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는 도덕이 아니라 약속이다. 예의는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므로 보편적 도덕 보다 그 사회의 약속에 가깝다. 조금 더 추상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형식적인 약속이다. 식사 시간 때 막내가 윗사람의 수저를 세팅하는 것은 암묵적 약속이다. 부모님이 오고 나갈 때 인사를 하는 것도 일종의 약속이다. 어른이 먼저 수저 들기 전에는 아랫 사람이 수저를 들지 않는 것도 약속이다.
예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예의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그 실상을 파고들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 사람은 이 사회에 통용되는 많은 약속을 숙지할 만큼 영민하고 둘째는 그 약속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능과 행동력을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예의를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곧 약속을 지키는 일이며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감을 무의식적으로 준다. 그래서 예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씩 그런 허례의식 같은 예의가 비효율적이라서 탈피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예의를 보여라.'라는 것이다. 그건 상대방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지능과 행동력에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척도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