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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쓰기 본능, 생각보다 괜찮다

<글쓰기-1>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써라

by 조창완

누가 내가 “당신은 언제 가장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냐”고 물으면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전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들일 때, 가장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1995년 10월 미디어오늘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후 얼마되지 않아, 사진기자를 하던 손문상 선배가 하나를 건네줬다. 내가 마감 기사를 쓰기 위해 자판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직접 나를 볼 수 없지만 그 사진을 통해 내가 글쓰는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입술을 앞으로 내민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보이니, 좀 고집스럽게도 보이니 평상시에는 그런 얼굴을 하지 않는다. 오직 집중할 때만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나는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봤다. 바로 아들 용우가 피아노를 칠 때, 집중하는 모습이 그랬다. 집중한다는 것은 두뇌와 필요한 손가락 외에는 거의 다른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집중하는 것이 바로 글을 쓰는 순간이다. 내 존재가 궁극에 가장 근접한 시간인 것이다.

캡처.JPG 예스24 작가소개에 있는 사진이 손문상 선배가 찍어준 내 글쓰는 사진이다. 가장 집중할 때 모습니다. 손선배는 지금 부산에서 '손목서가'라는 카페를 운영한다.


글은 자판 앞에서만 쓰는 것은 아니다. 가끔 무슨 생각이 나면 핸드폰 메모장 앱을 켜서 쓰기도 한다. 떠 오른 아이디어가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남아 있는 기억이 별로 없어서 들인 습관이다. 또 책을 기획할 때는 메모장에 목차를 정리하고, 하나하나씩 메모를 해간다. 이것도 한권의 책으로 가는 가장 숭고한 첫 단계 중에 하나다.

나는 특히 출판 기획서를 쓰기 좋아한다. 내 작업용 노트북의 책 폴더에는 이십여개 가량의 폴더가 있다. 모두 책을 쓰기 위해 만들어놓은 폴더다. 그중 한 폴더는 ‘완료’다. 이미 책이 된 원고를 모은 공간이다. 단행본으로 16권의 책이 있으니 폴더도 그 이상 있다. 그 폴더에는 책에 사용된 사진들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또 옆에는 ‘미완성’이란 폴더도 있다. 책까지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아이템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다. 여기로 왔다는 것은 이미 좌절된 기획이라는 것이지만 그래도 버리기는 아쉬워서 모아둔 것이다.


2002년경부터 책을 냈으니 해마다 한권 꼴로 책을 낸 셈이다. 어떤 해에는 한해에 3권의 책을 낸 적도 있다. 반면에 공직생활을 할 때는 책을 내기가 좀 부담스러워서 그냥 지나간 해가 많다. 직장과 직장을 옮겨다닐 때 주로 책을 냈다.


내 쓰기 본능은 언제나 나온다. 지난해 7월 춘천시에서 대변인과 공보관을 겸한 시민소통담당관을 일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블로그에 ‘봄내일기’라는 게시판을 만들어 춘천에 관한 글과 사진을 올렸다. '봄내'는 춘천(春川)의 순 한글이다.

나는 생각한다. 아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한 만큼 표현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나는 춘천에 살 때 춘천을 사랑했고,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하나하나 담아서 내 지인과 블로거들에게 알렸다. 사랑하는데도 표현하지 않으면 짝사랑으로 끝난다. 그 과정에 당연히 글쓰기가 있었다. 김유정 문학촌이나 청평사처럼 유명한 장소도 있고, 역사 속 인물 유인석 장군도 있고, ‘금자네 해장국’이나 ‘멍텅구리’ 같은 음식점도 있었다. 또 우리 축구 부흥을 이끈 춘천 출신 장덕진 장관이나 내가 만나던 김현식 선배나 박제영 편집장 같은 사람 이야기도 있다.

사람들은 묻고 싶을 것이다. 왜 그런 걸 쓰지. 다른 이유는 없다. 나에게 쓰는 것은 존재를 말하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내 사랑을 말하는 방식이다.


그럼 쓰는 것의 효과는 무엇일까. 나는 그간 수많은 글을 썼지만 자신이 글에 언급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내와 아이 빼고는 보지 못했다. 아내는 태생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고, 아들은 친구들이 아빠의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해서, 남사스럽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배제하지만, 아들을 좋아하는 팔불출이라 가끔 등장할 수 밖에 없다.


때로 속도를 요하는 글쓰기의 필요성도 있다. 나는 <조국의 시간>이 출간됐을 때, 그 책을 하루에 읽고, 바로 서평을 썼다.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해 부정적인 서평이 올라가면, 판매 분위기가 안좋을 것으로 생각해 재빨리 서평을 올렸다. 가장 빨리 올라온 서평이어선지 포털에서 검색하면 내 서평이 가장 위에 배치됐다. 때문에 15,000건 이상 조회수가 올라갔고, 235개의 공감도 있었다. 댓글은 찬반 의견으로 분분했다. 다만 나는 비상식적인 반대 댓글은 지웠다. 내 개인 블로그이니 만큼 오염시키기는 싫어서다.


이렇게 글쓰기를 쉽게 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국문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꼭 연관된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글쓰기를 겁내지 않은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다. 우리 과 사무실에 가면 학번별로 잡기장이 있어서 잡글을 쓸 수 있었다. 가끔 찾아서 심심하면 글을 남겼다. 거기에는 나보다 휠씬 감성적으로 글을 잘 쓰는 동기들이 많았다. 그들의 글에 비하면 뭔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는 꾸역꾸역 썼다. 내가 글쓰기에 익숙하다는 것은 대학교 3학년 언론사를 준비하는 모임을 하면서 였다. 모임 회원들은 한가지 주제를 던져놓고 얼마 동안에 글을 쓰는 연습을 했다. 그럴 때 나는 어지간한 신문 사설 정도의 글은 다른 친구들이 한시간이 걸리는 것을 20분을 넘겨본 적이 없다.


그런 어디에서 그런 능력이 왔을까. 바로 책을 읽어둔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떻든 어디에든 도입할 수 있는 이야기나 개념들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내 글이 가장 잘 쓴 글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맞춤법이 틀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중요한 글은 한글 맞춤법 검색 사이트 등을 통해서 검토한 후 송고한다. 이 역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곳에나 그런 영역이 뛰어난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까지 고민하면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극히 줄어들 것이다. 난 좀 틀리더라도 과감히 쓰는 것을 선택한다.

다만 내 첫직장인 미디어오늘은 글보다는 취재가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언론사를 비판할 만큼 강단이 있지 않아서 취재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하이텔에 서평을 쓰거나 다른 잡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1998년에 한분의 요청으로 우리나라 가장 초반기 문학웹진이라는 공간인 '문예평론'의 편집장을 겸업하면서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작가 한강이나 김인숙, 시인 나희덕, 장철문 등도 인터뷰할 수 있었다. 친구 철민이와 축제에 관한 취재도 댕기면서 흥미로웠다.


그런데 만 서른인 1999년 중국에 가서는 오히려 기사 글을 쓸 일이 많아졌다. 오마이뉴스의 요청으로 중국 통신원을 한 것이다. 내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만난 중국 이야기를 썼고, 몇 년 후에는 톱기사 100건을 쓰면 부여되는 ‘명예의 전당 으뜸상’에도 올랐다. 나중에 한국에서 만난 선배들도 기자 초년병 시절에 쓰던 글과 중국에 관해 쓴 글의 무게가 달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어떤 선배는 내 글을 쉽게 봐서 미안하다고 해서 송구하기도 했다.


이런 쓰기 본능은 정신건강에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떻든 다양한 생각을 글로 옮기고 나면 대부분 정리가 된다. 생각의 답변은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서 내보낸다. 그러면 내 감정을 세상과 소통하는 기분이 든다.

정신 의학에서는 인생에서 겪은 스테레스적 경험이나 감정적 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신체건강과 정서적 안정에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굳이 형식을 따지지 않고, 글로 본인의 마음과 진심을 쏟아내는 표현적 글쓰기는 좋은 치료법이라고도 한다. 심지어는 글쓰기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나 천식, 류마티스 관절염은 물론이고 암에도 좋다는 의견이 있는데, 이들은 임상과정에서도 이런 효과가 증명됐다고 한다.

그러면 쓰기 본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선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필기구를 이용해 가장 쓰기 좋은 것은 기자수첩 같은 작은 노트다. 한손에 들 수 있는 작고 긴 수첩인데, 기자들이 주로 이용해 기자수첩이라고 한다. 문구점에 가면 기자수첩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모양이 많은데 한권 장만해서 쓰면 좋다. 총리를 지낸 이낙연 의원은 기자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첩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엉치뼈가 불균형을 이룰 만큼 쓰는 걸 즐기는 분이다.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적어서 꼭 복기해서 놓치지 않는다.

요즘 같이 이동전화기가 발달한 시대에는 글쓰기 앱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시중에는 에버노트 등 다양한 글쓰기 어플리케이션이 존재하는데,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효과를 보는 것 같다. 다만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메모장’ 앱 정도만 활용한다. 여기에 메모한 내용은 나중에 내 카카오톡으로 보내서 글을 쓸 때 활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글쓰기 본능은 영역도 없는 편이다. 잠시 신문사 편집부장을 할 때는 기사와 더불어 소설도 연재하고, 연말 특집호에는 공상과학소설을 싣기도 했다. 기분이 내키면 시를 쓰기도 했다. 물론 시는 포기한 만큼 시다운 시가 아니었지만 나름 의미가 있었다. 기자 초년병 때 쓴 시 '어머니 머언길 올라 오신다'는 한겨레신문 독자투고란에 실리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드라마극본을 써서 응모를 했지만 두 번 떨어지고 나서 포기했다. 사실 기자로 일하기 전에 드라마작가가 되기 위한 방송 아카데미도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말려서 어쩔 수 없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방송아카데미 면접에서 나는 신봉승 작가를 능가하는 퓨전 사극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아마 잘 됐다면 ‘킹덤’은 김은희 작가 대신에 내가 쓰고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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