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아래 사랑의 본성
평소 최종병기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일컬어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보냈나." 라고 표현하는 그 안드로메다는 250만광년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안드로메다 은하가 폭발한다고 해도 250만년 후에나 우리 눈에 관측될 것이니(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약 300만년전에 출현했다.) 나에게 없는 그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보내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과 큰 공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무상함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외계인을 다룬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나 SF 소설 등이 있고 그를 통해 우리들이 상상 가능한 다양한 모습의 외계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우주전쟁> 같은 영화에서는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내려온 악역 침략자로 묘사되고, 에이미 아담스의 <컨택트> 같은 영화에서는 외계인을 지구인과 완전히 다른 생명체로 묘사함으로써 미지의 두려운 감정을 주는 존재로서 기능합니다. 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같은 영화에서는 우호적인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외계인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주로 미국에 찾아온다.) 영화와는 달리 외계인과 우리들은 조우하기에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는데,
첫번째 이유는, Time Scale의 차이가 많이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최소 수만광년을 헤치고 지구로 온 외계인의 Time Scale은 지구인에 비해 매우 느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선 안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는 상대성 이론은 미뤄두자. 우주선 타고 올 정도의 과학 문명을 가진 외계인들이라면 상대성 이론 정도는 알고 있겠지? 설마 상대성 이론이 지구인에게만 적용되는 로컬 룰은 아닐 것으로...)
생명체가 우리처럼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고 비슷한 수명 체계를 가졌음에도 지구로 건강의 이상 없이 방문을 했다면 지구의 생체 시계 또는 그들이 느끼는 Time Scale은 지구인들에 비해 현저히 느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Q :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말 한마디 하는데 지구인 시간으로 30년이 걸린다면?
A : 지구인은 속 터져 죽는다.
두번째, 외형 또는 사이즈의 차이가 매우 클 것입니다.
외계인은 먼지만한 우주선을 타고 이미 우리 모르게 지구를 다 정찰하고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지구인처럼 공기를 진동시키는 음파로 소통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아, <트랜스포머>를 보면 영어로 소통하기는... 기계가 소리를 내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을까. 훨씬 더 효율적인 전파가 있는데...)
게다가 결정적으로 빛을 통해 우리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형태의 외계인이 올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세번째, 문명의 시기가 비슷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미 외계인은 50만년 전에 지구를 방문했을 수도 있겠죠. 다만 당시 지구는 별 볼 일 없어서 돌아갔을 뿐. 앞으로 50만년 후라면 상당히 호전적인(지구는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는 국회에서도 늘 전쟁 중...) 지구 문명이 앞으로 50만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외계인의 문명은 또 어떨까요? 문명이 명멸하기를 반복한다면 서로를 인지할 수 있을 만큼의 문명을 가진 지적 수준의 생명체가 같은 시기에 딱 마주칠 확률은 매우 희박할 것입니다. 지구도 200년 전만 해도 외계인을 인지하고 대응할 수 있을만한 인지 능력이 없었을 거니까요.
늘 그렇듯, 쓸데 없는 잡설이 길었는데...
식량이 떨어진 외계행성에서 지구로 보내진 에일리언이 한 지구인 여성의 몸에 들어가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에일리언이 스칼렛 요한슨인지 지구인 여성이 스칼렛 요한슨인지 어쨌든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구인의 기준으로 외계인을 타자로 바라보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하는 이야기에는 익숙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지구인과 완전히 다른 존재인 외계인이 바라보는 지구인 모습의 이질감, 그리고 지구에서의 고독, 생소/생경함, 그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행동 등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해본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외계인이 느끼는 지구인의 사랑과 사랑의 행위,즉 섹스는 어떤 시선으로 보이게 될까?
외계인 레포트 - 지구인의 외모에 대한
지구인은 대략 위 아래로 긴 형태를 가졌으며 영양분을 소화하는 부분이 중앙에 동그랗게 위치해있다. 인간은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운동하고 단련한다.
그 중앙의 몸통에서 이동을 위한 길고 강한 단백질 근육으로 이루어진 긴 촉수가 두 개가 돌출되어 나와서 그 긴 촉수를 번갈아 가며 바닥을 디디고 이동한다. 중앙의 몸통에서 두 개의 약간 짧은 촉수가 좌우로 나오는데 그 두 촉수는 다시 각각 5개의 가지가 뻗어 나와 물건 등을 만지거나 잡고 생존에 필요한 일련의 작업을 한다.
특이하게도 몸통의 윗부분에는 이 모든 것들을 컨트롤하는 타워가 위치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상단에 있어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이 부분이 고장나면 지구인은 사망한다. 머리라고 부르는 그 부분은 상당히 오밀조밀한 기관들이 위치해 있는데 빛을 감지하는 기관이 상단에 두 개 위치해 있고, 호흡을 하고 기체 분자를 감지하는 구멍이 두 개 있다. 그 아래에는 영양분을 섭취하는 큰 구멍이 있는데 매우 흉측하게도 그 구멍 아래에는 섭취물을 잘게 부수는 20여개의 돌들이 붙어 있고 섭취물의 맛을 느끼는 작고 붉은 촉수를 낼름낼름한다. (실제로 보면 너무 징그럽다.)
특이하게도 지구인은 빛을 감지하는 기관 위의 작은 표피가 주름이 져 있는지 안 져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고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털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름다움의 기준이라고 하니 다소 의아하다.
사실 <언더 더 스킨>은 요한슨이 홀딱 벗는다는 이슈에 묻혀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언더 더 스킨>은 상당히 새롭고, 실험적이며 또 흥미로운 영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최종병기는 완벽한 대중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작품성, 철학적 메세지, 예술성 따지며 지적 허세 부리는 영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 취향에 따라 상당히 난해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미리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SF영화이지만 사랑에 관한, 또 사랑의 본질을 찾는 영화이지만, 외계인 요한슨이 느끼는 지구인과의 관계에 대한 공포를 전달하는 호러 영화(외계인 입장에서)이기도 합니다. 섬뜩함과 기이함, 그리고 몽환적이고 너무나 느린 호흡의 이 영화는 그저 착한 놈, 나쁜 놈 나누어 결론을 내주는 영화와는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심플한 스토리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결론과 주제를 관객들의 몫으로 내어주는 열린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듯 흘러가지만, 신경을 거스르는 불편함도 동시에 주는 영화 음악, 스칼렛 요한슨의 훌륭한 연기, 스코틀랜드의 축축하고 황량한 자연,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 던지는 메세지, 고요하지만 시끄러운 자연의 소리가 이 영화를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미려한 영상은 이 영화가 주는 덤이죠.
피부 아래 깊숙히 도사린 전 우주의 보편적 감정, 사랑과 그 본성을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p.s. 아, 물론 벗는다고 해놓고 대역을 쓰거나 안 벗는 건 아니고 진짜 벗긴 합니다. 하나도 안 야하게 느껴져서 문제지.
<끝>
<언더 더 스킨 - 피부 아래 사랑의 본성> written by 최종병기, ⓒ 최종병기
병맛나는 삼류 쌈마이 글,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지만 출처는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