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3> 가정에서 키우는 치유 능력이 행복의 척도다
치유(治癒)는 좋은 말이 아니다. 일단 병이 난 다음에 낫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양생(養生)을 중시했다. 양생은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 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기를 위해하는 활동이다. 양생하면 산속에 숨어서 도를 닦는 신선들을 생각한다. 중국에 있으면서 여행을 많이 한 관계로 신선들이 살만한 곳도 많이 가봤다. 무당 무술이 태어난 후베이성 우당산(武当山)은 내가 보기에도 중국에서 신선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특히 우당산에서 창지앙(長江 양쯔강)으로 향하는 곳에 있는 선농지아(神农架)는 내가 만난 중국 땅 중에서 땅의 기운이 가장 좋은 곳으로 확신한다. 한국 땅에 버금갈 정도로 좋은 수질을 갖고 있어서 어느 곳에서나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 그렇게 좋은 기운을 가진 곳이니 당연히 신선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전역을 돌아본 나는 한국 땅 어디도, 중국에서 신선들이 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 기운이 흐르는 치유의 공간이라는 확신이 있다.
한국 어느 땅도 사계절 동안 청량한 기운이 흐르지 않은 곳이 없다. 2010년 공직을 시작하고 처음 일한 곳이 새만금이었다. 특히 방조제의 남쪽 변산반도는 내가 생각할 때, 진시황이 보낸 서복이라는 도사가 반할 만한 곳이었다. 실제로 변산 주변과 밖에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불릴 수 있는 지명들이 모두 있다. 변산은 예부터 봉래산으로 불렸고, 정읍 두승산은 영주산으로 불렸고, 고창과 장성에는 방장산이라는 지명이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리산, 한라산, 금강산도 좋은 기운이 흐르는 좋은 기운의 산이다.
세종에 근무할 때는 인천으로 오는 길에 다양한 길들을 선택해서 다녔다. 마곡사를 경유하는 길, 유구IC에서 아산으로 가는 길은 물론이고, 당진영덕고속도를 타고 당진 방향으로 가는 길도 청량한 기운이 흐르는 곳이다. 특히 비가 눈이 오면 그 운치는 말할 나위없이 좋았다. 얼마전까지 근무한 춘천도 그런 곳이 있다. 춘천 자체가 이미 최고의 힐링 장소라고 생각하는데, 춘천시는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치유의 숲’을 추진한다. 2시간 가량 청량한 숲을 걸을 수도 있고, 명상에 빠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 고향집에서 비가 오는 날에 앞 들판을 보고 있으면 천하의 근심이 사라진다. 동남 방향을 제외하면 모든 방향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최고의 장소라 생각한다. 인생에서 이런 장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 사는 이들은 좋은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 생활에 바쁜 이들이 신선이 살만한 곳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너무 먼 이야기다. 한국에서 신선으로 살기는 너무 힘들다. 그 반작용으로 자연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을 그린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예능이 인기를 끈다.
한국에서 생활인은 힘들다. 당장 가정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상처를 받아야 한다. 현대인들 가운데 가정이 안온하고, 쉴 수 있는 평안한 장소로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미혼자들이나 아이가 낳기 전에 집은 비교적 쉴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수험 문제, 가사 일들이 확대되면서 상당히 복잡한 공간이 된다.
3식구가 사는 필자의 집은 사실상 3분되어 있다. 아내는 안방을 나는 서재를, 아이는 자기의 방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그러다가 식사시간이나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에 안방에 모여서 의견을 나눈다. 물론 가족끼리 식사 시간이나 근처 공원을 산책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가장 힐링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이동전화이나 게임에 빼앗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간의 대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결국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 해도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진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럼 왜 가족 간의 대화는 중요할까. 우선 가장 친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이 가족이라는 것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선생님이나 친구들 간에 생기는 수많은 갈등을 누구랑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왕따나 성적에 대한 고민을 가장 먼저 나눌 수 있을까.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가장 편히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남편이나 아내외에 누가 가능할까를 생각하면 답은 쉽다. 그런데 가족 사이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집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가족 간에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유치원의 문제를 부모에게 쉽사리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신뢰에 대한 믿음이 없어 생기는 ‘분리불안’ 등 수많은 요소가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부모와 대화를 꺼리는 것은 부모가 지나치게 성적에 집착하는 등, 아이가 자신의 능력 문제로 부모와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다. 그럼 아이는 게임이나 이동전화에 의존하면서 가족과의 소통은 끊고, 집안의 식탁에서 대화는 사라지게 된다. 미래 시대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적보다는 사람들과의 소통 능력과 이해심, 인격이다. 이런 기질은 공부해서 길러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한다.
둘째는 가족간의 원만한 대화를 통해 얻는 정서적 안정이 있어야만 정신장애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에서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신증상은 유전, 기질, 뇌의 발달 등의 문제로 인한 생물학적 요인과 성적·공격적 본능을 가진 아이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 자라 어머니에게 분리될 때 문제가 생기는 정신적 요소가 원인이다. 여기에 부모와 형제관계, 가정 교육, 친구생활, 학교생활 등에서 오는 사회환경적 원인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첫 번째 문제는 원인을 발견할 수 있지만, 정신적 요소와 사회환경적 요소는 가족안에서 문제를 찾거나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가족이 사회관계의 첫발이기 때문에 잘 형성되야만 나중에 아이가 사회에서 원만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를 잘하는 부부나 가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친밀한 느낌이 들어 타인들과도 친밀해지며, 집단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게 된다. 이게 실패하면 오해, 불신, 무시, 소외, 관계단절 등이 찾아오고 위기가 찾아온다. 사회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수치가 ‘자존감’(自我尊重感 self-esteem)이다.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한 이 말은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태도’다. '경쟁 속에서의 긍정'을 뜻하는 자존심과 달리,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대한 긍정'을을 의미한다. 자존감은 나중에 위기를 만났을 때 다시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 번째는 가족 간의 대화가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사회생활에 있어 의사소통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는 직무능력에서도 의사소통능력을 중요한 한 분야로 포함시킨다. 물론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서 ‘의사소통능력’을 한 부분으로 넣어 문서이해, 문서작성, 경청, 의사표현능력을 세밀하게 따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실질적인 이유를 떠나서 사회 생활의 대부분이 의사소통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사회에서 친구관계, 직장에서 상하관계 등도 의사소통을 통해 진행된다. 물론 필자의 형제자매처럼 7남매가 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누나나 여동생을 통해서는 여성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배울 수도 있다. 물론 내 아이처럼 한자녀 가족이라면 이런 가족 관계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가 사촌들과 더 밀접한 인간 관계를 맺게 하려고도 많은 공을 들인다. 친구나 외가의 사촌 형제도 이제는 중요한 가족 관계 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원만한 가족이 회복탄력성으로
가족 간의 원만한 관계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고, 이것이 나중에는 회복탄력성이 된다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역경과 시련과 실패에 대한 인식을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뛰어 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고 정의된다.
회복탄력성도 최근에는 수치적으로 정의된다. 회복탄력성 지수는 스스로의 감정과 충동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자기조절력, 주변사람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대인관계력,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습관인 긍정성이라는 3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는 각각 3가지 하위요소를 지녀 모두 9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아래 내용이 그 요소다.
1.자기조절력 = 감정조절력 + 충동통제력 + 원인분석력
2.대인관계력 = 소통능력+ 공감능력 + 자아확장력
3.긍정성 = 자아낙관성 + 생활만족도 + 감사
위에 제시한 것들을 보기만 해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특히 세 번째를 꼼꼼히 살펴보자. 모두 심리적인 안정이 있을 때만 가능한 요소들이다. 가정에서의 안정이 한 사람이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