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 짓이라는 건 없다
중학교 때다. 나는 예술 중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반에는 야리야리한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한국 무용을 전공하고 있었고, 우리 반은 일명 "무용반"으로 발레, 한국 무용 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오후 3-4시까지 학과 수업을 하고 오후 늦게까지, 또는 저녁까지 무용 수업을 했다. 오전 일찍부터 저녁까지 학교에 매어있고, 주말에는 따로 무용 수업을 듣는 등,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예술 꿈나무의 삶이었다.
우리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풋내가 아직 나는 10대 소녀들이었지만, 우리는 서울에서 또는 각 지방 지역에서 영재들로 추앙받고, 가족들의 기대를 한껏 품고 이곳에 와 있었다. 세, 네 살부터 다들 무용을 시작해서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거나 무언가를 실컷 먹거나 해보지 못한 여느 십 대 소녀들과는 아주 많이 다른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예술제라도 있을 적이면, 저녁 늦게까지 무용을 연습하고, 기진맥진해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탔는데, 서서도 사람이 졸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러다 문득 버스 오디오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하는 노래가 나오는데, 나는 무릎을 꺾어가며 졸다가 들은 그 노랫말에 펑펑 울었다. 종종 내릴 곳을 놓치고 버스 종착역까지 가기가 일쑤였는데, 거긴 정말 논밭만 있어 가로등 불빛 하나 없고, 인적도 없어 내가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 나 죽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서웠던 적도 있고.
그러다가도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소녀들은 모여서 왁자지껄했다. 우리는 매점은 잘 가지 않았는데, 간식 때문에 살이 찌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급식 때도, 발레부 얘들은 음식을 씹어서 그 물만 삼키고 찌꺼기는 뱉어냈다. 나이가 열네 살, 열다섯 살이 되어도 생리가 시작되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고, 심지어 생리가 시작되어 키 성장이 멈출까 봐 클리닉에서 생리를 늦추는 주사나 한약을 먹는 얘들이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만나면 즐거웠다. 쉬는 시간엔 선생님 앞에선 못할 아무렇게나 막춤을 추면서 신나게 웃어댔다
운동회가 끝나고 난 다음날이었다. 우리는 왠지 조금 들떠있었다. 몇몇 친구들이 수업이 시작돼도 근처 숲에서 낙엽을 보며 과자를 먹고 있는 것을 봤지만, 모른척했다. 선생님이 물었다.
다들 어디 갔어?!
반에 있던 친구들은 다들 모르는 둥 했다.
빨리 말 안 해?!
당시 반장이었던 나를 유독 노려보며 담임 선생님이 소리쳤다. 나는 침묵했다. 그 순간 친구들이 꺄르륵하며 교실 안으로 들이닥친다. 으휴.. 분위기가 그게 아닌데. 눈치도 없어.
너네 여기 한 줄로 서.
발레부 친구들이 두려운 눈을 하고 교탁 옆에 나란히 섰다.
반장, 가서 빗자루 가져와.
친구들이 두려운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님아, 그 빗자루를 가져오지 마오. 선생님이 야속하다. 왜 나를 폭력에 가담을 시키나. 죄책감으로 어깨가 자꾸만 쪼그라든다. 나는 말 잘 듣는 반장이 으레 그렇듯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빗자루를 갖다 바쳤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한 명씩 돌아가며 손바닥을 그 빗자루로 세게 세 번씩 내리쳤다. "아!!" 아이들이 고통에 소리쳤다. 선생님은 즐거워 보였다. 사람을 때리는 것이 가벼운 것이 아닌데,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는 우린데, 몸이 악기인 우린데, 일말의 죄책감이 없어 보였다. 그런 우리를 때리면서.
맞을 짓이라는 건 없는데, "너희가 수업에 늦은 건 맞을 짓이고, 본보기를 보여야 해"라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 선생님이 나는 너무 공포스러웠다. 선생님의 권위로 아이들이 왜 낙엽을 보면서 과자를 먹는 여유를 조금이라도 부린 것을, 선생님의 마음대로 움직이진 아이들을, 때려도 된다라고 자신의 폭력을 타당하게 여긴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역겹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지금 하시는 행동은 잘 못 되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눈앞의 권위에 나도 굴복을 했다는 게. 예술 학교는 예술적 창의력을 천재성으로 쳐주는데, 그런 곳에서 학교 근처 숲의 유독 아름다웠던 가을의 변화를, 잠시 넋 놓고 바라봤던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어떤 권위로 해할 수 있을까. 학교라는 곳이 군대와 비슷해서 (아직도),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선생님이 되어서 "질서"와 "규율"을 강요하는 곳이라는 게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안타까운지. 찬란하게 아름답던 우리에게 몽둥이를 휘둘러대며 입가는 미소를 짓던 그 선생님은 지금은 본인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까. 소나기가 쏟아지던 거리를 우산 없이 내달리던, 마냥 즐겁던 우리를 때리던 그 선생님, 선생님들은. 어떤 이유에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맞을 짓은 없다는 것을, 상대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나와 동등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벌어지는 것이 폭력임을 이 사회가 점점 더 알아가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