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종병기 Nov 14. 2019

<본 투 비 블루> - 본 투 비 러브

 재즈를 위해, 아니 사랑을 위해 태어나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한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 사랑을 반영합니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사람도 있죠.


깊어지는 무거운 가을, 따뜻하고 쌉쌀한 재즈 한 곡이 어울리는 밤에,

재즈 음악계의 전설 중의 하나로 기억되는 백인 트럼페터 쳇 베이커의 이야기 <본 투 비 블루>입니다.



『 천상의 노래를 연주한 악마 』


쳇 베이커는 아버지의 폭력과 억압 속에서 성장했습니다.(여기까지는 여느 불우한 환경과 비슷) 청소년 시절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 악보도 잘 볼 줄 몰랐지만 독학(!)으로 배운 트럼펫으로 그냥 음반이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귀로 듣고 그대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습니다. 마치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요.



흑인만의 전유물이었던 재즈 바닥에서 얼굴 반반한 백인 뮤지션의 등장은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 냅니다. 재즈계의 아이돌, 트럼펫계의 BTS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흑인들은 그를 혹평하며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평생 흑인 재즈에 대한 존경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사망하는 59세까지 평생 약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변인들에게도 마약에 물들이고 또 상처 주기도 했습니다. 마약, 여성 편력, 폭력 등으로 점철된 막장 인생 여정을 보내고 음악 커리어도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복이 매우 심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재즈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재즈계의 레알 레전드, 레.레. 마일스 데이비스와 비교하면 연주력과 음악성보다는 약쟁이에 악동 이미지, 잘생긴 백인의 이미지를 팔아 먹고 살았다는 평가가 다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쳇 베이커 팬 : 솔직히 마일스 데이비스와 비교해서 명함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꽈!


"난 음악을 네다섯 번 정도 바꿔놨지요. 당신은 하얗게 태어난 거 빼고 무슨 중요한 일을 하셨는지?"

1987년 로널드 레이건의 백악관에서 열린 레이 찰스 기념 연회에서,옆에 앉은 사교계 백인 여성이 자신에게 무슨 업적으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자 마일스 데이비스가 한 말. 마일스 데이비스는 쿨, 비밥, 프리, 퓨전까지 재즈 역사의 산증인이자 개척자라고 할 수 있음.

??? : 자 제 명함.


쳇 베이커 팬 : 누...누규?


??? : 나 루이 암스트롱. What a Wonderful World~ ♪


큰 눈과 입,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친근한 이미지이지만 그야말로 재즈의 아이콘이자 레전드인 루이 암스트롱


쳇 베이커 팬 : 띠요옹~ 그래도 쳇 베이커가 외모로는...


이렇게 반반한 외모... 시계는 어디서 사셨어요?



영화의 제목인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 자신이 만든 노래 제목을 따왔습니다. 음악(재즈, 블루스의 음계를 블루 노트라고 하죠.)이 그의 인생의 전부이자 삶의 목적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의 색깔이 낭만적이고 퇴폐적인 우울함이 전편에 흐르는 다크 블루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안 그래도 어린 시절 돌에 맞아 앞니가 하나 없어 바람이 새는데..."



그가 38살이던 1966년 약팔이에게 두들겨 맞아 이가 모두 나가는 상황이 옵니다. 마약으로 폐인이 된 상황에서 앞니가 없어 트럼펫을 불지 못하는 역경이 닥칩니다. (트럼펫은 TV로만 본 최종병기가 찾아보니 마우스 피스를 이로 물어 고정하고 연주를 한다고 합니다.) - 자세히 아시는 분이 있다면 설명 부탁 - 



이 지점에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데, 50년대의 그의 전성기 시절을 흑백화면으로 삽입하는 연출을 함으로써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① 화려했던 천재의 모습

주변의 찬사와 일부 질투, 방탕한 모습과 약간의 거침 없는 거만함을 보여주면 더 좋다.


② 천재의 몰락

천재의 방황과 주변의 지나칠 정도의 거친 손가락질이 덧붙는다.

천재가 흠신 두들겨 맞아 엉망이 되주면 관객들의 동정을 사는데 효과가 좋다.


③ 사랑으로 물심양면 도와주는 조력자 등장

천재는 너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밀어내며 때로 다투기도 하나 조력자는 그의 주변을 맴돈다.


나는 끝났어!!! 으허헝 나는 이제 끝났어.

아니야. 나는 널 믿어! 넌 헤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의 곁에서 맴도는 조력자가 너무 착하다. 한없이 착하다.


④ 힘겨운 재기 과정

어느새 조력자의 진심을 깨달은 천재는 재기에 노력한다.

주변의 비웃음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이 때 조력자가 죽거나 다치면 관객의 응원을 받기에 더더욱 좋다.


⑤ 재기 성공


조력자가 저 먼 하늘에서 웃는 모습으로 페이드 아웃.(이건 좀 유치)"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는 많이 있었죠. <본 투 비 불루>는 비슷한 주제이지만 뻔하지 않은 특별한 흐름과 감성을 보여줍니다. <위 플래쉬>와 같은 재즈 음악 영화임과 동시에 <뷰티풀 마인드>에서의 천재의 방황과 사랑, <글루미 썬데이>의 낭만적 우울함을 동시에 갖춘 영화입니다.


천재의 고통, 나는 절대로 느껴보지 못한...

       



웨스트 코스트의 풋내기가 너희를 잡아먹어주마


저 남자의 패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말(허세)은 주인공 열등감과 내적 갈등을 잘 암시합니다. 쳇 베이커는 평생 약물 중독으로 약물과 싸우기도 했지만 마이너 오브 마이너로서 주변의 편견과도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재즈는 동부 중심으로 발전했으나 그는 재즈의 볼모지 서부 출신이었고, 주류와 동떨어진 백인입니다. 심지어 1966년은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였습니다. 재즈가 점차 마이너화되는 상황에서 재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겠지요.


자유와 평화, 기존 체제의 저항을 노래했던 Rock'n roll 의 시작, 비틀스


재즈는 굉장히 즉흥적인 음악입니다. 몸 속에 악보와 리듬이 저절로 흐르고 있다는(농구도 흐르는 것 같은데) 흑인들의 타고난 리듬감과 감성, 그리고 차별 받으며 느끼는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정서가 재즈에는 흐르고 있는데 듣도보도 못한 얼굴 반반한 백인이 재즈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주변의 시선이 냉랭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죠.


심지어 흑인 특유의 진한 감성이 묻어나는 소울풀한 걸쭉한 목소리와는 달리 쳇베이커는 백인의 앳된 목소리가 재즈의 정서와 맞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히든싱어>를 보면 가수 뺨치게 노래를 잘 하는 일반인도 많고,


<복면가왕>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감동을 주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히든싱어>의 모창 가수들이 뜨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좋은 자신의 곡이 없기도 하지만,


『 정교함을 잃은 대신 개성과 깊이가 생겼어. 』


예술에는 자신만의 작품과 개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찰리 채플린이 찰리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에 나가서 3등을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그는 치아를 모두 잃어 정교한 연주는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피나는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해냈습니다. (그를 똑같이 따라하려면 이를 몽땅 뽑아야 하나.)


이렇게 원조 가수가 탈락하기도 한다.

에단호크는 쳇 베이커를 연기하기 위해 무려 1년이나 트럼펫과 노래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트럼펫은 별도 녹음했지만 노래는 그의 목소리입니다. 뭔가 느슨하면서도 낭만적이고, 울적하지만 정돈된, 평생 편견과 싸우며 고통받고 약과 여자로 퇴폐적이었던 그의 음악과 삶을 절절한 눈빛과 작은 동작에도 혼을 실어 잘 연기했습니다.



          

예술가들은 쾌락에 탐닉하기 쉽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술이라는 것이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업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쾌락 뿐 아니라 예민한 음악적 감각을 위해서도 약을 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렇게 달달한 그림은 그의 삶과 어울리지 않아.

쳇 베이커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많은 작가적 상상력에 의한 각색과 연출이 들어갔습니다. 음악 영화이지만 영화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사랑입니다. 사랑이야 워낙 많은 영화에서 다루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이긴 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의 음악적 재기와 성취와 별개로 사랑을 들여다보세요. 영화 마지막 사랑이라는 감정의 공허함, 먹먹함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 영화가 좋았다면 같은 해에 개봉한 마일스 데이비스를 그린 영화 <마일스>도 한 번 감상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 천사의 혀로 노래를 불러도 사랑이 없다면 그건 그저 시끄러운 심벌즈 소리에 지나지 않아. 』


그가 선택한 것은 음악일까요? 아니면 사랑일까요?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 혹은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될 영화 <본 투 비 블루>입니다.  


<끝>


<본 투 비 블루> - 재즈를 위해, 아니 사랑을 위해 태어나다 written by 최종병기, ⓒ 최종병기

병맛나는 삼류 쌈마이 글, 자유롭게 퍼가셔도 좋지만 출처는 표기해주시기 바랍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은하철도의 꿈>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