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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병기 May 15. 2019

<택시 운전사> - 하염없이 쓰러지던 눈부신 5월의 봄

그 날의 그 봄, 다시.

1980년 5월 계엄령 선포 후, 세상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만 광주에서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특전사 소속 7여단과 11여단 병력을 광주로 내려보냈다. ......공수부대 병력 1천여 명이 작전개시 준비를 마치고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전명령은 '화려한 휴가'였다. 그러나 그 휴가는 인간사냥을 위한 것이었다.     -   한국 현대사 산책 1980년대편 1권 120쪽, 강준만 




산비탈에 지천으로 경쟁하듯 녹음이 우지지구, 아지랑이가 살랑살랑 피어 올라 코를 간질간질하던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이었제. 알지라? 봄이 오면 느껴지는 향그러운 그 봄내음과 사람의 맴을 들뜨게 하던 그 겁나게 아름다운 날들을 말여. 


아마 그 때가 80년의 5월이었던 것 같지라. 그 날도 따땃~하고 살기 좋은 그런 날이었지잉.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살박이 아덜, 영준이는 등 뒤에 업혀 웅얼웅얼 보채고~ 웅~ 그랴. 우지 말그라~ 너그 아빠 곧 온당께…위 아래로 달래고 어르며 내 신랑허고 알콩달콩 먹을 저녁 준비하고 있었당가? 그랬을 거여. 우리 신랑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내가 맨든 된장찌개를 겁나게 좋아해버린당께? 그래서 그 날 저녁은 된장을 보글보글 끓이고 있었지 않았겄어~ 


사실 그 날은 우리 신랑한테 이야기헐 것이 있었는디 그건… 우리 신랑은 아직꺼정 모리지만 말여. 요건 쪼~까 좀거시기 부끄러운 이야긴데… 우리 아덜 영준이 동생이 내 뱃속에 들어선 것이 아니겄어. 히히힛. 우리 신랑이 들으면 좋아서 까무라칠것잉게. 

휴가를 왜 여까지 내려왔디야?


그렇게 기분 좋고 설레이는 날이었던 것 같어. 그 날은… 그리고 귀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총소리를 들은 날이었제. 총소리가 나고 먼가 거시기 펑펑펑 터지는 소리가 나고 말여. 사람덜은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고 자빠지고 넘어지고 했던 것이여. 전쟁이 났는 줄 알았지. 찢어 죽일 북한 빨갱이 넘덜이 전쟁을 일으켰나보다~ 혔지. 증말 겁나게 무서웠지라. 우리 세살박이 아덜은 마구 울어재끼고 말여.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나중에 가수해도되겄어. 우리 아덜은. 목청이 어찌나 좋은지 말여. 그려, 아들 자랑이여. 우짰든 빨갱이 넘덜이 전쟁을 일으켜도 우리에게는 든든헌 국군이 우릴 지켜주지 않겠어? 그렇게 믿고 있었지라.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상 차려놓은 된장찌개가 다 식고 데우고, 식고 또 데우고 말여. 배고프다고 우는 우리 영준이 달래고 수천번 꼬르륵 거리는 주린 배를 움켜쥐고~상 앞에 식어 가는 된장을 보며~ 아무리 신랑을 기다려도 오질 않는 거여.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이제 오나 저제 오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당께. 담날 이웃집 영숙이 엄마 말을 들으니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거여. 이런 육시럴한 놈들을 봤나. 머시라? 빨갱이덜이 폭동을 일으켜야? 내는 더 이상 참지 못혀, 집에 고이 쳐박혀 있으라는 영숙이 엄마 말을 뒤로 허고 빨갱이한테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 신랑을 찾아 나섰지. 


이제는 30년이 넘었다.

그렇게 화약냄새와 연기가 자욱한 봄날 우리 신랑을 찾아 나서는데 여염집 여자가 뭘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겄어. 우리 영준이 아부지 직장에도 없고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거여. 광주 시내를 돌아댕기고 영준이 아부지~ 영준이 아부지~ 목놓아 부르며 돌아댕겼지. 그 때였어. 기가 막힌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은… 우리를 지켜줄 조국의 군대가 우리덜에게 총구를 조준해서 두두두 마구 쏘고 사람덜은 머리통이 박살이 나구 피를 철철 흘리는데도 마구잡이로 밟고 때리고. 거시기 어떤 아저씨는 그 머시냐 장갑차가 깔고 뭉게고 지나가 머리의 반이 없이 피를 쏟으며 도로 위에 널부러져 있고 어떤 학생은 배떼기에 내장을 튀어 나온 채로 쓰려져 있고 말이여. 빨갱이 잡아야 할 국군이 왜 우리 머리통을 박살을 내는 건지 도대체 이해를 못혔지. 참말로 겁나게 무서웠지라. 참말로 소스라치게 놀랐지라. 벌벌벌 떨었지라. 

선동렬이 등판하면 그 게임은 포기

그렇게 정신 없이 도망허구 집에 와서 바깥에 들리는 총소리, 비명소리, 신음소리를 들으며 방구석에 쳐박혀 하염없이 울고 있었지. 그래도 말여. 우리 영준이는 우지 않고 힘내라고 제 엄니를 의젓히 바라보는 폼새가 앞으로 장군감이다 생각혔지 않겄어? 그려, 아들 자랑이여~ 


담날 정신을 차리고 뭔가 사람덜이 잘못을 했으니 그런 것이겄지. 라고 생각을 혔지. 그려. 뭔가 잘못을 혔으니 그런 것 아닌감? 우찌 아무 잘못 없는 사람덜을 그리 할 수 있단 말인가. 암…그렇고 말고. 하지만 TV 뉴스에도, 신문에도 두 눈을 불을 켜고 살펴 보아도 이 동네 소식은 일절 나오지 않고 답답혀서 바깥에 나가보니 정말 놀래서 자빠질 뻔 혔지. 그들은 우리를 폭도, 빨갱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았겄어. 앞집 미진이 엄마는 나갔다가 그이도 오지 않고. 우리 신랑은 사흘이 넘어 지나도록 눈이 빠지게 기다려두 돌아오질 않고. 북한의 빨갱이로부터 우리를 든든히 지켜줄 조국의 군대가 도리어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심지어 반항할 힘도 없는 어린 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칼로 긋고, 총을 쏘고, 밟고 때리고 짓이기고 있었던 것이여. 정말 답답혀서 환장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제.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제. 다시 돌아가라 하면 다시 돌아가겄소?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우리 피붙이와 이웃들의 처절한 죽음을 보고 있어야 하는 그 경기 일으킬 말로 다 표현 못할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말여. 



허나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르고 때리던 군인 아자씨들도 너무 탓하지만은 마소.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당가? 다~ 위에서 시켜서 그런 거여. 우짤 수 있겄소. 그 아그들도 먹고 살라믄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겄소. 그들도 불쌍한 사람들이니 잘 보듬어 줘야되는것이랑께.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구는 광주에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허고, 누구는 야구선수 스카우트 하러 오구, 누구는 휴가를 화려하게 보내러 오기도 한다는데 말여.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는 가난한 그 아저씨는 잘 살고 있는지 안부 좀 전해주소. 



본인은.... 29만원 밖에 없다니까. 이거 왜 이래~?

그려서, 내는 잘 살고 있냐고? 그 이후 내 소식을 다 이야기 못 했구마잉~ 나는 우리 영준이 업고 집 앞에서 오지 않는 우리 신랑 서성거리며 기다리다가 어디서 날아 와는지 모를 총알에 머리통에 맞고 쓰러져 사랑하는 우리 신랑 있는 곳으로 갔지. 그려도 너무 슬퍼하지 마소. 내는 괜찮으니께… 허나 내 뱃 속에 있던 못다 핀 생명에게는 너무 미안혀. 우리 아가야~ 너무 미안혀? 세상의 빛을 못 보여줘서.... 


우리 똘똘허구 의젓~허구 씩씩헌 아덜 영준이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겄지. 그랴~ 마지막 아들 자랑이랑께. 우야되었든 너거덜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여. 행복하게 이쁘게 그렇게 살다가 먼~ 훗날 이 곳에 오소. 내가 반갑게 맞이할랑께. 그럼 잘 지내쇼잉~?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사람들의 피를 마시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고로 자유롭게 나의 의사로 표현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떠올리면 불편하지만 우리의 현재를 만든 큰 의미를 가진 역사, 80년의 5월 광주의 이야기를 확인하세요. 


<끝>


<택시운전사 - 하염 없이 쓰러지던 눈부신 광주의 봄> written by 최종병기, ⓒ 최종병기

병맛나는 삼류 쌈마이 글,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지만 출처는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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