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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

나의 글을 세상에 알려라.

by 오필

3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잊혀졌던 나의 글에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보자 문득 내가 쓴 나의 글이 궁금해서 다시 뜨문뜨문 읽었다.

나의 글에 대한 나의 평가는 잘 썼네, 못썼네가 아닌 '미친놈이네'였다.

뜨문뜨문 읽은 것도 한 번에 다 읽기에는 쉬운 글이 아닌 챕터에 댓글이 달려서 그렇다.

나 또한 다시 읽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고, 수많은 퇴고를 거쳐 탄생했기에 글을 다 쓰고 나서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 간략하게 읽은 나의 글에 대한, 나의 소감은 스스로에게 다른 방향성을 던져주었다.

나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 노력하라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고.

내가 다짐을 하게 된 글은 브런치에 기재된 '개똥철학 중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챕터이다.


뜨문뜨문 읽었음에도 느껴진다. 얼마나 고뇌하고 논리를 찾고, 자문자답의 수많은 추론과 반론과 논쟁을 통해 완성된 글인지 말이다. 평소 가지고 있던 나의 생각을 논리로 정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고 쉽게 풀어내기 위한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글이 완성되고 브런치 공모전에만 응모한 후 퇴고도 하지 않고 번아웃이 왔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하루 종일 글을 쓰기 위해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뇌는 항상 '개똥철학'으로 가득했으며 끝맺음을 하자 뇌의 90%를 차지하던 게 사라진 것이다. 마치 하루 종일 붙어서 지내던 사람과의 이별을 한 느낌이랄까? 공허함의 깊이가 굉장히 컸었다. 그 후 모든 것이 멈춘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글은 언제나, 나에게 별 이득이 되지 못한다. 내가 고뇌한 나의 지식은 언제나, 내가 아닌 나의 지식을 인용한 사람들의 이득만을 돕는다. 직접적으로 나의 글을 읽진 않더라도 읽은 누군가로 인해 나비효과가 되고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워준다. 이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가난한, 생계가 힘들어지고 있는 나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저 나의 글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복을 걷어찼다고 생각하며 위로했고 멈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글을 뜨문뜨문 읽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한 '미친놈의 글'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말이다. '개똥철학'은 인문학이며, 다음 챕터는 나의 생계가 보존되지 않으면 기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써놓은 글만으로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 내가 글을 쓴 주된 목적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죽기 전에 쓰고 싶은 글이라서 기획했었다. 돈이 되지 않기에 그냥 흘려보내려 했었으나 AI가 가속화되는 만큼 인문학을 소재로 한 나의 글은 세상의 사람에게 꼭 필요한 글이다. 내가 공부를 하며 찾은 자료 어디에서도 도달하지 못한 본질에 가장 근접한 글이다. 그렇기에 나비효과가 되어 누군가의 주머니를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고통이 되어 멈추려 했으나 이는 사람에게 너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글을 세상에 알리려는 시도만으로도 세상에 많은 공헌을 하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출판이 되지 않더라도. 나에게 이득을 주지 않더라도. 인문학적 글을 써야 함도 깨달았다. 이미 나비효과가 되어 퍼지고 있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공헌이 된다는 것은 반대로 하지 않는 행위만으로 못할 짓이다.

아마 이 다짐은 가난에 매몰되어 언제 다시 바뀔지 모를 일이지만 오늘의 이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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