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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공 Aug 26. 2019

떠나간 사람과의 마지막 인사

장례식장에서

얼마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불과 몇 주 전에 오랜만에 친가에 오신 할머니를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대상포진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게 엊그제였다. 그 뒤 증상이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연락이 와서 병문안을 하러 가려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가서 자리를 지켰다. 끊임없이 풍기는 향과 음식 냄새,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뒤섞였다. 친가, 외가, 처가의 가족들이 조문을 왔고 가족의 지인들도 방문했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할머니의 사촌 등 많은 이들이 찾아와 생전에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는 와중에도 살뜰하게 가족들을 챙겼던 할머니를 추억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감 죽은 데는 안 가도 대감 말 죽은 데는 간다’는 속담이 있다. 사실 조문은 인간관계 유지와 연관이 있다. 사회생활의 연장선에서 조문을 통해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장례식은 떠난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장소다. 당사자가 죽었으므로 어떤 이익관계와도 무관하게 진실로 망자에게 감사하고 인사하려는 사람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무감이나 관계유지의 의도 없이 망자를 조문하는 행위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



할머니의 빈소에 가만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잠들어 있던 예전의 기억이 깨어났다. 나는 군종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했다. 군종은 쉽게 말해 군대에서 스님, 목사, 신부의 신분으로 종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병과다. 군종으로 복무하면 장례식에 참석해 장례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장례의식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입장이다 보니 시신을 목격하는 일도 많았다.


부대 인근에서 발생한 우연한 사고로 민간인이 사망해 장례식장에 간 적도 있고, 군종 선배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장병 가족이 목숨을 잃어 장례의식을 진행한 적도 있다. 그때마다 특히 입관(入棺), 즉 시신을 관에 모시는 의례를 행할 때 대개 많은 가족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입관을 진행하면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험을 종종 했다. 나 자신은 감정을 잘 조절하고 침착하게 예식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며 경전을 읽지만,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의도치 않게 떨리는 식이다. 시신의 모습에 위축되었다거나 억지로 슬픔을 참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이를 잃고 오열하는 유족의 순도 높은 감정이 내 몸에 전염되는 걸 애써 거부하려는 데서 오는 떨림이었다. 의식을 주도하는 입장이라 입관실에서 오열하는 가족과 함께 울 수는 없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원만하게 예식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문객의 입장이 되면 나도 흔들리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다. 남보다 많은 장례식을 경험했지만, 그렇다고 장례식장 특유의 분위기에 내성이 생길 수는 없는 까닭이다. 군 생활을 하던 내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례식이 있다. 망자는 제대한 지 한 달이 갓 지난 청년, 영호(가명)였다. 영호는 군에 있을 때 제법 열심히 종교 활동에 참여했고 후임들을 잘 보살피는 착한 청년이었다.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제대할 날을 며칠 남겨두고 마지막으로 영호와 회식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까지 한 번도 가족사를 말하거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영호가 그때 꽤 진지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영호는 홀어머니 밑에서 컸고 아래로는 어린 동생들도 있었다. 가정 형편상 평범한 친구들과 달리 무작정 순진한 아이처럼 떼를 쓸 수 없었던지라 영호는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 아마 영호가 자기 후임을 살뜰히 보살폈던 이유도 집에 있는 어린 동생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차려 먹는 고기에 신이 나서였을까. 제대할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기쁨 때문이었을까. 뜨거운 불판의 열기에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영호는 내게 제대하고 나서 카센터에 취직해 기술을 배울 거고 그걸로 어머니를 돕고 학비를 마련해 자기 힘으로 졸업하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좀 지난 이른 아침, 핸드폰에 ‘부고. 이영호, XX 병원’이란 문자가 와 있었다. 깜짝 놀라 영호를 아는 후임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아는 그 영호가 맞았다. 부대 업무를 부랴부랴 정리하고 서둘러 장례식장을 찾았다. 거짓말처럼 영호의 사진은 영정 사진 액자 속에 담겨 있었다. 얼마 전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영호의 앳되고 젊은 얼굴을 영정 사진으로 보고 있자니 무척이나 어색한 느낌이었다. 당황하고 얼떨떨한 느낌으로 사진에 인사를 하고 영호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갔다.


그때 본 영호 어머니의 눈빛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영호 어머니는 바람이 다 빠져버린 풍선처럼 벽에 기대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위로를 전하려 했지만 전혀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영호 어머니는 내 말을 듣지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어쩌면 세상의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으려고 굳세게 다짐한 것 같기도 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그 눈. 그것은 세상과 이어진 모든 통로를 완벽하게 차단해버린 눈빛이었다.



영호 어머니의 눈빛을 본 순간 어쩌면 인간도 전자기기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기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하드웨어는 셧다운이 된다. 힘겨워도 감당할 수 있는 일에는 슬픔과 분노가 일어나지만, 한 인간으로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면 일체의 감정 작동이 중지되고 마는 것 아닐까. 영호는 음주운전을 한 친구가 모는 차의 보조석에 앉았다가 그만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운전했던 친구는 살았다.


전역 후에도 종종 지인의 장례식에 갔지만 입관에 참여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장례를 맞이하게 되면서 전역 후 처음으로 입관식을 참관했다. 수의를 단정히 차려입은 할머니의 시신은 깨끗이 닦인 채였다. 장례지도사의 진행으로 입관식이 시작되었다. 장례지도사가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하고픈 말을 하고 얼굴을 만져주라고 말했지만, 옆에 선 가족들은 오로지 눈물만 흘릴 뿐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 할머니의 모습은 여느 시신과 마찬가지로 그저 잠들어 있는 듯했다. 생전에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핏기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으로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육신은 서늘했다. 세상에 없는 그런 차가움을 도대체 어떤 온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가족들이 번갈아 할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흘린 눈물이 떨어져 육신에 온기를 조금 더했다. 어떤 말도,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고 무거운 공기 안에서 할머니 얼굴에 하얀 천을 덮고, 수의 위에 다시 다른 천을 덮어 감싸는 일련의 행위를 지켜볼 뿐이었다.


입관이 끝나면 영결식을 치르고 계속해서 조문객을 받는다. 마지막 3일째가 되는 날 장례식장의 마지막 절차는 시신을 모시고 화장터로 떠나는 발인(發靷)이다. 안치실에 모셔져 있던 관이 운구차에 실렸고, 이모들은 할머니의 시신이 담긴 관이 들려나오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오열했다. 장례식장을 떠나 화장터에 도착하니 화장이 시작되었다. 약 2시간가량 진행되는 화장이 끝나고 가족들은 습골실로 내려가서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린 할머니의 유골을 확인하고 납골함에 담아 유골을 봉안소에 안치하기 위해 다시 화장터를 떠났다.



발인을 마치고 화장터로 떠나는 날 이른 아침 장례식장 앞에는 여러 대의 운구차가 대기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직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은 살아 있고 나도 살아 있다. 그러나 결국 머지않아 사랑하는 다른 가족들도, 그리고 나도 죽음에 이를 것이고 우리의 시신을 옮기기 위해 운구차가 저렇게 차례를 기다릴 것이다.


영호와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망연자실해했던 영호 어머니와 우리의 가족도, 우리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의 죽음은 어느 순간 저 운구차의 대기 행렬처럼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은 장례식장의 빈객으로 참여하지만, 결국에는 우리의 사진이 빈소의 영정 사진으로 세워질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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