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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댁 May 11. 2019

너 이제 내게 와주는 거니?

진통의 시작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참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신랑과 둘이서 살기엔 작지 않은 집이지만 아가가 태어나선 비좁을 수 있겠다 싶어서 2년의 전세 계약 기간을 마저 다 채우기도 전에 이사를 가자는 신랑의 결심에 나는 그저 따르기로 했다. 아가가 태어나버리면 2년의 계약기간을 채우고도 왠지 집을 옮기기가 더 힘들어질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신랑의 자체적인 발언에 따른 것이었다.



“만약 아기 낳고 지금 사는 집이 빠져서 이사를 하게 되면, 넌 아가 데리고 잠시 친정에 가 있어. 내가 포장이사를 부르든 어쩌든 해서 혼자 이사 해 놓고 다시 부르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나니 양가 집안의 어른들께서는 다양한 걱정거리들을 쏟아놓으셨지만 곧 단호해 보이는 신랑의 모습과 곧 태어날 아가의 짐으로 비좁아질 지금의 집의 평수로 인해 곧 ‘집이 나가기만 한다면야’라는 의견 쪽으로 마음을 바꾸셨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30년 된 지금의 아파트 옆에 신축처럼 세워진 7년 된 아파트의 새로운 매물을 신랑과 함께 둘러보았다. 아파트 단지가 워낙 크고 넓고 깔끔해서 아가를 키우기에도 손색이 없어 보이고 평수도 넓어서 아가 짐이 늘어나고 둘째가 생겨도 무리가 없을 것처럼 좋아 보이는 집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지금의 집을 입주 때부터 탐탁지 않아했던 신랑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는 집이었다.


단지 내에 실내 주차장이 넓어서 매번 주차 대란으로 골머리를 썩고 주차만 해 놓았다 하면 나무에서 떨어진 꽃들과 나뭇잎들로 매일매일 세차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지금의 오래된 아파트와는 그 어떤 요소를 놓고 비교해보더라도 우월한 점들이 많았다. 이런 집이라면 잠시 친정에 가서 아가를 돌보느라 신랑과 잠시 떨어져서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오늘!

당장이라도 계약을 할 것 같은 기세의 신혼부부팀과 혼자 살 집을 구한다며 남자 손님들이 부동산 팀들과 엮여서 세 팀이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보러 왔다.


평소에 살림을 화려하게 하고 살진 않아도 깔끔하게 정돈하고 사는 거엔 자신이 있던 우리는 언제든 누가 집을 보러 와도 예쁘네요, 깔끔하네요 라는 말은 들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우리 집을 둘러본 팀들은 전부 열이면 열



“최근에 보여주신 집들 중에 제일 맘에 들어요, 깔끔해요!”

“집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이 집이 너무 맘에 들어서 와이프 될 사람 허락을 바로 구하고 싶어서요”

“이 집 딱 좋네요”



이런 찬사의 말들을 쏟아 놓았고, 부동산에서는 이틀 내로 7월 중순쯤 집 빠지는 조건으로 꼭 계약을 하고 싶으니 다른 부동산에서 와도 잠시 보류해달라는 부탁을 반복해서 해 놓고 돌아갔다. 이 모든 말들은 오늘 하루 만에 들은 말들이었다.


샤워를 했다. 기분이 좋았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아가를 위해 운동도 할 겸 산책이 너무 하고 싶어 졌다. 아가를 지탱하느라 다리가 퉁퉁 부으면 걷다가 잠시 시원한 밀크티라도 한잔 하며 앉을 카페에서 읽고 싶은 책도 한 권 챙겨 나갈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아랫배와 회음부 쪽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아파서 도저히 아무 데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서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소파 위에 주저앉아 아랫배와 함께 갑자기 저리기 시작한 다리를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출근한 신랑에게 ‘나 아파’라고 통보해놓으니 이런저런 걱정의 답장들이 쏟아졌다.



“그러다 갑자기 나오는 거 아냐? 아프면 전화해”



그 말에 응응이라고 대답을 해 놓고 욕실로 당장 달려가 머리에 뿌리 염색을 하고 끝에 트리트먼트를 했다. 설거지를 부랴부랴 마치고 욕실 벽을 청소했다. 사실 만삭 때 염색하면 안 좋다지만 당장 병원에 입원하게 되거나 바로 조리원에 입소하게 되면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리가 볼품없는 상태에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를 스트레스받게 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진통이 와도 다들 병원 가기 전에 급하게 샤워도 하고 냉장고 청소도 하고 병원으로 달려간다고 하니 나도 출산 후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간이 닥친 것 같은 지금에서야 몰아서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청소도 짐도 다 싸놓고 퉁퉁 부어서 주물러도 안 물러지는 종아리를 마사지기에 넣고 머리 염색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아팠던 거랑은 정말 차원이 다르긴 다르구나. 선생님한테 백번도 더 물었던 진진통과 가진통의 차이점을 오늘에서야 겪어보니 알겠다. 정말 선생님 말씀이 백번 옳았어.




“진진통과 가진통의 차이는요, 본인이 겪어보면 바로 1초 만에 알아챌 수 있어요. 가진통은 아프다가 말 수도 있는데 진진통은 엄청나게 딱딱히 뭉치다가 풀리다가 그게 반복이 규칙적으로 되다가 다리까지 저려져요”



네 선생님, 저 이제 그 말 뜻 알았어요. 방금 저 그 진진통 느낌 겪었어요. 염색 시간을 못 채우고 머리 감고 샤워하고 가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이렇게 아프면 당장 병원으로 전화하면서 달려갈게요. 마음의 각오에 각오를 다짐하며 시계를 올려다본다. 내진 이후 피 냄새가 생리할 때처럼 계속되었다. 그리고 곧 염색 방치 시간도 끝났다.


이제 샤워를 하고 나와서 당분간 못 깎을지도 모를 손톱을 손질하고 간단한 외출 가방 후다닥 챙겨놓은 뒤 다시 참아 온 진진통을 기다렸다가 산모 수첩 챙겨서 병원으로 달려가야겠다.



심장이 뛴다.

10개월 동안 품어온 너,

배가 아파도 참고 밤새 짐볼에서 뛰면서도 참고

입덧의 괴로움과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커져있던 우울감들도 참고

기존에 입었던 안 맞는 옷들을 보며 울적해도 참았던


그저 너 하나만을 기다려왔던

길고 길었던, 내겐 너무 지루하고 괴롭던 나날들




아가, 너 이제 정말 내게 와주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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