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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18. 2019

I

나에 대해..

이혼하고 나서 일 년 뒤쯤, 나는 올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언제까지고 힘든 마음만을 붙잡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에겐 돌봐야 할 아들이 있으니까. 나 혼자가 아니니까 마음 추스리기 전에 정신부터 차려야 했다.

이혼하고 나서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지금은 분리해 나왔다. 야호!!), 일단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다스리며 생각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옵션이 뭐가 있지? 하고 하나씩 정리해서 적어보았다. 하나씩 적어보았더니 생각보다 많았다. 이건 별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적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모습들도 떠올랐다.


아 맞아, 나 중학생 때 백일장에서 수채화로 양재 시민의 숲을 그려서 상 받았었지...

아 그래 나 초등학교 때는 동시로 상 많이 받았어. 고등학교 때는 사진부에서 동상도 받았었네.. 잊고 있었는데 그랬었구나..


하는 , 내가 살아오면서 약간이라도 인정받았던, 혹은 내가 잘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정리해보았다. 그다음 단계는 거기서 뭘 할지 고르는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말고 해야 할 것을 골라야 할 때였다.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임용고시를 골랐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마지막으로 한번 가봐야 했다. 합격한다면 아이와 나를 위한 최선의 결과일 테니까. 안정적인 삶은 물론, 추후 아이의 삶에 짐이 되지 않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나의 시간, 아이의 시간, 그리고 최소한의 돈을 다 건, 내 인생 최악의 순간에 모든 것을 건, 올인을 결심한 것이다.


이혼하고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들어간 나는 얹혀살게 된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그래서 여러 상황을 따져보지도 않고, 아빠방으로 멋쩍게 들어갔다.


아빠... 저 한 2-3년만 신세 좀 질게요


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쩌면 나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베팅을 한 것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받으시는 연금 등은 부모님 돈이고, 아이와 함께 부모님댁에서 신세 진다는 것만으로도 면목이 없어서, 나는 다니던 직장에 육아휴직을 내기로 결정했다. 작은 돈이지만, 돈을 받으면서 공부해야 했다. 아이를 위해 써야 할 시간인데 공부를 한다는 죄책감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걸 생각하면서 정말 독하게, 치열하게 간절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적은 시간이긴 하지만, 멀리 산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했다. (육아휴직시, 주 15시간 이하의 근무는 가능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적고, 전문적인 일도 아니라 보수는 적었지만 그거라도 해야 경제적 부담이 약간이나마 줄어드니까 주말마다 일했다. 산 근처에 있는 카페여서 내가 일하는 아침시간에는 손님이 적었다. 나는 그 시간도 최대한 활용하려는 생각에서 멀리 있는 곳까지 다녔던 거였다.


어느 주말, 고단하게 돌아오는 길, 따사로운 햇살이 마을버스 창문에 비추고 있었다. 나는 거의 이동 중에는 항상 노래를 듣는다. 기분도 좋아지고, 힘도 나면서 나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태연의 i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사를 들으며 노래를 듣고 있자니, 이혼 직전쯤, 왜 이렇게 자꾸 대화가 안되고 싸울까에 대한 노력의 일환 중 하나로 내가 아이 아빠에게 얘기했던 게 생각났다.


우리가 자꾸 서로 이해 못하고 싸우게 되는 게, MBTI성향이 정반대여서 그런가 봐.


나는 INFP고 그쪽은 아마 ISTJ일 테니,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받아들이는 방식이 너무 다르니까 서로를 이해 못하는 걸 거라고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시도였는데, 말 꺼냈다가 돌아온 건 또 무시와 비난이었다. 인간이 그럼 16 유형으로 딱 나뉜다는 말이냐, 그 학자가 이야기 한 거면 무조건 믿어야 하냐 등등... 그래서 그쯤에서 또 대화가 안돼서 그러고 말았었지..


이런 생각의 꼬리를 물고 INFP인 나(때로는 ENFP이기도 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나는 INFP 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4프로만이 이 유형이라고 하는데, 내가 살아오면서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 INFP가 있었을까? 거의 없었겠네.. 그런데 나는 20대, 30대를 거쳐오면서 나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확신이 안 설 때마다, 다른 유형 사람들의 인정, 또는 이해를 바라왔었던 거구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내가 이상한 걸까 생각했던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행동이었구나..어짜피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마음속에서 작은 깨달음에 대한 기쁨과 나에 대한 믿음이 올라옴이 느껴지면서 내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노래를 반복해서 내내 들으면서 집에 오는 길에 나는 마을버스의 창문을 열고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가사가 내 마음속에 각인되면서 나와 하나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빛을 쏟는 sky(i)

그 아래 선 i

꿈꾸듯이 fly(i)

my life is a beauty

...

네가 흘린 눈물

네가 느낀 고통은 다

더 높이 날아오를 날을 위한

 준비일 뿐

...

세상 가득 채울 만큼

나를 펼쳐가

...

꽃잎은 저물고 힘겨웠던 난

작은 빛을 따라서

아득했던 날

저 멀리 보내고

찬란하게 날아가

..

새로워진 eyes(i)

눈을 감은 순간

시간은 멈춰가

난 다시 떠올라


그렇게 난 다시 떠올랐다. 약 일 년 만에 모든 걸 올인한 시험에 붙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인용문 중 오스카 와일드의 그 인용구처럼.. 나는 발은 시궁창에 있어도 별을 쳐다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건 망상이나 현실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 용기를 잃지 않고 꿈꿀 수 있다는 것, 강인함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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