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독후감
트레바리 '블랙스완의 탄생' 북클럽, 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줄거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미는 발현될 수 없다는 주장을 담은 책. 근대 이전까지의 예술은 내면을 고양시키는 긍정성과 타자의 존재를 품는 부정성이 공존했는데, 후기 근대 사회의 예술은 부정성이 사라지고 긍정성만 남아 예술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매끄럽고 부드러워졌다.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와 결합해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예술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부정성을 되찾아야 한다.
아름다움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병철은 이 책뿐만 아니라 더 이전에 출간한 『투명사회』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디지털 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이 투명해져 개인과 개인 간의 거리가 사라졌고, 이 거리의 부재가 개인의 고유성을 상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거리'는 곧 시간을 의미한다. 『타자의 추방』이나 『시간의 향기』와 같은 작가의 다른 저작에서도, 제목에서부터 모두 일관된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구원』은 시간에 대한 한병철의 생각을 미의 측면에서 서술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현대 사회는 매끄러움, 투명, 디지털, 긍정의 사회다. 한병철은 부정성과 대비되는 긍정성의 사회 현상들을 포착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기만족의 예술가 제프 쿤스, 순간의 만족감을 주는 촉각과 미각의 감각, 데이터의 합산인 정보, 디지털 기계로 수치화되는 몸까지 우리의 일상은 '지금 여기 나'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제프 쿤스의 작품은 보는 순간 즐거우면 그만이고, 촉각과 미각은 그것에 닿는 만족으로 끝이 난다. 정보는 데이터가 모여 있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신체의 변화는 데이터로 변환되어 정보로 존재하게 된다.
근대 이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다. 미는 숭고와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 철학에서 부정성의 숭고로부터 긍정성의 미가 떨어져 나왔다. 하나였던 두 개념이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으로 나뉜 것이다. 한병철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상태를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은폐, 상처, 재앙의 부정성이 가진 미학에 관해 이야기한다.
은폐, 상처, 재앙 속의 미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베일 속에 은폐된 아름다움, 은유 속에 은폐된 텍스트의 진짜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는 무언가를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발생하며, 재앙 역시 내면의 상처를 경험하는 시간 속에서 발생한다. 이들은 순간이 아닌 지속이다.
한편, 현대 사회는 진정한 미가 아닌 '정상'이라는 잣대로 미를 평가한다. 이에 따라 시간성을 가진 아름다움인 개성과 견고함은 점점 약해지고, 즉각적이고 순간적인 소비의 산물들이 미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의 디지털 복제와 공유 경제는 개별 존재의 개성을 깎는 대표적인 소비의 칼날이다. 이 '정상'의 잣대는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자유'를 막고,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움의 발현을 막는다.
이후 한병철은 아름다움과 소비가 가진 시간성의 특징을 비교하며 시간이 사라진 소비 사회에서 미는 발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고양되어 머물러 있는, 소비되지 않는 시간이다. 반면 현대의 미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아래 소비되는 순간의 시간이다.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시간이 쌓이고 연결된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이 쌓일 틈 없이 휘발된다. 결국 자본주의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발현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