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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와 서평으로 해라

<글쓰기-2> 무엇을 쓸 것인가

by 조창완

어릴 적 글쓰기의 시작을 물으면 대부분은 일기로 기억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방학의 막판에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밀린 일기를 쓸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날씨였다. 일기의 내용이야 창작할 수 있는데, 날씨는 사실이라 정확히 쓰지 않으면 선생님에게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쉽게 날자별 날씨를 확인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등교해서 부지런한 친구의 일기장을 보고 베낄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용을 밖에서 열심히 놀았다고 썼는데, 큰 비가 오는 등 내용과 날씨가 맞지 않는 경우다. 참 곤혹스러운 기억이었다.


당시 일기를 써오라는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첫 번째는 성실하게 방식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공부랑 담을 쌓은 시골 아이들이 방학에 공부를 할 리 만무했다. 여름 방학에는 동네에 있는 둠벙(동네에 있는 생태연못)이나 500미터 떨어진 제법 큰 수로를 찾아 수영을 하거나 물고기를 잡았다. 마을에서 큰 수로로 가는 물길도 아이들의 놀이공간이었다. 이런 물길에는 붕어나 미꾸라지, 피라미가 주된 서식지였다. 아이들은 모기장을 꿰매어 만든 망으로 고기 길을 막고, 물풀을 흔들면서 물고기가 잡히기를 시도했다. 지금은 보기도 무서워하는 뱀들도 그때는 별로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당연히 뱀들은 뱀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일주일에 두세번 볼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다.


낮시간은 집 앞에 있는 작은 동산에서 공을 차거나 야구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소꼴을 먹이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자기 집 소를 데리고, 집앞 산과 들로 꼴을 띁기로 갔다. 집을 나설 때 소의 안창 부분에 홀쭉하게 들어간 부분이 빵빵해질 때까지 꼴을 띁겨야 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장소 시간에 따라 달랐다. 가능하면 빨리 도달하면 좋으련만 이집저집에서 띁긴 들에 소가 배 부를 만큼 풍족한 꼴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jpg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초등학교의 교정. 향나무가 아름다운 학교다

결국 적당히 배가 부풀어오면 오늘 길에 물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물고문 아닌 물고문이 횡횡했지만 소들은 아이를 잘 따라주었고, 때가 되면 송아지를 낳으면서 집안을 풍족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의 일상이 이러니 좋은 글은 많을 리 없었다. 그래도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 넘어가면서 혼자 광주 무등산 산장에서 식당을 하는 작은 집으로 갈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대인동에 있었던 광주터미널에 가서 18번 버스를 타면 무등산 산장에 도착했고, 몇일간 작은 집에 있으면서 아르바이트 같은 서빙을 했고, 끝나면 작은 용돈을 타고, 집으로 오는 것이 즐거웠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느 상황에서 좋은 글이 나오는가를 볼 수 있었다. 기억 나는 글 가운데는 아이가 독립기념관장을 하신 김삼웅 선생님의 덕소에 있는 집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아이 답게 선생의 글이나 2만여권에 달하는 집안의 장서 등에 좀 놀란 듯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일기장에 차분히 쓴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일기 다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독후감이다. 이는 일기보다 더 괴로운 일이다. 일단 상식적이라면 책을 읽은 후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책 읽기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이 만만치 않다. 사람에 따라 많은 시간도 필요하다. 문제는 독후감도 익숙한 글쓰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형식도 명확하지 않다.

내가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95년 PC통신 하이텔을 가입한 얼마 후다. 처음에는 토론광장인 플라자 등에서 주로 여론에 관한 잡글을 썼다. 그런데 메뉴 중에 문학 공간이 있었고, 그안에는 서평을 쓰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도 당시 내가 쓴 서평은 그대로 볼 수 있다. 내가 중국은 간 얼마 후에 전자책 <수레바퀴 아래에서 책읽기>란 제목으로 출간됐고, 내 블로그에도 그 내용을 옮겨놓았다. 95년에는 조금 천천히 올리다가 다음해 부터는 한달에 10여개 까지 서평을 올렸다. 초반기에는 소설이나 시집, 산문에 대한 서평이 중심이었고, 이후 다양한 분야로 늘어났다. (네이버 블로그의 서평 모음 https://blog.naver.com/chogaci/220287878653)

그런데 내 서평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책의 내용만 쓴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을 책과 연결한 것이다. 아래는 1998년 4월에 쓴 유미리 작가의 <가족시네마> 서평이다.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기저에 깔고 그 위에 하나하나 타일을 입히면서 미학을 창조해가는 존재일까. 글을 쓰고 싶었던 적이 있다. 아니 지금도 글을 쓰고 싶다. 대학 4학년 여름에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다. 혼자 였다.

일요일 아침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부산역 앞에서 서성이는 나에게 한 부랑인이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관등성명을 물었다. 무에 손해볼까 싶어 대답했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이기옹'이라고 했다. 그의 이름을 잊지 않는 것은 도올 김용옥의 책 제목에도 그와 같은 이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나의 대학선배라고 했다. 부랑인이라는 말과 선배라는 말의 이질감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압도하는 무엇이 있었다. 허기야 서울대를 나온 후에 역사에 힘이 들어하다가 골병들어 행려가된 '천상병'이라는 분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아내는 낙원상가에서 악기상을 한다고 했다. 천상병 시인의 아내와 유사하다.

둘은 부산역에서 나폴레옹 세병을 같이 마셨다. 주위 사람들은 대낮에 역전에서 신문지 깔고 술을 마시는 우리를 미친놈 취급했으련만 무에 그리 중요하랴. 서론을 닫고 본론에 들어가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런데 나의 삶이라는 게, 졸부집 애완견처럼 편하게만 자랐으니 쓸 내용이 있어야지요"하니, 그는 대뜸 "니 이야기를 써"하는 것이었다. 난 뜨끔했지만 그의 말을 접수했다. 그는 나에게 서울 연락처와 다음에 만날 때까지 듣고 오라며 거창한 필치로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적어주었다. 서울에 올라와서 그 번호로 전화를 했으나 연락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빌려준 만원 때문에 사기를 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불가에서 사고를 치듯이 하나의 게송을 얻었던 것이 틀림없다. 내 이야기를 쓴다는 것처럼 소중한 것이 있을까. 소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런면에서 내 것은 너무나 평이하지만 그속에서 맛을 찾는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미리는 인생의 형극을 모두 맛본 작가다. 할아버지를 따라 건너와 빠징코업을 하는 아버지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작가로써 타고난 위치를 가졌다. 한국과 일본을 번민하던 국적, 일찌감치 부모가 이혼해 식구들이 떨어져 살아야해 가정에 대한 정체성을갖기 어려웠고, 어린시절부터 일본인들에게 이지메를 당해 제도권 교육에서 어느정도 이탈해 도서관에서 책에 몰입하는 학생이었다고 하니 자신의 아이덴티티 찾기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그녀가 일본에서 문학상으로는 가장 권위있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 '가족시네마'는 문명히 개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또한 '성철'의 촬영을 끝낸 박철수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니 기대해볼 일이다.


책을 읽어간다. 뿔뿔히 흩어진 가족이 모인다. 계기는 시시껄렁한 에로배우이던 동생의 가족 이야기를 들은 감독이 그녀의 가정사를 다큐멘터리식의 영화로 꾸며보고 싶다고 해서 20년만에 모인 것이다. 그녀의 말들이 탁탁 나를 치고 지나간다. 단문중심이면서 강한 어깨를 가진 사람이 길거리에서 치고 기나가듯이 나를 치고 간다. 파칭코에 있는 못이나 조작해 이익을 챙기던 아버지는 컴퓨터로 조작되는 파칭코 사업에서 무능한 존재이고, 생계를 위해 카뱌레에 다니다가 손님과 눈이 맞아 아들과 도망친 어머니는 부동산업에 관심을 갖기만 그도 별다른 수가 아니다. 여동생은 에로배우가 되버렸고, 수재소리를 듣던 동생은 테니스나 치며 시간을 죽이는 무능한 인간이 되버렸다. 구성원들이 무능한 가족이야 상태를 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은연중에 다시 합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녀가 얻는 것은 어머니의 지적처럼 "혼자가 되는 것"뿐이다. 물론 나 역시 기획한 상품의 디자인을 해줄 나이든 남자에게 매료되지만 그 역시 내 엉덩이를 찍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유미리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미덕은 희곡을 써오면서 주변과 이야기를 묶어내는 글처리가 능숙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부족한 이야기 구조의 빈약함을 배경묘사의 능숙한 처리로 완성시킨다. 영화로 이야기하면 홍상수 같은 매력을 가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실린 '한여름'은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생각나게 했는데, 그 영화의 원작이 구효서의 '낯선 여름'이라는(원작과 시나리오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하는 증명을 한 작품) 점을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유명주간지의 계약제 필자인 남자와 내가 만나 오피스텔에서 동거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주말이면 집에 돌아갔다가 가방을 챙겨서 돌아온다. 그러기를 3년.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요구에 응해 누워있는 여자와 섹스도 하지 않고 두번을 그렇게 보내고는 만나지 않는다. 이제 멀리서 그녀를 지켜봄으로써 만족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 정체가 없다.

이 소설에서 표현되는 두가지의 성적인 이야기는 '로리타컴플렉스'와 '페티시즘'이다. 전자는 사회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나의 동생 스즈키가 보여주는 것이고 후자는 '내'가 좋아하게된 화가와 '한여름'에서 나중에 만난 남자를 비롯해 등장인물들이 어느정도는 갖고 있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을 망실한 존재들에게는 섹스 역시 온전한 구조라기 보다는 어떤 망실된 자아를 가지고 있는 행위라는 느낌이 강하다.

'가족시네마'는 내가 처음 읽은 유미리의 첫 소설이다. 몇가지 미덕이 있는 반면에 그녀가 살아온 삶의 과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읽는 이에게 힘 만큼이나 부담도 느끼게 하는 소설일 것 같다. 얼마전 신문을 통해 본 신간 '타일'의 기사에서 그녀가 가족이라는 소재를 벗어나 다른 기제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반작가들이 가지기 어려운 중층적인 갈등(국가, 가정, 개인) 들이 그녀의 글쓰기미덕과 만났을 때, 중요한 작가로

자신을 키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통을 삼키며 아름다운 眞珠를 만들어가는 소설미학은 항상 도피하고 싶은 소재이면서 어쩔 수 없이 빠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탐익하던 헤르만 헷세를 도스토옙스키를 통해 극복하지 않았던가. 考島”


고도(考島)는 내가 당시 쓰던 아호였다. 내 스스로가 시험받는 외로운 섬처럼 인식해서 쓴 호다. 내 서평은 이렇게 책 이야기 뿐만 아니라 시시콜콜한 일상을 포함하고 있어서, 읽는 사람에 약간 관음증을 채워주는 역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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