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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Dec 19. 2020

Bistro fada

현재의 나

 예술가와 도덕성.

이 문제는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게 했던 것이었다. 예술성이 높은 작품이 있는데, 만일 그 예술가의 도덕성이 의심된다면 나는 그 작품을 기꺼이 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생각 말이다. 사실 아직도 결론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은 일단 그 논란을 머리 한편에 밀어 넣고, 작품만을 본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Bistro fada는 Midnight in Paris(2011)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OST 중 한 곡이다. 우디 앨런 감독은 소아 성애자, 양딸과 결혼한 양아버지 등으로도 악명이 높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 OST나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보고 말았다.


 내 원래 전공은 영문학이다. 원래 전공이라 함은, 지금 일하고 있는 직업이 다른 전공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전공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금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 작가의 일생 등을 알고 나서 글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작품을 감상하고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참 재미있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영문학 수업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Lost Generation에 대한 수업이다. 상실의 세대, 길 잃은 세대.

 그리고 그중에는 유명한 작가들; 헤밍웨이, 스캇 피츠제럴드, 커밍스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시기 1920년대는 유명 화가들(피카소, 마티스 등), 예술인들, 재즈, 문인들(거트루드 스타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들과 예술의 시대였다. 내가 그 전부를 알지는 못해도 그 시대에 대한 괜한 낭만적인 기분이 들기는 한다.

 

그래서 Midnight in Paris를 봤을 때, 남자 주인공이 1920년대의 예술가를 만나 놀랄 때마다, 왠지 아는 사람 만난 것 마냥 반갑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길은 영화 속에서 작가이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설레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시대 사람인 아드리아나는 그 전 시대인 벨 에포크를 선망한다. 그래서 길은 그녀가 선망하는 벨 에포크 시대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만난 고갱에게 아드리아나가 ‘이렇게 아름다운  시대에 살아서 부럽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자 그가 이야기한다. 정말 멋진 시대는 르네상스라고.

 그녀는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해온 벨 에포크에 그대로 머무르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에게 길은, 그녀가 살고 있는 1920년대가 좋은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그 말을 들은 아드리아나가 이야기한다.


“설마 1920년대를 황금시대로 여기긴 않겠죠? 난 1920년대에 살지만 황금시대는 벨 에포크예요.”


이 말을 들은 길은 뭔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나 또한 생각했다. 우리가 지난 과거의 어느 즈음을 좋은 시대였다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많은 시간이었든지, 내가 살아온 그 중간의 어느 시간이었던지가 좋은 때였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지금 현재가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고 보면 현재라는 말은 영어로 present이고, 선물이라는 말도 present이지 않은가. 현재가 바로 나에게 주어진 선물인 것이다. 물론 현재가 아름답고 모든 것이 다 재미있는 그런 때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고, 뭔가를 바꿀 수 있도록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오늘이다.


가끔 생각한다. 오늘이 얼마나 마법과 같은 날인지 말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제일 현명하고 경험이 많은 내가 살고 있는 것도 오늘이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입해 오늘을 생각해보면 제일 어리고 생동감 넘치며 뭔가를 시작하기엔 오늘 같은 날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하다가 실수하면, 이 생각을 떠올리며 나를 위로한다.


‘괜찮아. 아직 살아갈 날 중에 오늘이 제일 어린데 뭐. 나도 실수할 수도 있지...’


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망설여지면 또 반대방향으로 생각한다.

‘괜찮아..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날 중에 제일 현명하고 경험이 많잖아. 나를 믿자.. 괜찮아.’


라고 말이다.

그러면 묘하게 마음이 진정이 되고,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만나는 그 신비한 시점이 바로 오늘, 현재인 것이다. 지나가면 다시 오지는 않을.

그러니까 너무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리고 오늘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훗날에 돌아보면 오늘의 내가 좋았던 때라고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나의 벨 에포크가 언제일지는 다 살아봐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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