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5> 소통 능력이 인생을 좌우한다
과거에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대외 홍보나 선전을 맡는 직위를 대변인이나 공보관으로 불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말을 별로 쓰지 않는다. 많은 곳이 소통이라는 단어를 넣어서 사용한다. 청와대도 ‘국민소통수석’이란 직위를 두고 그 아래에 관련 부서를 배치한다.
그럼 소통이란 무엇일까. 무슨 이유로 모두가 소통이라는 단어를 넣는데, 공을 들일까. ‘소통’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동사로 ‘소통하다’나 ‘소통되다’도 있다. 국어사전의 의미로 보면 1번은 ‘교통 소통’에 쓰이는 의미가 중심이고, 2번이 ‘의사 소통’을 비롯해, 사람간의 주고받는 것의 원활한 흐름을 말할 것이다. 내가 향후 쓰는 소통은 2번의 의미에 가깝되, 1번도 포함된다. 중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이 단어가 더 익숙한 것 같다. 소통은 한자로 소통(疏通), 구통(沟通) 등으로 쓰인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보통 고우통(沟通[gōutōng])을 쓴다. 중국에서 소통(疏通 [shūtōng])은 좌변기의 배수구에 주로 쓰는 말이다. 중국의 포탈 바이두에서 고우통(沟通)이라는 말을 이렇게 설명한다.
“고우통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 사람과 단체 사이에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거나 회신받는 과정이다. 사상을 일치시키고, 감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沟通是人与人之间、人与群体之间思想与感情的传递和反馈的过程,以求思想达成一致和感情的通畅)
중국어 고우통이 지금 우리가 쓰는 소통의 가장 적당한 전달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서 쓰는 소통은 사상이나 감정만이 아니다. 바로 업무나 서비스도 이 영역에 포함된다. 내가 일하던 춘천시에서는 2000년부터 ‘돌봄’ 서비스를 특화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연로한 분들 뿐만 아니라 가난에 시달리는 분들, 장애인 등 사회 전반에서 어려움 사람들을 시청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같이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몰두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이런 일이 있는 지 잘 모른다. 결국 이런 상황을 두고 ‘소통의 실패다’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이것은 자진 신고하는 것이고, 우리 행정 등 정부 서비스가 제대로 된 소통 구조를 갖추어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는 일은 많지 않다. 그게 쉬운 일이면 청와대에 6개 비서관을 둘 만큼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소통의 기술은 정말 중요하다.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의사를 제대로 읽어서 반응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통 능력이 개인 생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필자는 2020년 7월 6일에 춘천시 시민소통담당관으로 임명장을 받았다. 내가 맡은 역할은 과거 대변인이나 공보관이 하던 일이다. 대변인은 시를 대표해 입장을 내보내고, 공보관은 언론사와의 관계를 책임지는 역할이다. 그런데 과거 두 역할을 권위주의적인 느낌도 있지만, 일반적인 전달의 느낌이 강하다. 상호교류(인터액티브)를 강조하는 시대가 되면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커졌다. 이제는 소통이 커뮤니케이션을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지금은 소통 업무가 꼭 한 부서만의 일을 특정하지 않는다. 각 부서는 자신들에게 맞는 홍보 거리를 찾고, 그것을 보도자료로 만들어야 한다. 이 자료를 소통관련 부서와 협의해서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 소통 부서가 전문적인 영역이 많은 각 부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 과거에 공보, 홍보, 대변인 같은 이름을 쓰다가 갑자기 시민소통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된 것일까. 이 내용을 알려면 문재인정부 초기 뉴미디어비서관을 지낸 정혜승 기자의 책 <홍보가 아니라 소통입니다>를 보면 쉽게 이해한다. 우선 홍보나 공보라는 말은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뉴스를 알리는 측면을 강조한 단어다. 지난 정부에는 문화공보부, 국정홍보처 등의 기관명을 썼다.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군부 정부시절에 지닌 권위적인 색채도 있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린다는 측면이 강하다.
이 부서는 기자 출신의 담당자들이 좋은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었다. 대변인들도 기자의 화법으로 정부 정책을 조곤조곤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런데 문민정부 시대가 시작되면서 기존의 권위적인 방법으로는 국민들과 더 발전적인 소통관계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더욱이 인터넷의 발달로 기존 레거시 미디어(신문, 방송)의 역할이 줄어들고, SNS나 유튜브 같은 OTT가 엄습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다 인터엑티브(상호소통)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실시간으로 수용자들의 의견을 받고, 반영하는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통이라는 단어의 인기가 올라갔다. ‘소통’은 영어로 communication, circulation 으로 바뀔 수 있고, 여기에는 ‘쌍방향’이라는 Interactive를 조금 품고 있기도 하다. 즉 시민소통담당관이란 시민과 시가 쌍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런 업무를 일반 공무원 출신이 맡았을 때와 전문직이 맡았을 때 특징이 어떨까. 우선 일반 공무원이 맡았을 때 특징은 별 무리 없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전문직이 맡아도 실무선에서는 언론인 출신들이 몇 명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당연히 타 실국과도 오랫동안 같이 일해 온 사이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관련 조직을 찾아와 연결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나 같은 경우 춘천 출신도 아니고, 더더욱 공무원 출신이 아니라 거리감을 있게 느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다양한 모임을 통해서 공무원들과의 벽을 줄어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 각 국이 실과장과 연속해서 미팅을 하면서 시민소통담당관실을 잘 활용하는 법을 알리기도 했다.
대신에 공무원 출신이 맡았을 때 단점은 무엇일까. 내가 맡은 업무만 해도 신문, 방송에 대한 이해를 물론이고 광고, 뉴미디어, 출판 등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하는데, 일반 공무원 출신들은 이런 경험을 할 수 없다. 물론 전문직 출신이라도 해도 이 모든 것을 해본 경험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신문기자 출신, 방송 출신 등이 대부분인데, 신문기자에게 뉴미디어나 출판은 상당히 먼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이라는 생리는 크게 다르지 않아, 전문직들은 일 전체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다. 또 시민소통담당관실이 기자실과 브리핑룸을 관리하는데, 상대적으로 일반 공무원보다는 이런 일에 익숙하기 때문에 유리하다.
반면에 언론인 출신들은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기 때문에 행정과정이나 법률 등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일반 공무원들보다 익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들이 조직을 통솔하고, 관리하는데 약점으로 작용할 소지는 적지 않다. 또 언론인 출신이라고 해도 새롭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기존이 자신이 가진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소통은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유행어 가운데 하나다. 현직에 있을 때 매일 참석하는 시장님 주제 간부회의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소통이라는 단어가 나와 나를 놀라게 한다. 나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황에서 이 단어가 나오면 자라 본 사람이 솥뚜겅 보듯이 필연적으로 뜨끔하다. 얼마전에는 우리 시 젊은 공무원들이 주도하는 ‘공무원TV’라는 팟캐스트를 보는데도 이 단어가 몇 번 나와서 놀랬다. 아 이제 젊은 층들도 이 단어를 쓰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사회 만은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가 됐다. 그럼 소통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쓰였을까. 확신할 수 없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았았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소통은 ‘교통 소통’ 등 사회 일부분에서 쓰였다. 비슷하게 ‘의사 소통’이라는 말로도 쓰였다. ‘원활한 소통’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면서 차츰 ‘소통’이라는 단어만 독립했고, 몇 년전부터는 유행처럼 이 단어가 퍼졌다.
그럼 왜 소통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이 자주 쓰게 됐을까. 사회에서 한 단어가 만들어지고 유행하는 것은 사회와 깊은 관계가 있다. 우선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소통이 그 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은 단어를 쓰지 않는다. 소통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많아졌다는 것은 소통이라는 의미가 사회에 쓰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통이 그 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빨리 세상 사람들이 익숙하게 쓰는 개념은 더 빨리 정착한다. 그런데 지금 거리에 나가 소통이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보면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쓰임은 많아졌지만 뜻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소통의 역사
그럼 소통의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인간이 생겨나면서부터 소통은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언어나 글이 있는 지금도 소통이 어려운데 말이나 글이 없는 상태에서 소통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얄타미라 벽화. 동물 그림이 많다. 말이 없던 원시시대 지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대한 맘모스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자. 또 저기 진짜 맛있는 과일이 달려있다라는 의미를 말과 글이 전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초기 인류들은 동굴에 벽화를 그렸을 것이다. 그림이 있다면 최소한 그것을 지적함으로써 의사 소통을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 최고의 벽화로 추정되는 얄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에는 들소, 사슴, 말 등이 그려져 있다.
밖에서 사냥할 동물을 발견한 원시인이 동굴에 와서 가장 빨리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그림으로 그려진 동물을 지적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사람들은 맞는 사냥 도구를 챙겨서 사냥을 떠났을 것이다. 물론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듯이 이런 동물을 잡기 위한 기원이나 숭앙하는 토템으로 쓰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가 왔다. 동양에서는 제자백가가 수많은 철학을 내세웠다. 서양에서도 철학이 나왔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이나 그리스 신전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모두 젊은 층과 나이든 층 간에 소통의 어려움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 고전에서 소통은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하지만 소통에는 적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우선 동양의 고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중국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국가들도 모두 철저한 계급의 사회였다. 중국 고대 봉건제 사회는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士), 서민(庶民), 노예 등으로 이어지는 철저한 계급제가 존재했다. 그런데 이 계급간에는 철저한 위계질서가 있어서 소통을 장려하기 보다는 소통을 막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만 전장에 나가서 아래 계급을 명령하고, 다른 나라의 백성들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위 계급은 아래 계급을 이용해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게 중요했다.
그런 시간을 지나서 ‘축의 시대’가 왔다. 독일 철학가 칼 야스퍼스가 고안한 표현으로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를 일컫는 시간이다. 이 시기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노자, 묵자 등 제자백가가 탄생했고, 서구에서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탄생했다. 이 시기 이후에야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데, 금기가 되는 말들이 나왔다.
공자 역시 신분제 사회에 충실한 인물이었지만 논어(论语)에 나오는 ‘내가 하기 싫으면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己所不欲,勿施于人)라는 말이 보여주듯 초보적인 소통의 의미가 생겼다. 물론 노자 등 도가는 철저하게 무위를 통해 인간들이 평화로 가야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도가가 인간 간의 소통에 더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소통이라는 개념은 크게 발전할 기회가 없었다. 근대 민주주의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일방적으로 위에서 내린 명령을 수행하면 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래서 따지고 들면 더 피곤했기 때문에 소통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민주주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부부분의 국가 시스템이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말 그대로 백성의 뜻이 국가를 움직이는 시작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근대에 들어서 신문이나 잡지, 방송, PC통신, 인터넷, SNS, OTT 등 소통 통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통은 모두의 핵심과제가 됐다. 소통을 잘하는 만큼 점수가 부여됐다. 실제로 좋은 소통은 좋은 행정으로도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의외로 소통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없다. 그렇지만 공보실이나 대변인실이 ‘소통실’, ‘소통담담관실’로 바뀌는 유행에서 말해주듯이 ‘소통’은 핵심키워드가 됐고, 이후에도 이 흐름은 변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