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Manchester)를 얘기하려면 지난 편 ‘리버풀’에서도 언급한 ‘산업 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맨체스터는 18~19세기 영국 산업 혁명의 주축이었던 도시로, 특히 섬유 산업을 중심으로 발달한 맨체스터는 산업 혁명 시기에 ‘세계의 섬유 수도’로 불릴 정도로 섬유를, 그 중에서도 면직물을 많이 제조했다. ‘세계 섬유 수도’의 중심에는 기계화된 생산 시스템을 갖춘 대규모 공장이 있었다.
이 대규모 생산 시스템으로 인해 인간은 부속품화 되고, ‘찰리 채플린’은 단순노동을 쉼 없이 반복, 또 반복해야 했지만, 산업 혁명이 불러온 생산 체계가 생산성을 높여 도시에 부를 가져다주고, 도시를 발달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 ‘부와 발달’이 ‘공정’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두자.) 소규모 농업 및 상업 도시였던 맨체스터 또한 이 ‘산업 혁명’ 덕분에, 시대 흐름의 중심에서 거대한 도시로 발달했고, 지금은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맨체스터 >
< 맨체스터 도심 전경 (출처 : BBC) >
// ‘산업 혁명’의 도시, 맨체스터(Manchester)
손에 꼽히는 대도시인 맨체스터는 건물들이 큼직했다. 이전에 돌아본 도시들에 비해 비교적 가까운 산업화 시기에 발달했기 때문인지, 혹은 너무 발달해버렸기 때문인지, 영국 지방 도시들이 갖는 특유의 고풍스러움이 덜 했다. 바스에는 없는 큰 쇼핑몰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더욱 화려했다. 대도시의 맛이었다.
< 지금까지의 지방 도시들과 달랐던 대도시 맛의 맨체스터 이곳저곳 (출처 : 위키피디아) >
큰 도시는 이동 거리도 길었다. 도심 내 주차가 어려워 멀리 주차를 하고 목적지까지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필 여행 내내 비가 내려 길이 추적추적 불편했다. 아... 참, 바로 직전에 여행한 리버풀과 체스터에서도, 또 그 전에 여행한 에든버러에서도 날씨는 주로 우중충했고 수시로 비가 내렸었지. 소도시에서의 비는 낭만을 주지만, 대도시에서의 비는 ‘번잡함’만 더한다는 것을 맨체스터에서 깨달았다. 아니다. 정확히는 ‘내가’ 소도시에서는 길가에 세워진 가로등에서도 ‘낭만’을 느끼지만, 대도시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 맞겠다. (심지어 프랑스 파리 상젤리제 거리에서도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 나였다.)
이에 따라 우리의 맨체스터 여행은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보기에 근사한 어느 펍에 들어가 맥주로 목을 축이는 우연한 이벤트 없이, ‘선택과 집중’에 충실했다.
첫 번째 선택은 맨체스터를 지금의 맨체스터로 만들어준 ‘산업 혁명’. 그 결과로 고른 곳이 ‘맨체스터 과학 및 산업 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 그리고 맨체스터 외곽에서 탈 수 있는 증기기관차였다.
‘맨체스터 과학 및 산업 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은 면직물 산업 위주의 맨체스터 산업 기술의 발달과 산업 혁명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산업의 발달에 핵심이 과학 기술이었을 것이기에 ‘과학’과 ‘산업’, 두 키워드를 함께 묶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 맨체스터 산업 박물관(Science Industry Museum) (출처 : 산업 박물관 홈페이지) >
< 박물관 내부 >
박물관의 1층에는 산업 혁명 시기의 방직 관련 설비와 증기 기관의 발달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 있었다. 아주 넓진 않지만 기계를 이용한 당시의 생산 현장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장면을 눈 앞에서 실물로 보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돌아보니, 흥미를 느끼는 건 남편과 나뿐, 아직 ‘산업 혁명’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아이들은 당최 이걸 왜 보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공허한 눈빛으로 몸을 비틀고 있었다.
< 방직 관련 전시관 (출처 : 구글) >
이런 아이들을 위해 2층에는 과학 현상을 체험으로 익힐 수 있는 인터랙티브 과학 전시장이 있다. 물리학의 기본 원리나 공기압, 전류의 원리 등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눌러 보면서 경험하는 것이다. 요즘은 글로만 배우지 않고 온 몸으로 익히는 교육이 많이 발달하여, 맨체스터 박물관의 과학 체험이 아주 특별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과학과 산업이 접목되어 폭발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 맨체스터에서 산업 혁명의 역사를 접하고, 과학을 느끼는 것은 또 그 나름의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것 저것 거침없이 누르고 두드리며 무척 즐거워했다.
< 2층 인터랙티브 과학 전시관(출처:구글) >
아주 솔직하게 말해 맨체스터 과학 및 산업 박물관이 아주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맨체스터에 간다면 가볼만한 곳인 것 같다.
맨체스터의 키워드 ‘산업 혁명’의 두 번째인 ‘증기기관차 체험’은 나의 심드렁한 기대보다 훨씬 특별한 경험이 되었기에, 다음 편으로 넘긴다.
// 그러나 우리에겐 오직 ‘축구’뿐
산업 박물관 견학을 열심히 소개했지만, 우습게도 ‘산업 혁명’의 도시,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맨체스터’에 다녀온 내 사진첩에는 온통 ‘축구경기장’ 사진뿐이었다(참고로 산업 박물관 소개에 쓴 사진들은 모두 웹사이트와 기사, 구글이미지에서 찾은 사진들이다). 맨체스터에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이하 맨유)가 있고, 우리 집에는 맨유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 맨유 로고와 정성으로 한 블럭씩 쌓아올린 남편의 맨유 홈경기장 레고 >
남편은 맨유의 오랜 팬이었다. 그는 어쩌면 프리미어 리그를 보기 위해 영국으로 공부하러 왔는지 모른다. 남편의 학교가 맨체스터에 있었다면 나는 남편 얼굴을 거의 못 보고 살 뻔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남편은 평균적으로 1달에 한 번 꼴로 맨유의 경기를 보기 위해 혼자 맨체스터에 갔다. 맨체스터는 바스(Bath)에서 차로 약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중간에 쉬어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왕복으로 약 9시간. 남편은 힘들어 하지도 않고 열심히도 다녔다. 처음에는 맨체스터에서 1박을 했으나, 점차 매번 나가는 숙박비가 아깝기도 하고(경기 티켓은 또 좀 비싼가!),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맨체스터에서 혼자 할 일도 딱히 없으니 조금 무리해서 당일로 다녀오기도 했다.
< 바스에서 맨체스터까지의 여정 >
그렇게 매번 남편 혼자 떠나던 길을, 연말 긴 연휴를 맞아 잉글랜드 북서부 지역 여행을 할 겸사겸사 온 가족이 함께 나섰다. 잉글랜드 북서부 지역의 리버풀, 체스터, 맨체스터 모두 근사한 여행지였지만, 무엇보다 남편의 온 마음을 사로잡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 ‘올드 트래포드(Old Trafford)’ 투어가 이 연말 여행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였다.
나도 축구를 좋아하느냐? 완전하게 ‘노(No)’다. 나는 서로 신체를 세게 부딪히는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태클에 걸려 바닥에 나동그라질 때면 내가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리곤 한다.
그럼에도 남편을 따라 나선 것은, 나의 반쪽인 남편이 처음으로 열렬하게 ‘덕질’을 실천하는 ‘맨유’의 공간이 궁금했다. 남편은 매사에 꼭 그래야만 하는 게 없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람이었고, 나는 ‘덕질’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편이 '덕질'을 하러 맨체스터로 떠날 때 앞에서는 혼자 애 둘을 봐야한다고 투덜투덜 거렸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덕질’은 누군가 들어줄 때 더 신나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 더 벅차오르는 법. 그렇게 우리는 남편이 사랑하는 맨유의 도시로 함께 향했다. 무엇보다 남편이 그토록 즐거워하는 순간에 나도 있고 싶었다. 조금 더 온전히 남편의 반쪽이 되고 싶었다.
< 남편이 직접 찍은 맨유 경기 사진 >
< 몇 번의 맨체스터행에서 찾은 '맨유 팬들의 펍', 맨유 경기가 있는 날은 맨유 팬만(티켓으로 확인) 입장가능하다고 한다. >
게다가 영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축구’이기에 한 번쯤 축구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꽤 괜찮은 영국 여행일 것 같았다. 영국에 수많은 축구 클럽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맨유는 (지금은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통의 강호로 엄청난 팬덤을 형성한 성공적인 축구 클럽이자, 프리미어 리그의 대표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하여 우리나라 축구 선수(박지성 선수)가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한 축구팀이기도 하니, 맨체스터에서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 맨유의 홈경기장 올드 트래포드 >
올드 트래포드에 도착했다. 이날은 경기가 없었다. 올드 트래포드에는 경기를 보지 않는 사람도 맨유의 경기장을 경험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아마 다른 축구 클럽의 홈경기장도 각각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것 같다(일단 토트넘에는 있다! 하하).
처음엔 축구 경기장 투어라는 말을 듣고, 넓은 축구장을 보면 됐지 무슨 투어까지 할 것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경기관람을 하러 가는 것보다 올드 트래포드의 구석구석을 가이드와 함께 돌아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보통 경기를 보러 갈 때는 관중석과 스낵바에만 가지만, 투어 프로그램에서는 그 둘을 제외하고 다 돌아볼 수 있다고 보면 되겠다.
올드 트래포드 건물 내부에는 맨유의 영광스런 역사가 쭉 전시된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그 동안 맨유가 받은 엄청난 트로피들과 그 트로피 사이에서 환호하는 박지성 선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맨유의 영광 속에서 발견한 박지성 선수의 얼굴 >
초록 잔디가 싱그러운 경기장으로 나서면, TV 화면 속에서 늘 꽉 차 있던 공간이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용한 경기장이 낯설면서도 초록과 빨강의 조화가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경기장을 빙 두르고 있는 네 면의 관중석 중 북쪽 관중석에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맨유를 지휘하며 맨유에 가장 큰 영광을 안겨준 수장 퍼거슨(Ferguson)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북쪽 관중석에 ‘써 알렉스 퍼거슨 스탠드(Sir Alex Ferguson Stand)’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 대감독이 알아본 우리의 박지성 선수, 짱! (촌스러워도 그 시절엔 ‘짱’이 ‘짱’이었다. 하하)
< 휴식을 취하고 있는 빈 경기장 >
빈 경기장을 둘러 본 뒤엔 진짜 궁금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선수들의 공간, 라커룸! 선수들이 자리를 비운 라커룸에는 각 선수들의 자리마다 해당 선수의 유니폼이 걸려 있다.
< 선수들의 공간, 라커룸 >
투어에 함께 참가한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라커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남편은 래시포드(Rashford)와 산초(Sancho)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굳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호날두(Ronald) 유니폼 앞에서 한 번 찍어 놔. '호날두'잖아.”
호날두 자리 앞은 문전성시였다. 내 앞에 줄을 선 몇 사람이 사진을 찍고 떠난 뒤에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찍고 난 뒤에도 사진이 누구의 폰에 저장되어 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고 지냈었는데, 최근 호날두가 유투브를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기록을 갱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어디다 쓸 일은 없지만, 호날두(의 유니폼) 앞에서 사진을 찍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하.
< '슈퍼스타' 호날두 유니폼 앞에서 >
라커룸을 구경한 뒤에는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출전하는 길을 똑같이 걸어 경기장으로 나갔다. TV에서 축구 경기가 시작될 때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에 많이 보던 공간에 내가 직접 서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남편은 더욱 벅찬 기분이 들 것 같아, 그 길을 걸어가는 남편을 여러 각도로 정성스럽게 찍어주었다. 훗, 꽤 괜찮은 반쪽이가 된 듯했다.
< 선수들이 입장하는 길 >
선수들의 발길을 따라 다시 한번 경기장으로 나가니, 이번에는 감독과 코치 등이 앉는 홈 팀의 자리에 앉아 볼 수 있었다.
< 홈 팀 구역 >
경기를 잘 마무리했다면 이젠 인터뷰 시간. 프레스(Press) 룸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경기 직후 인터뷰를 하는 곳은 아니고, 맨유에서 선수를 영입한다든가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할 때 이곳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 맨유 공식 프레스 룸 >
“여봉봉씨, 고대하던 꿈의 구장, 올드 트래포드를 돌아본 소감이 어떤가요?”
“최곱니다.”
늘 이렇게 담백한 표현 정도 밖에 하지 않는 남편의, 안 그런 척하려고 해도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가 백 마디 이상의 말을 대신 표현해주고 있었다. 진심으로, 최고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올드 트래포드 투어를 마치고 나서는 길, 올드 트래포드 곳곳에서 찾을 수 있는 ‘움직이지 않는 시계’가 먹먹하게 발걸음을 붙잡았다. 올드 트래포드에는 시간이 멈춘 시계가 있다. 1958년 2월 6일 3시 4분에 멈춘 시계.
< 1958년 2월 6일에 멈춰있는 시계 >
1958년 2월 6일, 3시 4분, 독일에서 유럽컵(현재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을 마치고 홈으로 돌아오는 맨유의 선수들과 스탭들이 탄 비행기가 이륙하려다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뮌헨 비행기 참사’라고 불리는 이 사고로, 총 23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선수 8명이 포함되었다. 소중한 생명이 한 순간에 꺼져버린 것 자체가 가장 큰 슬픔이겠지만, 핵심 선수들의 희생으로 이후 맨유의 활동에도 상당한 타격을 안겨준 비극적 사건. 이 사건은 맨유 구단과 팬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겨졌고, 지금도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선수들이 유니폼에 조의를 표하는 표식을 하고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기억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나처럼 맨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과거의 사건을 알려줄 수 있고, 누군가 이 시계를 볼 때마다 그때 사라진 이들을 다시금 존재하게 할 수도 있다.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
절정기에 비해 경기력이 조금 미흡한 요즘의 맨유 경기를 볼 때면 남편은 자주 답답함이 가득한 토로를 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러니까 이제 맨유 버리고 다른 팀으로 옮겨 타.’라고 쉽게 얘기를 하곤 했다. 기분 좋으려고 시간을 내어 보는 축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과 비극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맨유의 공간, 올드 트래포드를 나서는 마음은 남편에게 조금 더 동화된 것이었다.
멈추어 버린 그날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맨유가, 한때 최고의 자리를 누렸던 맨유가 다시 한번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환호를 외치는 날이 오기를. 그날에 나 역시 먼 나라에서 나의 반쪽과 함께 뜨겁게 환호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맨체스터에서 '축구'를 보았다. 런던을 연상케하던 큰 도시 맨체스터에는 볼거리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 물자수송을 위해 만든 운하나 그때 벌어들인 돈으로 무엇이든 큼직하게 세웠을 기념건물들, 거대한 인구만큼 거대할 성당이나 대규모 상업도시에 걸맞은 수많은 오피스 스퀘어, 그 사이를 채우고 있을 팬시한 레스토랑들 등등. 누군가는 '축구' 빼고 다 돌아봤을 대도시 맨체스터를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올드 트래포드’로 가득한 우리의 맨체스터 여행은 나의 반쪽에 더 가까워진 특별한 의미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