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클루게 외 16인 『어느 사랑의 실험』 독후감
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알렉산더 클루게 외 16인 『어느 사랑의 실험』
나름 독일 문학 모임을 2년 반째 하고 있지만, 17인의 독일 작가 단편집을 읽으면서 새로운 작가들을 우르르 만나며 그동안 내가 접한 독일 문학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오랜만에 읽어 반가운 헤세, 카프카, 토마스 만도 있었지만 대부분 처음 만나는 작가들이었다. 모임 진행을 위해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3편을 고르는 과정에서 내가 왜 문학을 읽는지, 나를 계속 읽도록 만드는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와 내가 속한 환경을 거리를 둔 채 볼 수 있게 한다.
-일상 언어와 다른 문장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사실 책을 읽은 직후 떠올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은 하인리히 뵐의 「광고물 폐기자」였고 나머지 두 편은 고르기가 쉽지 않아서, 고르지 않은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언급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서 좋은 문학의 기준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지크프리트 렌츠의 「발라톤 호수의 물결」을 골랐다. 아래는 각 단편에 대한 감상이다.
「정직한 법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선동자들이 넘치는 이 시대에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할까.
「기발한 페르머」 요한 루트비히 티크
내가 마주하지 않으면 세상이 본다.
「주워온 자식」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체제의 아이러니
「뜻밖의 재회」 요한 페터 헤벨
독일 문학에서 처음 보는 예쁘고 따뜻한 이야기
「672일째 밤의 동화」 후고 폰 호프만스탈
현실을 외면한 상상은 비극을 가져올 뿐
「루이스헨」 토마스 만
'인간'이 되기 참 쉽지 않다.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 아르투어 슈니츨러
오해도 사랑도, 모두 사람의 마음
「짝짓기」 헤르만 헤세
오랜만에 만난 헤세의 사랑스러운 문장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프란츠 카프카
인간은 자유를 쫓다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는 출구로 나와 인간이 된다. 자유는 멀리 떨어져 있고, 출구는 발 디딘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생각이 아닌 행동이다.
「바르바라」 헤르만 브로흐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연인. 그리고 두사람 모두에게서 극복되지 못한 여성성.
「달나라 이야기」 일제 아이힝어
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에 순종하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했다.
*「광고물 폐기자」 하인리히 뵐
1957년 고속 성장 시기의 광고물 폐기자가 있다면, 2025년 성장 둔화 시기의 자택 경비원(Home Protector)이 있다.
「어느 사랑의 실험」 알렉산더 클루게
가해자에게는 꽤나 낭만적이었던 것 같은 이름의 실험
「제니퍼의 꿈」 마리 루이제 카슈니츠
집Heim이라도 편안하지 않을unheim 수 있다.
「개 짖는 소리」 잉에보르크 바흐만
존재하지 않은 존재들에 대한 기록
*「발라톤 호수의 물결」 지크프리트 렌츠
사회적 이념은 가족을 절대적인 울타리로 만들어 놓고, 그 울타리를 너무도 쉽게 부순다.
「인도로 가는 항로는 없었다」 크리스토프 하인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각 단편은 중세의 가치관이 무너져가며 혼란했던 사람들의 모습, 자본의 힘이 점점 우세하며 생긴 부작용, 그리고 나치, 성별 대립, 분단까지 18세기 후반부터 19, 20세기 순으로 독일 사회가 겪었던 사회적 상황들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읽는 동안 지루했던 단편도, 짧아서 아쉬웠던 단편도 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만 보려고 문학을 읽는 것은 아니므로, 또 재미있는 단편들이 섞여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지루했던 단편들도 참고 읽을 수 있었다. 작품의 시대적 의미와 난이도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문학을 통해 근현대 독일 사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