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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영 Oct 29. 2020

우리는 사랑하고 분노한다.

안타깝게도 사랑만 할 수는 없다. 

예전에 잠깐 만났던 독일인 친구가 있다. 


마르쿠스는 아버지랑 단 둘이서 살아왔다. 


마르쿠스는 어머니는 마르쿠스를 낳다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그게 병원 측의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의료사고의 책임을 묻고자 담당의사를 찾아가 따졌고, 담당의사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너 같은 가난한 새끼가 나를 고소하려면 해봐. 결국엔 질 테니까. 


마르쿠스의 아버지는 "총으로 쏴서 죽여버리겠다"며 분노했지만, 의사는 피식 웃으며 등 돌려 사라졌다고 했다. 이후로 마르쿠스의 아버지는 고소하지 않았고, 무기력한 채로 청소부로 연명하며 알코올중독자로 살아왔다. (다행히 지금은 스페인인 여자친구 마리아가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술을 드시는 게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런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가정사를 카페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이, 내 눈이 동그랗게 되는 걸 보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던 모습이 생각난다. 한국에 장학금을 받고 석사 공부를 하러 온 것이 뿌듯하다면서 "나 이 정도면 잘 자라지 않았어?"라고 물으면서 미소를 머금던 얼굴 어딘가가 조금은 쓰라렸던 것도 기억이 난다.  


마르쿠스의 눈에는 항상 세상을 향한 분노 같은 것이 있었다.


마르쿠스의 눈에는 항상 세상을 향한 분노 같은 것이 있었다. 부를 갈망하면서도 부를 가진 자를 혐오하는 모순 같은 것이 있었다.

 

마르쿠스의 아버지는 갓난아이일 때 친부모에게서 버려져 쓰레기통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됐었을 때이고, 쌍둥이 형제는 마르쿠스 아버지의 옆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함께 발견되었다고 했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되었으면 마르쿠스의 아버지도 형제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었을 것이라 했다고 했다.   


마르쿠스의 아버지를 입양한 가족은 독일에서 부유한 가정이었지만 집안 내 차별대우로 마르쿠스의 아버지는 늘 가족에게 마음의 거리가 있었고, 아버지를 제외하고 함께 자란 형제자매들은 변호사, 의사, 대기업 간부 등으로 사회에서 요직을 갖고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큰 아버지가 BMW에서 간부를 하고 있는데 마르쿠스 아버지에게 BMW 건물 청소부 자리를 주고자 했지만 아버지가 거절했다고 했다.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데도 아버지는 마다했다고 했다. 


독일 사회도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인맥" 또는 속된 말로 "백"이 없으면 성공이 힘들다. 


독일 사회도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인맥" 또는 속된 말로 "백"이 없으면 성공이 힘들다. 어느 사회나 그렇겠지만. 독일어로는 "Vitamin B" (관계라는 뜻의 단어 "Beziehung"에서 유래)라고 한다. 마르쿠스는 이 "Vitamin B"없이 빨리 자수성가할 수 있는 분야가 금융이라고 생각해서 금융을 전공했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 분야가 낮밤 없이 일해야 하고, 그 스트레스로 가정불화가 잦은 상사들을 보고서 분야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곧 자기 집이 된다는 말을 요즘에야 이해하게 됐다고도 했다. 


분노의 온도는 뜨거운 것일지 모르겠다.


분노의 온도는 뜨거운 것일지 모르겠다. 겨울에는 그 친구가 가끔 떠오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보호 없이 사라질 때,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세상과 신을 향한 분노. 그리고 이 세상을 거저 살고 있거나 대가 없이 들숨 날숨을 쉬어대는 태평하게 일상을 소비하고 있는 것 같은 모든 이들에 대한 분노.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들에 대한 분노.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는 이들에 대한 분노. 다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사실에 대한 분노. 


이런 분노들이 차가운 겨울을 조금은 녹이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세상을 살만하게 바꾸는지도 모르겠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마르쿠스의 두 눈은 살아있음의 표식이기도 했다. 우리는 사랑하고 분노한다. 분노로 세상을 녹이고 품으로 끌어안는다. 


최근에 마르쿠스가 스위스에서 패션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친구의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다. 


어디에 있건 마음의 집을 짓고 자리 잡아 행복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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