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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09. 2019

같이 노젓기

한샘 한부모 수필 공모전 입선



 “엄마! 나 저거 타고 싶어. 저쪽으로 가보자.”

주말을 맞이하여 아이가 요즘 관심을 보이는 우주와 관련된 체험장에 갔던 날이었다. 우주와 관련된, 또는 그냥 걸어 다니며 둘러보거나 아이만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장소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장소가 몇 군데 있었는데, 전망대가 그 첫 번째였다. 그 주변 경치를 구경할 수 있기도 하고 이 체험장에 들르지 않았던 곳이 있나 봐야겠다 싶은 마음으로 아이 뒤를 따라 올라갔다. 전망대에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변 경치를 둘러보는데, 저 멀리 고무보트 체험장이 보였다. 전망대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두고, 걸어 올라가겠다며 쌩쌩 날아가듯 걸어 올라가는 아이 뒤를 따라, 거의 기듯이 걸어 올라온 뒤라 나는 이미 지쳐버려 그곳까지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물에서 노 저을 생각에 신나서 얼른 타러 가자며 뛰어가며 앞장섰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착하니, 체험장에 먼저 와서 줄 서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우리 뒤로 바로 늘어나버린 줄 사이에서 계속 들떠서 얘기하는 아이와 달리, 나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줄 서서 움직이다 보니 안내문이 보였다. 그 안내문에 설명되어있던 항목 중에 아래의 내용이 쓰여있었다.


...어른 두 명 필요...


 ‘아... 그렇겠지.’ 걱정과 동시에 실망감이 들었다. 어른 두 명이 배 양쪽에서 노를 저어야 배가 한자리에서 빙빙 돌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떡하지.’ 나는 겁이 났다. ‘못 탄다고 막아서면 어떡하면 좋지? 아이랑 둘이 맨 앞까지 갔는데, 어른이 한 명이라 못 탄다고 하면 나는 너무 민망할 것 같고, 아이는 섭섭해할 것 같은데... 아이에게 상처주기 싫어... 나도 그렇고.’ 사방을 둘러보니 우리 가족 빼고는 모두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혹은 드물게 연인들로 이루어진 두 명의 구성원들이었다.  나는 지레 겁먹은 마음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있지, 우리는 두 명이라서 아저씨가 우리 보고, 혹시 못 탄다고 할 수 도 있어. 한쪽에서 노 저으면 배가 빙빙 돌고 앞으로 안 갈 수 있거든... 알겠지?”

 사실 이 말은 아이에게 보다도 나에게 해주는 설득이었던 것 같다. 아이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음에도 나는 두세 번 반복해서 일러주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나는 고무보트 담당 직원에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물어보았다. “저희 둘인데, 타도 되나요?” 그런데 내가 줄 서서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너무 시원한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것 봐, 탈 수 있지?” 그래서 나는 “그러네...”라고 답해주었다. 역시 걱정하는 것만큼은, 항상,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무보트 한쪽엔 내가, 다른 한쪽엔 아이가 앉아서 각자 노를 잡았다. 직원이 해주는 간단한 설명을 듣고 출발하기 직전, 나는 너무 두려웠다. 과연 이 배를 끌고 한 바퀴 돌아올 수 있는 건가? 앞 뒤 팀의 배에 치이거나 우리가 길을 막지는 않을까? 정말 어른은 나밖에 없는데 이 배가 앞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야? 일단 배에 올라 타, 아이와 나의 무게 차이 때문에 배가 기울까 봐 무서워서 한쪽 다리는 쭈그리듯 앉고 다른 쪽 다리는 아이 쪽으로 최대한 위치시켰다. 자세 잡자마자 허리에 무리가 약간 옮을 느꼈다. 하지만 균형을 잡으려면 그거 외에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뒤의 배가 가까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허둥지둥 노를 저었다. 역시 나와 아이의 힘 차이 덕에 배가 빙글 돌았다. 배 앞부분이 자꾸만 옆으로 돌았다. 나는 당황해서 아이에게 외쳤다.

 “자, 엄마 하는 거 봐봐, 노로 배의 앞쪽을 이렇게 찍어! 그리고 이렇게 뒤로 미는 거야!!! 알겠지?”


 처음에는 그 구호를 외침으로서 둘이 호흡을 서로 맞춰서 노를 저어볼 의도였는데,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말은 나를 위한, 내가 용기를 내고 힘을 내기 위한 소리가 되어갔다. 이 배에 있는 어른은 나 혼자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노를 잘 저어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과 막중한 책임감, 조바심 등의 여러 감정이 나를 휘감고 있었다.

 아이는 내가 그 말을 반복하자, 아이는 “엄마, 근데 왜 자꾸만 말해?”라고 하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하지만 사실 그 말은 나를 위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노를 젓다가 아이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눈도 팔지 않고 아이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듯 보였지만 노를 물을 가로막는, 가로로 놓고 젓는다기 보다, 물 방향인 세로 방향으로 세워서 노를 미니, 물을 미는 것이 아니고 노로 물결을 가르게 되어 그쪽 방향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렇게 배가 제자리에서 두세 바퀴 돌고 나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머리로 생각했던 건지, 몇 번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의 방향을 바로잡으려고 반사적으로 시도했던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저 필사적으로 나는 온몸의 감각을 집중해서 배를 앞쪽으로 나아가게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 방법이란 다음과 같다. 내가 힘차게 물에 노를 꽂아서 뒤로 민다. 그러면 배가 내 반대쪽으로 빙글 돌게 된다. 그 순간 노를 빼어서 약간 뒤쪽의 물에 내리꽂아 짧게 앞으로 밀어준다. 그렇게 하니 배가 앞으로 나가며 한쪽으로 빙글 돌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 우리 둘이 할 수 있네.‘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문득, 한부모 가정인 우리의 상황이 바로 이 고무보트 노 젓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다. 비록 내가 앞으로 뒤로 노를 젓느라 다른 엄마들이 한 번 저을 때 나는 두 번 저어야 하니 힘들고 지치지만, 약간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배는 탈없이 앞으로 잘 나갈 수 있는 거였다.

 나중에는 자신감이 정말 붙어서, 그냥 단순하게 둥글게 길 따라 돌아서 출구로 가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서 장애물도 통과하면서 빙글빙글 배를 몰고서 출구로 갔다.


 배에서 내리면서 아이가 얘기했다. “엄마! 우리 진짜 빨랐어. 그렇지 내 말 맞지? 내가 둘이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근데 엄마 나 진짜 열심히 노 저었다. 다리 아파. 왜냐면 계속 쭈그려 앉아서 노 저었거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아이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나와 같이 배를 나아가게 하기 위해 애썼다.  아이가 나보다는 힘이 약하고 노를 물에 가로로 꽂지는 못했지만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계속 다리 아팠을 텐데도 쭈그려 앉아서 열심히 노를 저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에이 네가 무슨 도움이 됐다고 그래?”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엄마야말로 앞뒤로 노 젓느라 힘들었어.”라고 징징댈 필요도 없다. 그냥.. “어 진짜 고생했네. 너랑 엄마가 열심히 노 저어서 배가 빨리 앞으로 나갔나 보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구나.

 일련의 이 일들이 나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었다. 시작도 전에 걱정만 많이 하던 나의 모습, 덜컥 겁부터 냈지만, 막상 닥쳐보면 다 어떻게든 하게 돼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 고무보트 노젓기가 앞으로 우리 가정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 및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양육자인 나는 내 고됨이나 힘듦을 아이에게 생색낼 필요 없이 그저 아이 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거라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내가 다른 가정의 엄마들보다는 혼자 두 번 움직여야 했듯이, 살아가면서도 열심히 더욱 노를 앞으로 뒤로 저으면 된다는 것을.  


이렇게 단둘이 뭔가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나니 아이도 뿌듯해했지만, 나의 자존감도 약간 올라간 것 같았다. 우리 둘이 헤쳐나갈 수 있어. 방향을 잃지 않고 잘 나아갈 수 있어. 하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그 다음날 나의 허벅지, 엉덩이, 팔등이 살짝 알 배긴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이 좋은 통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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