가계 상태가 좋지 않아 건강보험 자격이 일찌감치 박탈된 상태였고, 약을 수년간 먹지 않아 지병이 더 악화되었다.      


나는 2011년 여름 어느 날, 이모부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뇌출혈이 일어났는데, 정신을 잃고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뇌사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들은 협의 끝에 이모부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며칠 뒤 장례를 치렀다. 이모부가 돌아가시기 3개월 전 가족이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 보았던 모습이 내 기억 속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이모부의 표정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이모부는 술을 마실 땐 늘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꿀꺽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목 뒤로 한 모금을 넘겼는데, 그러면 눈썹과 귀 사이에 굵은 실핏줄이 또렷이 드러났다. 장례를 치른 뒤 알아보니 이모부는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부터 아침, 점심, 저녁 거르지 않고 막걸리를 마셨다고 했다. 이모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게 원인이었을까. 하나 남은 아들을 위해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었기 때문일까. 정확한 이유를 콕 집어 말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때의 이모부는 삶의 의지를 버린 체념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체념의 사전적 의미는 ‘희망을 버린 것’이다. 체념에서 ‘념(念)’은 생각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체념은 희망뿐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지, 계획 등 미래에 연관된 삶에 대한 모든 생각을 끓어버린 상태다. 빅터 프랑클이 수용소에서 관찰한 ‘체념상태’에는 일종의 공식이 있었다. 수용소에서 체념한 이들은 아침 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밖으로 일하러 가기를 거부하고, 그대로 막사에 남아 똥오줌에 절어 있는 짚더미에 누워 있기를 고집했다.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경고도 협박도. 그 대신 아무도 몰래 주머니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고 피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에 프랑클과 동료들은 그가 앞으로 48시간 안에 죽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삶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순간적인 쾌락 추구가 대신하는 것이다.      


삶의 고난을 만났을 때 주저앉느냐 이겨내느냐는 온전히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 죽음에 처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시한부 환자는 대개 밤이든 낮이든 시시각각 찾아오는 지독한 고통에 시달린다. 살기 위해 억지로 씹어 삼킨 음식은 도리어 배가 찢어지는 듯한 복통을 만들어낼 뿐이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가족이나 벗과 술 한잔하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좀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내게 남아 있는 날을 세어보는 일, 창밖으로 보이는 빨갛게 물든 낙엽이 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에 나를 투영하는 일뿐인 것만 같다.     


그러나 빅터 프랑클은 삶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암흑 속에 묶여 있더라도,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육신이 망가져 병상에서조차 혼자 몸을 누이지 못하더라도, 그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숨이 멎기 전까지 인간에게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의지의 자유’다. 혹독했던 아우슈비츠에서도, 물론 극소수였지만, 타인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빵 한 조각과 희멀건 수프뿐인 배식에 몸이 바짝 말라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순식간에 가스실로 끌려가 처형당하는 동료들을 목격하면서도, ‘체념’하지 않고 굳건히 생명을 이어가는 자들이 있었다. 매일이 지옥과도 같던 수용소에서도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끊임없이 되뇌며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은 결국에는 살아남아 굳게 닫혀 있던 수용소 정문이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프랑클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그가 처한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수용소 수감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면 부족, 식량 부족, 폭력과 죽음 등 다양한 스트레스 환경에 놓여 있었지만,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지 결정하는 건 수용소라는 환경이 아니라 결국은 개인의 선택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삶의 의미는 희망과 연결되어 있고 희망은 미래에 있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은행 빚을 갚을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혹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고시원 쪽방에 틀어박혀 자신과 씨름하는 나날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병동에 누워 정말로 자신의 삶은 곧 끝나리라고 실감하고 있을 때는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곧잘 과거를 회상하는 데 몰두한다. 희망 없이 고통으로만 가득 찬 현재를 지워버리기 위해 과거만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현재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순간적인 쾌락만 추구하게 된다.     


프랑클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을 강조했다. 수용소 생활의 괴로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있는 그대로 대면했다. 결코 상상 속에서 과거를 그리며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더 이상 시련으로부터 등 돌리지 않고 시련을 있는 그대로 껴안아버리자 그 속에 어떤 기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더불어, 시련이 참 삶의 의미를 비춰주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고난, 죽음과 같은 시련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자기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고난을 인생의 선물로 받아들일지 아닐지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때로는 죽음과 죽음 이후의 무엇마저 인간의 선택이다. 그러니 최후의 순간까지 고난 앞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 이모부는 회사에서 해고되고 난 뒤 10년 넘게 단칸방에서 하나 있는 자식과 여생을 보냈고, 말년에는 술에 의지해 삶을 보내다가 차가운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쓰러져 뇌사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모부는 죽기 전에 얼굴도 모르고 살았던 4명의 이웃에게 새 생명을 나누어주고 먼 여정을 떠났다. 가족과의 협의하에 장기기증을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프랑클은 “우리 삶의 최종적인 의미도 결국은 임종의 순간에 드러난다. 우리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 없이 홑몸으로 단칸방에 살고 있든, 산더미 같은 빚덩어리에 갇혀 있든, 열 번째 응시했던 시험에 떨어졌든, 잘될 거라고 상상했던 인생이 엉망으로 흘러왔든, 프랑클의 말에 따르면 결국 한 인간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최후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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