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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쓰민 May 06. 2024

대체로 공휴일엔 망가지기 쉽습니다만

난 괜찮습니다.

이젠 더 이상 어린이라 부를 수 있는 가족이 없지만 어린이날 대체휴일을 맞아 월요일까지 연휴가 되었다. 직장인들이 보면 눈으로 욕할 소리지만 난 연휴가 마냥 즐겁지 않은데 이유는 루틴유지에 적지 않은 방해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비단 내가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신랑이 집에 있으면 공간을 공유하며 신경 써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처럼 어버이날을 맞아 시댁이라도 가게 되면 공간뿐 아니라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만의 루틴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그럴 땐 양을 잘게 쪼개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서 습관을 이어가기도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완전한 몫을 해내야 한 것 같은 개운한 마음이 들어 이건 한 것도 아니요 안 한 것도 아니요. 그런 찜찜함이 마음을 부추겨 결국엔 그럴 바엔 오늘은 접자! 내일부터 제대로 하자는 결심을 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결심은 어찌나 빠르게 결단하는가!


 금요일밤에 출발해 주말을 대전에서 보냈다. 물론 함께한 시간 의미 있고 꽤 즐겁기도 했지만 그 시간에 충실하자는 그럴싸한 이유를 내밀며 주일엔 결국 내 루틴을 모두 접었다. 다이어리까지 전부 멈춘 것은 1월 1일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루틴을 정열해 시작하며 그것을 지속하려 애쓴 시간과 노력에 비할 것 없이 멈추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 마음먹으면 다음엔 어떤 행동도 따르지 않는다. 에너지를 쓰지 않기에는 내 머리와 몸이 어찌나 재빠른 합치를 이루는지 그 속도가 정말 놀랍다. 기가 막힐 만큼.

 그래도 나름 습관챌린지 경험자로 짬이 생겼는지 예전처럼 내가 그러면 그렇지라며 자책하며 아예 판을 엎는 일은 하지 않는다. 스멀스멀 내 자리로 가 책을 펼치고 강의를 듣고 할 것들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장벽이 높은 운동과 글쓰기만 남겨두고 옷을 챙겨 입는다. 내리던 비도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격려하는구나. 응원에 힘입어 나가자 싶었다. 오늘은 다 이루었다고 나에게 뿌듯함을 선물해 주자. 

 1층만 찍고 오자는 마음으로 나선 발길은 어느새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돌면 조금 짧게 왼쪽으로 돌면 조금 길게 걷는 코스다. 몸이 왼쪽을 향했다.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땐 1쪽만 읽자 마음먹고 펼친 책에 한쪽만 읽은 경험은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글쓰기도 같다. 오늘은 걷기로 결심하고 나선 길에 절반을 못 가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렸으면 나갈 마음마저 접었을 텐데 비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달릴 수 있었다.라고 쓰자. 그것만 쓰자는 마음으로 빈 파일을 열어 이렇게 주절거리는 것을 보면 나에겐 1층만! 한쪽만! 한 줄만!이라는 작은 목표를 품는 것이 실행하는 힘을 만들어주는 효과만점 치트키인듯싶다. 


 5월을 시작하며 작심하지 않아도 찾아온 삼일을 이야기할 때만 해도 술술 풀릴 것 같은 마음들이 며칠새 호로록 먹힌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은 깃털에 비할쏘냐! 날씨는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인가! 의지는 필요에 반비례한다. 의지가 필요한 순간 의지는 바닥에 가깝지만 또 사람이 얼마나 영리한가! 반복된 학습으로 여러 번 바닥을 친 덕분에 올라오는 방법 하나쯤 갖게 되었으니 오늘도 그 방법 덕분에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이름은 대체로 공휴일엔 망가지기 쉽습니다만 난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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