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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s Oct 14. 2022

명함과 직급으로 만들어진 나

사회생활 10년 차, 이직 2년 차 회사원의 이직을 한 이유와 소감

사진을 전공했고 작가를 꿈꾸던 나는 덜컹 회사원이 되었다. 이후 사진 관련 기업에서만 10년 정도 일을 해왔고 마케팅과 PR, 세일즈 등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해왔다. 사진 회사였지만 사진에 대한 욕심보다 마케팅 업무에 대한 욕심이 커져갔고, 이 경력을 바탕으로 이직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순환 보직'이라는 인사 시스템 하에, 몇 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하고 여러 업무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하루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과 회사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은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또, 누군가가 승진을 하면 누군가는 누락을 하게 되는데, 1년에 한 번씩 발표되는 인사명령 속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일을 하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나 휴식 때 잠시 나누는 동료들의 대화에 내 이름이 나올까 두려웠고 나의 발목을 계속 붙잡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요동쳤다.


같은 대학의 친구들과 시작을 비교하면 급여와 고용의 안정감 면에서 우위에 있었다. 출근만 하면 월급이 나오고 명절이나 휴가 시즌이면 상품권 등이 나왔고, 대기업에 소속되었다는 자부심이 마음속 어딘가에 새겨졌다. 특히 공채 출신이었던 나는 연수원에서의 여러 프로그램들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들은 고쳐주고 변호하는 자발적인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상황은 역전되었다. 힘들게 작업과 일을 하던 대학 친구들은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여 억 단위의 차로 바꾸고, 다른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과의 일을 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접하면서 내 처지가 문뜩 처량해졌다. 또 내가 생각했던 적절한 보상은커녕 진급에 실패하게 되면서 나의 마음은 요동쳤고, 내가 다니는 회사를 생각할 때면 부정적인 생각만 남을 뿐이었다. 내 삶과 회사에 불만은 결국 나의 삶을 갉아먹고, 더욱 위축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은 상사와 동료들에게 향했고 늘 동료들에게 화만 내고 피하고 싶은 오 대리였고, 대학 친구들과의 대화에는 회사 욕만 하는 회사원이었다.

오피스가 밀접한 곳에 가면, 그곳에서 일하는 회사원들이 멋있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한 줄기 희망은 이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요동치는 나의 마음에 가볍게 무언가를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했던 업무들이 보잘것없어 보였고, '순환보직'이라는 이름 하에 계속 바뀐 나의 소속과 업무에 늘 아쉬움만 남았다. 나의 업무들과 자기소개서를 정리할 때면 한숨만 나왔고, 어디부터 나를 '포장'해야 할지 답답했다. 어찌어찌 정리해서 나의 이력서를 이직 플랫폼에 올려도 매력적인 회사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무엇도 나의 삶을 만족할 수 없었고, 그런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나도 어서 빨리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남들은 빠르게 올라가고 나는 멈춰있기는 커녕 반대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2~3년의 시간이 흘러 어느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고, 마케팅 직군의 어느 대기업 계열사에 인적성 시험과 면접을 보게 되었다. 헤드헌터는 내가 엄청 유력하다며 붙으면 반드시 가겠다며 구두로 약속을 받아갔다. 스스로 이야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었고, 그렇게 연습과 준비 없이 면접장에 들어섰지만 어떤 답변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이야기하다 나왔고, 그렇게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후 마케팅과 관련된 IT 기업과 사진과 관련된 몇 개의 기업에 면접을 진행했지만, 여러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21년 여름의 어느 날, 새벽에 이직 플랫폼에서 푸시 알림이 울렸고 간단한 전화 영어 면접과 대면 면접으로 지금 회사에 합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직의 기회가 나에게 날아왔다.


첫 회사에 입사할 때에는 군대에 입대하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시작했다면, 지금 회사는 최대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빠르게 적응하자는 마음으로 입사를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되 재미있고 즐겁게 일을 하고 싶었다. 대기업에서 이직자에 대한 묘한 시선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최대한 회사와 사람에 녹아들고 싶었다. 다행히도 외국계 기업에 이직자에 대한 시선은 내가 들은 것과 달랐고, 전 회사에서 내성이 생겼는지 웬만해서는 사람과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생기지 않았다. 이런 일로 너무나 마음이 편해졌고 스스로 일을 찾아 하고 있으며, 특히 동료들과의 업무에 대한 불화도 다행히도 아직까지 없다. 가끔 전 회사 사람들을 만나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냐며 놀라곤 했고, 이런 내 모습이 나 스스로 도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오 대리는 한스 과장이 되었고, 늘 불만뿐이었던 회사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회사와 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회사원이 되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음 단계를 이성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차근차근 미래를 그려보려고 한다.


오래간만에 연락한 친구에게 때때로 낯선 모습을 경험하곤 한다. 굉장히 날카롭거나 비관적이고, 내 이야기보다 본인의 불만을 늘어놓는 친구 모습에 당황 해던 경험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였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나의 문제인데 내가 너무 심했다.'라고 자책하지만 마음가짐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런 몇 년의 문제는 결국 이직으로 극복했다. 이렇게 저렇게 고쳐봐도 작동하지 않았는데, 콘센트가 뽑혀있었던 전자제품처럼, 너무나 간단하게 고쳐졌다. 나의 환경은 결국 나의 본모습이고 그 속의 삶은 나를 휘감는다. 지금의 삶에 아쉬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화살은 날카롭게 변해 내 주변을 향하고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지금 삶의 불만족스럽고 그게 일 때문이라면 어서 명함 속 회사와 직급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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