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만드는 공식은 있을지 몰라도, 커피를 마시는 것은 주관적이다
커피를 무척 사랑하는 C양이 묻는다. "설탕 안 젓고 그냥 마셔요?" 투샷 에스프레소를 데미타세 잔에 담아 설탕만 그냥 풀어버리고는 홀짝 마시는 내 모습에 무척 놀란 표정이다. 난 C양에게 묻는다. "왜 저어야 하는데?" C양은 유난히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 써요?"라고 되묻는다. 물론 쓰다. 하지만 이렇게 마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루가 참 길고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진하게 투샷 에스프레소를 데미타세 잔에 담아 마신다. 이 잔엔 커피 외 물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요 작고 도톰한 잔 안에 무척 진한 커피가 담겨 있으면 이 좁은 세상에서 아둥바둥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과도 같이 느껴진다. 힘든 이민 생활을 벗어나고자 쉬운 길을 가고 싶은 것처럼, 조금 더 넉넉한 잔에 담에 부드럽게 마시고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쉬운 것과 부드러운 것은 언제나 끝에 쓴 맛을 남기고 간다.
데미타세 잔에 담긴 투샷은 정말 진하다. 어려서 한약을 참 잘 마셨던 나지만, 이 조합은 그 어떤 한약보다도 쓰다. 그래서 여기에 설탕을 넣는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 것을 극도로 예민하게 여기는 요즘 현대인들이 볼 때는 '저 사람은 몸 생각 안하네'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데미타세 잔에 담긴 진한 투샷은 설탕을 넣는 편이 좋다.
내가 요렇게 작은 에스프레소에 매력을 알게 된 것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옛날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 여행 때문. 큰 성 절벽 옆 바위 위에 자리한 카페는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노 신사는 지금 내가 마시는 잔보다 더 작은 잔에 커피를 담아 설탕을 듬뿍 넣고는 스푼으로 몇번 휘저으며 향을 음미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억에 남아 있는 탓에, 작은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는 이후로 고단함과 피로가 몰려올 때 그때 그 노 신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게 해주는 작은 여유가 됐다.
처음엔 나도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고 저은 뒤 이 맛을 음미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과 같이, 무척 쓸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 달콤함이 혀끝을 자극하고 목넘김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런데 커피를 배우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나에게 커피를 가르쳐 주신 신부님은 항상 데미타세에 담긴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가득 넣고 젓지 않고 마신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은 항상 커피 안에 담긴 철학을 말씀하신다.
첫 맛은 쓰고 마실수록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이 느낌.
여기에 인생의 고진감래가 있다
신부님의 철학을 듣고 나서 나도 데미타세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설탕을 넣고 젓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커피를 나름 잘 안다는 사람들은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지 말라는 사람도 있고, 설탕을 넣고 빠르게 세번 저으라는 사람도 있다. 난 그런 조언에 콧방귀도 안 뀐다. 커피는 만드는 공식은 있을지 몰라도, 마시는 것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설탕을 넣고 젓지 않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시작부터 진한 달콤함이 배어든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는 몰랐다. 내 혀를 무디게 만드는 그 진한 달달함은 마시는 끝에 항상 약간은 씁쓸한 무엇인가를 남기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설탕을 젓지 않고 마시는 에스프레소는 첫 맛은 그 특유의 눈쌀 찌푸리게 하는 쓴 맛이 느껴진다해도 마실수록 그 아래 진하게 녹은 달콤함이 무척 기분을 좋게 만든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좋다는 것처럼, 쓴 맛도 먼저 맛보는 것이 어쩌면 나은 것일지 모른다.
이민 생활이 힘들고 지칠 때 그런 에스프레소 한잔은 신부님의 말처럼 '지금은 힘들어도 곧 달달한 날이 올꺼야'라는 희망으로 하루를 살게 한다. 그런데 나만의 개똥 철학을 들은 C양도 한번 따라해 보겠다며 데미타세 잔에 담긴 투샷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고 젓지 않는다. 그리고 한참을 우리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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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Paul Hw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