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아주 특별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 온기가 되고, 그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기치를 걸고 '도서출판 있다'가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가을, '있다'에서 펴 낸 두 번째 에세이 '영국, 작은 도시에서의 일 년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이 교보문고에서 매월 진행하는 ‘작고 강한 출판사의 색깔 있는 책’에 선정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몇 년 전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했던 나의 첫 책 <연남동 작은 방>도 당시 출판사를 통해 '작고 강한 출판사'의 책으로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교보문고에 작은 출판사를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고 강한'이라는 타이틀을 듣고 조금 웃었어요.
'뭐야, 강하다니... 애들 보는 격투 만화영화도 아니고.'
'강하다'는 말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비교하며,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누가 더 센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토론하는 아이들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아직 사고가 일차원적인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서열이 무척 중요한지, 아이들은 가끔 엄마나 아빠의 나이를 비교하며 '우리 엄마(혹은 아빠)'가 더 나이 많음에 의기양양해 하기도 해요. 난처함과 부끄러움은 옆에 있던 부모들의 몫일 뿐(얘들아, 그거 아니야... 진짜 그건 아니야...).
이처럼 '강하다'란 말은 대놓고 하기에는 만화 영화 속 싸움 장면처럼 조금 유치하고, 열없고, 오글거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강함'이 '작음'과 함께 놓이니, 사뭇 느낌이 달라집니다. 작고 강한 것은, 작지만 강한 것은, 작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것은, 좀 멋진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럼에도 도전하는 용기, 해내고야 마는 오기 같은 꽉 찬 단단함이 담긴 표현 같달까요.
세상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책들이 있습니다. 펴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읽히는 글들이 있습니다. 영상 매체가 지구를 정복하려는 요즘 세상에, 사람들은 책 읽는 시간을 줄이고, 이전이라면 두세 권 살 책을 한 권으로 줄입니다(아... 열 권 살 걸 한 권으로 줄이는 걸지도요.^^;). 그때 이왕이면 더 유명한 작가의 더 유명한 책을 고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매출을 내야 하는 서점이 그런 잘 팔리는 책들을 우선하여 매대에 올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이런 상황에 '작은' 출판사의 유명하지 않은 책이 신간 매대에 잠시 놓였다가 반응이 없으면 소리소문 없이 벽면 서가에 꽂히는 것은, 또한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슬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은' 출판사들은 강인하게 꿋꿋하게 좋은 글을 책으로 만들어 냅니다. '벌이' 보단 '보람과 믿음'으로 하는 일이 책을 만드는 일, 특히 몸집이 작은 출판사의 일인 것 같습니다.
세상을 흔드는 큰 목소리가 되지는 못한다해도 작은 소리에도 울림은 있고, 때론 작아서 가볍게 펼쳤다가 생각지도 못한 깊은 울림에 마음이 더욱 크게 요동치기도 할 것입니다. 넓은 대형 서점 한 편에 이런 '작고 강한 울림'을 응원하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 공간에 <낯선 계절이 알려준 것들>을 올릴 수 있어서 또 한 번 감사합니다.
교보문고의 '작고 강한 출판사'를 기회로 나의 책들이 유명세를 탈 수 있을까요? 운이 좋으면 입소문을 타서 '화제의 도서' 매대로 옮겨갈 수도 있고, 아니면 끝내 핀듯 만듯 어정쩡한 꽃봉오리로 남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브런치는 '그렇다고 멈출 생각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고 강한 '글의 숲' 같습니다. 꾸준히 내면의 소리를 글로 엮어내는 사람들, 쓸수록 내면이 단단하게 강해지는 글들. 모두의 멈추지 않는 '작고 강함'에 찬사를 보내며, 오늘의 나누고 싶은 '낯선 계절' 소식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