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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당신은 평생 같이 갈 친구가 몇이나 있는가

<생활-7> 친구사용설명서를 만들자

by 조창완

언젠가 아내가 물은 것 같다.

“당신은 지금 당장 진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다섯명이 있어.”

“응. 그럴 것 같은데”

“그러면 잘 산 거래”

그렇게 볼 친구 5명이 누굴까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고향 친구, 학교 친구, 사회 친구, 직장 친구, 모임 친구 등 참 많은 종류의 친구가 있는데, 그중 다섯명을 꼽으라면. 그리고 그들과 나는 어느 정도의 친구인가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국 문인 가운데 친구에 대한 시를 많이 남긴 이는 이백(李白 701~762)이다. 길지 않은 우정을 남은 시 친구 두보와도 시를 남겼다. 이중 ‘노군 동쪽 석문에서 두보를 보내며’(魯郡東石問送杜二甫)는 그의 마음이 잘 살아있다.

‌이별의 술자리, 벌써 몇 날 째인가.(醉別復幾日)

물가의 높은 전각 빠짐없이 다 돌았네.)(登臨偏池臺)

언제가 될까, 이 석문 길에서(‌何時石門路)

다시 우리가 술 단지 뚜껑을 열 날이.(‌重有金樽開)

가을 물결은 사수로 떨어지고(‌秋波落泗水)

바닷빛은 조래산을 밝히는구나.(‌海色明徂徠)

바람에 달리는 쑥(나그네)신세에 멀리서 만나니(‌飛蓬各自遠)

거나하게 술이나 마시자꾸나.(‌且盡手中杯)


745년 전쟁으로 인해 고향에서 너무 먼 산동성 노군에서 만난 이들은 이 세 번째 만남을 끝으로 헤어졌다. 이백은 두보 뿐만 아니라 원단구(元丹丘), 맹호연(孟浩然), 왕창령(王昌龄) 등 수많은 이들과 헤어지는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전쟁 시절을 겪으며 ‘고난과 불행이 찾아올 때 비로소 친구가 친구임을 안다’는 자신의 말에 걸맞게 행동했다.


나 역시 친구를 생각하면 우선은 가슴이 좀 아리다. 물론 내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똑똑하고 잘난 만큼 잘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가장 걱정스러운 친구들은 오십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저런 곤란에 겪고 있는 이들이다. 어떤 이들은 능력의 한계치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다. 나처럼 중국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도 있다. 노마드로 사는 관계로 나조차 곤궁한 상황인데, 친구가 곤란을 겪는다고 큰 돈내서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친구로서 별로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정당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친구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서서 그런 일들을 같이 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과정은 공정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걸리는 것이 친구와의 사이에서 내가 경쟁심을 갖고 있지 않는 건가 하는 것도 있다. 나도 사람인 만큼 경쟁심이 없을 수 없다. 또 내가 열등감을 갖는 친구들도 당연히 많다.

하지만 이런 친구관계에서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면, 그때부터는 위험한 관계가 있다. 나이 오십살이 넘으면 친구들 역시 자기 세계에서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고, 그 실력은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 나 역시 계속 책을 쓰다보니, 친구들의 커뮤니티에 알린다. 내가 알리는 것은 내가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다. 백면서생이 책 한권 썼으니, 사주면 나에게 10% 인세가 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물론 내가 낸 책은 우리 친구 세대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니, 별 눈치 보지 않고 올리기도 한다. 어떤 친구는 동창생 커뮤니티에 퀴즈를 내면서 내 책을 경품으로 내주기도 한다. 한없이 고맙지만 내가 그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때문에 친구들과 만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금기는 친구들 사이에 비교하는 것이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초중학교 동창들이 지금 살아가는 모습이 성적순이 아니듯, 아이들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또 잘 사는 친구 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베풀면서 살아가는 친구가 나에게는 가장 위대해 보이는 친구다.

나이를 들어서 만난 친구들은 어릴적 친구들보다 더 가까워지기는 힘들지만, 생활 공간이 가까이 있다면 휠씬 더 소중한 친구라는 점도 잊지 않으면 안된다. 나 역시 사회에 나와서 맺어진 친구들이 많다. 대부분은 나이가 같거나, 비슷해져서 친구가 된 이들이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맞는다면 한두살 어리거나, 많은 사람들도 친구 관계를 선호한다. 물론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상황대로 관계를 유지하는데, 아무래도 동갑들이 하는 만큼 친해지기는 힘들다.


사실 친구 관계는 어떤 일을 규정하기가 참 힘들다. 우리는 우정의 모범으로 관중과 포숙아나 백아와 종자기를 많이 든다. 포숙아는 상대편에 섰던 친구 관중을 데려와 자신보다 더 높은 자리에 천거한다. 결과적으로 제나라 환공이 패업을 이룰 수 있던 것도 관중 때문이다. 큰 정치를 보고, 자신을 낮춘 사례다. 이익을 버리고, 더 큰 일을 위해 친구의 재주를 잘 살린 좋은 사례다. 지음(知音)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는 상대의 재주와 감정을 알아주는 좋은 친구다. 백아는 거문고 연주로 이름난 백아가 연주하면 종자기는 곁에서 묵묵히 듣고 있다가, 백아의 마음 속을 설명해줄 만큼 좋은 친구였다. 결국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타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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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성 관중기념관이 있는 관중상(왼쪽)과 관포지교 전시관


이런 고사는 여전히 살아있다. 수많은 친구 관계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고사에서처럼 진짜 믿음으로 만들어진 친구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친구 관계를 활용하고, 그러다 보면 같이 부정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런 관계는 결국 서로를 불실하게 한다. 물론 그 사회에서 친구 관계가 사회의 질서를 나쁘게 하는 부정적인 측면까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가능하면 배제하고 사는 게 맞다. 2008년 초, 갑자기 귀국했을 때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적이 있다. 베이징 사무실은 베이징대로, 서울 사무실은 서울 사무실대로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처음으로 친구에게 손을 빌린 적이 있다. 다행히 친구는 그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때는 섭섭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시기에 더 많은 투자는 더 깊은 수렁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사업을 축소하고, 사무실은 협업이 가능한 분의 한 공간을 사용했다. 고마운 배려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친구 간에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물론 정없을 때는 최소한의 비용을 빌려주기도 한다. 대신에 그 돈은 받을 돈이 아니라, 어려운 친구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빌려준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신이 힘든데도 나중에 갚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고마웠던 적도 있다.


나에는 느슨한 친구 관계도 많다. 우선 초중고 동창들은 어떤 행사를 중심으로 만나는 만큼 적정한 선이 있는 친구들이다. 느슨하지만 깊은 관계의 친구들이고, 긴 시간 교류한 만큼 서로를 잘 안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몇 년전 40여명이 같이 제주도를 여행할 만큼 친한 관계다. 버스를 렌트해 진행한 그 여행에서 나는 관광가이드처럼 제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 기억이 있다.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지만 제주도의 역사를 더 깊게 봐야 제주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4·3사건 등의 사실은 미리 조금은 공부해 설명했다. 초등 동창과 겹치는 중학 모임은 주로 수도권에서 진행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번 50여명이 올 만큼 많이 모였다. 중학 모임은 각기 그룹이 있어선지 초등모임 만큼 활발하지 않지만 반가운 모임이다. 이런 모임에서 내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힘들어하는 친구들에 대한 배려다. 다행히 우리 동창 가운데는 그런 이들이 많지 않다. 이런 특성은 고등학교나 대학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느슨한 친구들은 사회에서 만난 친구다. 지금도 열손가락에 꼽을 만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 관계가 유지됐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실수를 하지 않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니 분명히 의미가 깊다. 또 각종 인연의 친구들과 달리 다양한 공감대가 있어서 더 깊은 관계를 가진 친구들도 있다. 앞 친구들은 내가 10을 가졌다면 5를 써도 상관없지만, 사회 친구들은 6이나 7을 쓰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휠씬 작게 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 순간순간에 그런 배려에 고맙다는 뜻을 전한다. 가만히 있으면 친구가 내가 느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전하려고 한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그 친구에게 도움이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면 최대한 생각해서 노력한다.


또 친구 중에는 별다른 공감이 필요없는 친구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이라 해도 조금도 소홀하면 친구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 친구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최대한 배려하고, 예의를 다해야 한다.

이런 관계보다 더 느슨한 친구들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상의 친구들이다. 나는 제한선이 있는 페이스북은 4950명 정도로 친구를 관리한다. 5000명이 넘으면 내가 친구로 추가할 수 없기 때문이고, 상대방도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친구 줄이는 법은 이미 오랜 노하우가 있다. 프로필 사진이 없는 사람이나, 자신의 공간을 거의 채우지 않는 사람, 자신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 등이다. 안타깝게 페이스북은 친구 줄이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듯 보이지만 이 여건에서 최대한 관리한다.


또 내가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예의도 고민한다. 어느 정도 주기적으로 의미있는 업데이트를 하려고 노력한다. 좋아요나 댓글이 있는 게시물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내 신변잡기 중에 자신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주는 게시물에 이런 반응을 한다. 반면에 정치적이나 신문 등 나랑 상관없는 포스팅을 링크할 때는 쌀쌀해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니 전혀 생소하지 않다.


또 내 이메일에는 5천명 정도의 이메일이 있다. 상당수는 페이스북과도 겹치는데, 내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 1년에 한두번 단체 메일을 보낸다. 이제는 사적인 일로는 이메일 조차 잘 보내지 않는 시기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답장으로 안부를 전해와 2일 정도는 답장으로 힐링하기도 한다.

사실 친구라는 관계는 많은 화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귀라는 게 오랜 경고이기도 하다. 공자는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無友不如己者)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논어) 사실 이 말은 친구 관계에서 좀 아쉬운 말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사귀지 말라면 상대적으로 어느 누구도 사귈 수 없게 된다. 물론 공자는 그 기준을 덕(德)으로 두었기 때문에 좀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공자는 친구를 분류하기도 했다.


공자는 도움을 이로운 벗과 해가 되는 벗을 각각 3가지씩 제시했다. 이로운 벗은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직우(直友), 나를 성실하게 이끄는 이는 양우(諒友), 아는 것이 많아 지식을 확장시켜 주는 다문우(多聞友)라 해서 사귀기를 권했다. 반면에 편한 것만 좋아하고 하기싫은 것을 피하는 편벽우(便辟友), 착한 척하면서 아첨하는 선유우(善柔友), 말만 번지르게 하는 편녕우(便佞友)는 피하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진정한 우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그는 필리아(philia순간적인 감정이 아닌 상당한 시간이 지속돼 나오는 친밀함)의 종류로 '서로 도움이 되는 친구', '취미나 관심사가 같아 즐거움을 주는 친구', '선을 추구하는 친구'를 말하는데, 공자의 친구관과도 비슷해 동서양의 친구에 대한 관점이 같은 것에 놀라게 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친구의 모델은 조선후기 간서치(看書癡)의 모임인 백탑파(白塔派)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은 탑골에 아래 모여서 시문과 자신이 얻은 선진 문물과 사상을 어떻게 보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이들이다. 서얼 출신들도 많았지만, 굳이 가리지 않고,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책을 나눠서 읽었다. 이 시대에 백탑파는 앞서 소개한 ‘감이당’ 같은 지식공동체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생활에 쫓기는 신세라 나는 흔쾌히 그런 결사에 들어갈 용기가 없다. 그래서 혼자 읽고, 죽어라 쓰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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