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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Mar 28. 2023

도덕과 평범의 이면

헤르만 헤세 『데미안』 독후감

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독일 문학 시즌 2,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줄거리]

사람들은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를 오가며 산다. 어릴 적 따뜻한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빛의 세계에 속했던 싱클레어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상급생 크로머의 괴롭힘으로 인해 처음으로 어둠의 세계를 접한다. 어둠의 세계는 싱클레어를 괴롭히지만, 역설적으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괴로워하는 싱클레어를 도와준 상급생 데미안의 인도에 따라, 싱클레어는 어둠의 세계 역시 자신의 내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두 세계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기 시작한다. 그 여정 속에서 잠시 방황도 하지만, 앞선 인도자들의 도움으로 결국 싱클레어는 데미안 없이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길을 찾는다.






"다만 좋은 뜻을 가진 착상들을 몰아내고 그걸 이리저리 도덕화해서 해롭게 만들지 말라는 걸세." (민음사 판본 p.149, 8번째 줄)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었다. 도덕이 해로울 수 있다니. 도덕이라는 단어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되는 불가침 영역 같은 느낌이 있다. 도덕을 비판하면 굉장히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책은 안정적이지만 고요한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존재와 기질을 인정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을 풀어냈다. 『데미안』이 출간된 1919년이라는 시기를 생각해보았을 때, 책은 사람들이 신분제 사회를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 범인류적인 고민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직업의 선택이라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의 운명대로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아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00년 전의 싱클레어나 지금의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사회에서 태어났다. 자유가 주어졌지만 진정으로 자유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정해진 운명을 살았던 시절이 편해 보이기도 한다. 흔히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행복한 거야."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이라는 말 역시 사회가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규범대로 사는 것일 테다.


도덕과 평범. 모두 안온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고 지키고 싶은 단어들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 사회적으로 '도덕'과 '평범'이 의미하는 바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도덕'과 '평범'에 맞추어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살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빛의 세계에 속해 있다가 반대 세계의 존재를 깨닫고 공존하려는 시도가 무척 힘들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빛의 세계에 완벽하게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교 1학년 역사 교양 수업 때 어둠의 세계에 눈을 떴다.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생 때까지 배웠던 역사 교과서의 내용이 사실은 특정 역사가의 견해일 뿐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교과서"라는 하나의 정답을 믿었는데 사실은 정답이라는 게 있는 건지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외우고 공부했던 노력에 배신당한 것 같았다. 내가 이 순간을 어둠의 세계에 눈 뜬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대학 시절 내 생활 태도가 고등학생 때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모범적인 학생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했다면, 대학 때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았다. 문제는 내 행동은 변했는데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했었고, 그래서 요즘 그동안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했던 지점을 찾으면서 그것을 일치하도록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몇 달 전 보았던 독일 교육 관련 영상에서, 독일에서는 선생님이 자신의 말이 100% 정답이 아니니 항상 의문을 갖는 태도를 취하라고 학생에게 말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빛과 어둠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진로 고민이 많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보니, 내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게 아쉬웠고 청소년 필독서인 『데미안』을 청소년 시기에 읽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더 빨리 접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같은 고민을 먼저 한 훌륭한 어른의 생각을 읽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1년의 시작인 새해에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은 싱클레어를 보면서, 올해는 방향키를 다시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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