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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Jan 23. 2021

비극의 타임루프

1. 2014년 2월.

3살 현수가 있었습니다.

홀트 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던 현수는 입양된 지 3개월 만에 두개골이 파열되고 온 몸에 멍자국이 발견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아버지 패트릭 오캘러헌의 학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홀트 측은 현수 온몸에 난 멍 자국이 “‘몽고반점’ 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변명해 공분을 샀습니다.



2. 2014년 10월.  

2살 A양이 있었습니다.

울산 울주에서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 끝에, 입양된 지 10개월 만에 외부 충격에 의한 뇌출혈 등으로 짧은 삶을 등졌습니다. 양부모는 A양을 입양하기 위해 재산과 직업 증빙 서류를 위조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2014년 12월.

A양이 숨진 지 한 달여 만에 탈북자 출신 조명철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동료 의원 16명과 함께 <입양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A양 사건 같은 비극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입양 기관의 사후 서비스 제공 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입양 기관이 양부모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때는 입양 기관을 업무정지하거나 허가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한 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하면 폐기됩니다.


4. 2015년 4월.

 요즘 이해충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강기윤 의원. 강 의원은 당시 새누리당 동료 의원 9명과 함께 <입양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입양 기관의 사후 서비스 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정기적인 가정 방문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는데 법을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비슷한 법안 가운데 입양 기관의 아동에 대한 의무를 가장 엄격하게 규정한 법안이었는데 역시, 한 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임기가 만료돼 폐기됐습니다.



5. 2020년 6월.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은 동료 의원 10명(전재수 이정문 박광온 고용진 남인순 변재일 윤관석 윤호중 양향자 강선우)과 함께 <입양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입양 특례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 <입양에 관한 실태조사 및 연구>를 명시하고 있는데(입양 특례법 3조 4항) 구체적인 방법이나 시기, 주기는 정해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태 조사를 매년 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사후 입양 관리를 철저하게 하자는 게 신 의원의 법안입니다.

발의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위원회 심사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6. 2020년 10월 

생후 16개월 정인이가 있었습니다.

서울 양천구에서 양부모의 학대 끝에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경찰은 세 번이나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도 정인이를 부모로부터 분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은 물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7. 2021년 1월

19일 보건복지부는 <입양 아동 사후 관리 강화>가 포함된 '아동 학대 대응 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봤던 내용들 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또 법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지키는 것도 아니겠지만,

입양 아동에 대한 사후관리를 좀 더 철저하게 하고 잘못됐을 경우 입양기관을 벌주는 이런 법안들이 2014년 정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래서, 법이 계속 고쳐지고, 예산도 좀 더 배정됐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입양된 어린이들이 두 번, 세 번씩 반복해 고통을 받다가 삶을 마감하는 것이 비극이라면 그런 비극을 만들고 또 만들고 또 만드는 우리의 아둔함은 더 큰 비극이 아닐는지. 이 비극의 타임루프는 언제까지 계속 될까요.


**<법안으로 세상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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