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집에는 창문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일층이었는데, 내 방 창문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위치해
누가 들여다볼까 커튼을 칠 수도 없어 정말이지 암흑 속에서 대부분의 날을 보냈다.
심지어 부엌과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창문의 존재에 대해 난생처음 감사와 갈망을 느끼게 되었던 나는,
이사를 가게 된다면 꼭 창문이 많은 집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지난여름, 사방이 창문인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덕분에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워지긴 했다만)
심지어 4층 (한국식 5층)에 위치하고 있어,
창 밖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었고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의 자태가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창 밖을 수놓는
정말이지 멋진 방을 갖게 되었다.
내 침실에는 큰 침대와 TV 뿐인데,
퇴근 후나 주말 아침에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바라보는 게 또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건물 하나 없는, 오로지 나무와 하늘만 가득한 창 밖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큰 평안을 선사하는지 모른다.
원래도 멍 때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취미로 인해 멍 때리기 레벨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달까...
고층 건물 없는 독일이 새삼 감사한 순간.
그러다 한국 집에서의 창 밖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13층으로 지금보다 고층이었지만 창 밖 풍경은 온통 아파트 - 정확히 말하자면 건너편 동 - 들과 그 안의 사람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아파트 단지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조금은 숨이 막히고 답답했던 기억.
독일에 살다 보면, '너무 휑하다', '너무 썰렁하다'라는 류의 느낌을 자주 갖게 되곤 하는데
그 휑함이 주는 여유로움으로 시선을 돌리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독일인들의 특성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편안해야 하는 공간인 집,
그리고 내 방.
그곳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이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닫는 요즘
자꾸 생각한다.
창문은 그저 창문이 아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