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심한 엄마인걸까?
출산을 두 달 반 앞두고 한 달 전 즈음에 신랑과 함께 예약했던 산후조리원에서 산전 테라피를 받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2주 이상 산후조리를 받는 산모에 한해서 산전, 산후 두 번 서비스로 제공하는 테라피이니 일정을 놓치면 연장은 안 된다는 무시무시한 엄포와 함께.
모든 산모들이 전부 이런 마음일까? 아니면 나만 무심한 걸까? 나는 ‘산전 테라피’라는게 뭔지도 몰랐고 그 예약을 잡을 때엔 1년마다 돌아오는 자동차 보험 갱신에다가 신혼집을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하루하루 일상에 적응하는데 온 시간을 쏟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테라피 받으러 가기 하루 전쯤에 검색해보면 나오겠지, 일단 서비스라고 하니 일정부터 잡고 보자 라는 심정으로 덜컥 예약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일정을 잡아놓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1차 산전 테라피 하루 전, 나는 요즘 한창 꽂혀버린 유화 채색 컬러링에 푹 빠져 새벽 3시까지 꼴딱 새어가며 채색을 마쳤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간단히 거실 정리를 한 뒤에 잠자리에 누워 아이폰을 바라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3시 40분. 아, 피곤해 아침에 일찍 알람 맞춰두고 일어나서 블로그나 좀 검색해 보고 출발하지 뭐!라는 생각에 알람을 네다섯 개정도 든든히 맞춰두고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AM 9:00, 요란한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이 번쩍 떠졌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고 알람 끄기를 누른다. 잠깐 다시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1분 후, 그리고 또 1분 후에 촘촘하게 맞춰 둔 알람 소리가 다시 고막을 따갑게 울린다. 네가 이래도 안 일어나? 싶게 알람을 1분 간격으로 3~4번 맞춰둬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는 못 된 습성이 있는 탓이다. 하, 일어나야지 그래 서비스라서 연장 안 된다고 했지.. 일어나자 일어나서 씻고 가볍게 미숫가루라도 타 먹고 조리원으로 출발해야지. 아직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어 있는 신랑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침대를 기듯이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이 부은 내 눈꺼풀을 적시고 향긋한 비누 향기로 밤새 피로에 절어있던 얼굴을 씻어주었다. 화장실 거울에 부은 얼굴을 비춰보며 가볍게 아침 세안 마사지를 하고 수분이 날아갈 새 없이 에센스를 촉촉하게 발라준다. 이게 피부과는 다니지 않지만 꾸준히 피부를 위해 내가 해주는 최소한의 습관 중 하나다. 피부가 너무 건조해지지 않도록 세안 후 즉각적인 수분 공급해주기. 두 볼과 목까지 촉촉해짐을 느끼고 손등에 남은 수분을 두들겨 준 후 나와서 화장대 앞에 앉았다. 남은 기초화장과 선크림까지 바른 후에 부엌으로 가 셰이커를 꺼내 미숫가루를 탔다. 요즘 위가 만성으로 고장 나있다시피 한 신랑과 나의 아침을 부담 없이 포만감 있게 채워주는 나름의 한 끼 식사 대용이다. 신랑 몫의 컵에는 거의 흘러넘치기 직전까지 제조한 미숫가루를 따르고, 나의 몫의 컵에는 남은 만큼의 미숫가루를 마저 따른다. 신랑의 컵에 가득 따르고 나면 내 몫의 컵에는 7~8할 정도는 따라지는 것 같은 양이다. 이 정도가 서로 딱 적당한 양이다.
“미숫가루 마셔요”
곧 방에서 응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먼저 컵에 입술을 대고 고소한 미숫가루를 꿀꺽꿀꺽 삼킨다. 금방 배가 포만감으로 가득해진다. 만일 후에 위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밥을 해 먹는다 해도 먹기 직전에 미숫가루부터 한 컵 마시고 먹으면 왠지 체중 관리에도 도움이 크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잠에서 깨어 침실을 나온 신랑이 화장실을 한번 갔다가 부엌으로 다가와서 내 입술에 먼저 뽀뽀를 한번 해주고 미숫가루를 단번에 들이켠다. 빈 컵을 먼저 개수대에 올려놓고 “잘 먹었다!”를 외치며 다시 화장실로 가 민첩하게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신랑의 샤워기 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그제야 남은 미숫가루를 마저 입에 털어 넣고 컵 두 개를 설거지 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 신혼집으로 처음 이사를 와서 두 달 동안은 꼬박꼬박 아침을 해 먹었다. 속이 안 좋은 날은 누룽지라도 끓여서 반찬과 함께 상을 차렸고 그 외에 날엔 신랑 최애 식단 볶음밥 혹은 따뜻한 수프와 오븐에 구운 베이글 등을 곁들인 가벼운 양식 식단까지. 그런데 결혼 초기부터 신랑의 잦은 회식과 친구 모임들로 인해 술 모임이 잦아지자 점점 위가 망가지기 시작했는지 기름진 안주들과 과한 음주로 점점 일반적인 아침 식사와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나는 밥을 두 공기 푸는 대신 한공기만 퍼서 죽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참치 죽, 또 어느 날은 모 샤브샤브 집에서 식후에 나오는 계란죽, 또 어느 날은 신랑이 좋아하는 버섯을 세 종류를 넣은 버섯 죽 등등. 그러나 그것마저도 점점 늘어나는 야근과 돌발 일정 등으로 점점 미니멀리즘 해지기 시작하더니, 곧 블루베리 햄프 시드 주스 혹은 미숫가루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애기가 있는 몸에 아침을 좀 부실하게 먹는 것 같아 걱정되었지만 초기에 워낙 영양가 있게 잘 먹어둔 덕분에 내 몸은 임신 전보다 10kg가 늘었고,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가가 놀 수 있는 양수의 양도 넉넉하며 또한 정상인 신체에 무척 건강한 상태라는 말까지 듣고 왔다. 더불어 내 몸이 워낙 마른 체질이어서 더 찌면 골격이 아가 집을 견디지 못해 점점 더 쳐지면서 조산이 될 수 있으니 이제부터 출산 때까지 더 체중 찌우지 말고 관리하라는 말씀도 더불어서 듣고. 그래서 신랑의 밤새 달려 피로한 위를 위함과 더불어 나의 체중 조절을 위해 우리의 아침은 점점 미니멀리즘 한 드링크 모닝으로.
나보다 늦게 일어나 늦게 준비를 시작했던 신랑은 이미 빛의 속도로 샤워에 머리 감고 드라이까지 한 후 나와서 신속하게 정장을 갖춰 입고 있다. 신랑이 준비 속도가 빠르니 나는 신랑의 외출 후에 그가 씻고 난 흔적까지 전부 정리하며 씻고 준비하면 집을 나설 땐 정리가 전부 깔끔히 마쳐진 상태에서 맘 편히 일정을 떠날 수 있어서 좋다. 먼저 외출하는 신랑을 신발장에서의 가벼운 뽀뽀와 포옹을 마친 후에 손 흔들어 보내주고 나는 다시 욕실로 돌아와 가볍게 씻으며 거울의 물때 등을 가볍게 제거한다. 젖은 수건을 세탁기에 가져다 넣어놓고 방으로 돌아와 가벼운 화장을 마저 마치고 외출복을 갖춰 입은 후 파우치에 쿠션 파운데이션과 가벼운 립밤, 립스틱 하나 정도를 챙긴다. 아 그리고 산전 테라피가 대체 뭔지 미리 검색해보고 출발하기로 했지? 시계를
보니 출발해야 하는 시간보다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기에 다시 침대에 털썩 앉아 아이폰을 열었다. 익숙한 초록창에 나의 조리원 이름과 산전테라피 라는 단어를 쳐서 검색해본다. 역시나 블로그에 체험하고 온 산모의 후기가 올라와있었다. 음, 1년 전 글이긴 하지만 나름 사진도 있고 광고가 아닌 직접 적은듯한 왠지 조금은 서툴러 보이는 글솜씨도 왠지 더 신뢰가 가. 나는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올려가며 눈동자를 굴렸다. 음, 그야말로 그냥 마사지받듯이 받는 건가보다. 나는 그렇게 자체 결론을 내린 후에 핸드폰을 닫고 집을 나서기 위해 겉옷을 걸치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마사지받고 나서 또 너무 걸으면 바로 배가 뭉칠 거 같은 컨디션이니까 오늘은 차 타고 가야겠다. 손을 뻗어 집은 차키가 손가락 끝에서 짤랑짤랑거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거실과 방의 정돈 상태를 눈으로 빠르게 훑은 뒤에 현관문을 열고 조리원을 향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