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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떠났던 길의 양 만큼 지혜도 쌓인다

<생활-4> 여행을 남기는 기술을 익히자

by 조창완

세상에는 두종류의 사람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그렇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좀 심하다. 어느 곳에 있든 한달 정도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신다. 어떻게든 떠날 명목을 만들었다.

1999년 중국에 건너갔는데, 마음대로 여행할 돈이 없었다. 안타깝게 우리나라는 여행 기고로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 여행잡지가 많지 않은데다 기고료도 형편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부가가치가 높은 여행 지면은 아마도 항공사들의 기내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칭다오나 청두를 취향할 때, 취향지 기사를 내가 썼다. 사진은 전문 사진 작가 것을 썼는데, 지면 원고료는 30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그 정도로 먹고 살 수는 없다.


결국 여행으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원소스멀티유즈(OSMU)를 당연히 해야 한다. 내가 중국에 지낼 때 여행 비용을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방송은 여행을 콘텐츠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2002년부터 나는 KBS ‘세계는 지금’ 영상통신원으로 일했다. 이 프로그램은 세계에 있는 통신원들이 아이템을 내고, 채택된 아이템을 촬영해 한국으로 보내면 방송사에서 편집해 5분 정도의 방송으로 송출하고, 통신원은 편당 100만원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가능하면 여행과 연결된 아이템을 연결했다. 기억나는 것은 ‘선농지아’, ‘소림사와 무당산’, ‘핑야오 고성’, ‘무너지는 만리장성’, ‘모계사회 모수오족’ 같이 여행을 동반하는 아이템을 많이 기획했고, 난 촬영을 핑계로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일정의 수익도 벌었다. 아마 촬영을 위한 여행 원가는 30만원 정도면 충분했다.


용우가 태어나는 2002년 여름에는 출판사 선배의 요청으로 35일 동안 중국 철학기행을 진행했다. 나는 현장 진행 코디네이션비용을 받고, 대신에 방송물은 내가 찍는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때 찍은 영상은 나중에 KBS <세상은 넓다>를 통해 6편으로 방송했다. 물론 나는 당시 사진 작업은 하지 않았다. 2003년부터는 방송사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한국 방송사가 중국 관련 방송물을 찍을 때 현지에서 섭외부터 진행 등 전반을 하는 것이다. 이미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이들이 있어, 나와 우리 팀은 한국 중국 방송물의 1/3 정도는 현지 진행했다. 코디네이터는 하루 일당 150~200불로 낮은 편은 아니었다. 나는 유학생 가운데 적당한 능력을 가진 이들을 선발해 같이 팀을 이뤘다.


하고자하는 말은 나는 여행을 위해 다양한 기획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국에 와서 공직자로 일하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맡은 분야가 중국 투자유치나 교류였기 때문에 중국 출장기회가 그나마 많았다는 것이다. 한두달에 한번씩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내 역마살을 달래는 좋은 기회였다.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는 필요한 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이끄는 힘 역마살

그런데 나는 왜 미친듯히 여행을 하려 했을까. 말 그대로 역마살이 있었을 것이다. 1948년작 김동리의 단편소설에 <역마 驛馬>가 있다. 하동, 구례, 쌍계사로 갈리는 길목인 화개장터에 자리잡은 옥화네 주막에 늙은 체장수와 열대여섯살 먹은 그의 딸 계연이 찾아온다. 다음날 체장수는 딸을 주막에 맡겨놓고 장사를 떠난다. 역마살이 끼였다고 10살 때부터 절에 나가 사는 옥화의 아들 성기가 절에서 내려와 집에 머문다. 옥화는 성기를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 계연으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한다. 어느 날 성기와 계연은 칠불암으로 가게 된다. 둘은 산딸기를 따먹고 나물을 캐고 하면서 급속히 가까워진다. 그 뒤로 두사람의 정은 더욱 깊어간다. 어느 날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땋아주다가 왼쪽 귓바퀴의 조그만 사마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악양 명도에게 다녀온 뒤로 성기와 계연의 관계를 살피기 시작한다. 체장수가 찾아와 다시 계연은 아버지를 따라 여수로 떠나고, 성기는 갑작스런 이별에 충격을 받아 자리에 눕게 된다. 어느 봄날 옥화는 성기에게 자기의 지난 날을 이야기해 준다. 체장수는 서른 여섯해 전 남사당을 꾸며 화개장터에 와 하룻밤을 놀고 갔던 자기의 아버지가 틀림없으며 자신의 왼쪽 귓바퀴의 검정 사마귀를 보여주면서 계연은 자기의 여동생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느 이른 여름날, 화개장터 삼거리에는 나무 엿판을 맨 성기가 옥화와 작별하고 육자배기 가락을 부르면서 체장수와 그의 딸이 떠난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으로 길을 떠난다.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도 돌아오는 사람들의 슬픈 인연이 <역마> 속 이야기다. 아마도 나는 길들에서 이야기를 찾아서 길을 떠난 것이다. 나랑 동갑인 프랑스 작가 알랭드 보통은 <슬품이 주는 기쁨>에서 “비행기에서 구름을 보면 고요가 찾아든다. 저 밑에는 적과 동료가 있고, 우리의 공포나 비애가 얽힌 곳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지금은 아주 작다. 땅 위의 긁힌 자국들에 불과하다.”고 묘사한다. 여행은 일상에서 떠날 수 있는 가장 큰 이벤트이기 때문에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여행의 이유>를 소설가 김영하도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라며 여행의 의미를 낯선 곳에 도착해 느끼는 감각으로 말한다.

사실 이런 작가들에 비하면 나의 여행 기록은 지극히 딱딱하다. 오마이뉴스에 550여건의 기사를 썼는데, 이 중 여행기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내용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중심이고, 내 감정이 들어간 글들은 극히 적다. 이런 부분은 내가 그다지 현명하지 않은 여행자라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사실 여행은 한사람이 살아가는데 뼈까지는 아니어도 살이 되는 소중한 소비다. 그것도 아주 비싼 소비다. 우선 시간을 써야 하고, 돈을 써야하고, 몸을 써야 하고, 길에서는 수많은 감정을 써야 한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그래서 ‘집 떠나면 고생이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하지만 금방 역마살이 동해져서 떠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 가족 안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과 안 좋아하는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은 큰 고통이다. 다행히 우리 집은 다 여행을 좋아한다. 용우가 한두살적에 대학생인 아내의 조카가 중국에 있는 우리 집에 놀러왔다. 나는 아내에게 여행을 권유했고, 둘은 구이린(계림)쪽을 여행했다. 나는 아이들 돌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가족여행도 많이 다녔다. 아이가 100일 무렵에는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 항저우, 쑤저우를 여행했다. 캐리어에 아이를 매고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 부부를 신기해 했지만, 모두가 용우의 밝은 웃음을 보고 사랑해줬다. 아이가 한돌 즈음에는 지우자이고우(구채구) 여행을 떠났다. 이백의 고향인 지앙요(江油)에서 지우자이고우는 미니버스로 10시간 가량 가는 험한 여정임에도 아이는 엄마, 아빠의 무릅위에서 잘도 버텼다. 물론 지우자이고우에 거의 도착해 토했지만, 대단한 여행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한달때는 기억 못하지만 그후에 3살적에 갔던 네이멍구 초원 여행은 지금도 기억한다.

2008년 귀국해서도 우리 가족에게 여행은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였다.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행을 했다. 다만 한국에서의 여행은 유적지 중심으로 다녔다. 나는 충분히 자료를 준비해 여행지를 선택했고, 그곳이 가진 문화나 유적을 아내와 아이에게 설명했다. 아마도 아이가 사학이나 고고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그 기억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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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 여행 기록. 네이멍구 목란위장갔을 때(왼쪽 위)와 청더 포탈라궁(오른쪽 위), 한 돌때 지우자이고우(왼쪽 아래)와 타이완(오른쪽 아래)


-여행 기록은 블로그에 축적하라

여행작가 케이스 벨로우(Keith Bellows)는 “여행은 우리가 누구냐에 관한 것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놀라게 하며, 감동을 주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고미숙 작가가 “다녀온 후 변화가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여행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가장 소중한 이벤트다.

그리고 여행의 가치는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더 내재화된다. 나의 경우 블로그에는 여행기를 사진으로만 올리는 게 일상적이다. 반면에 아이에게는 글과 사진으로 꼭 올리라고 요청한다. 아이의 블로그는 ‘한국 여행’, ‘세계여행’으로 분류해서 올리고 있다. 물론 세계여행은 중국이 중심이다. 중국 외에는 일본, 대만, 싱가폴, 홍콩 등 밖에 없지만, 아이는 앞으로 스스로 길들을 선택해 다니길 바랄 뿐이다.

한 사람을 보려면 그 사람이 읽은 책을 보라는 말이 있다. 또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고 했던 이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나는 한 사람을 알려면 그가 떠난 여행을 읽으라고도 하고 싶다. 길을 통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삼국사기’ 백 번 보는 것보다, ‘광개토왕비’를 한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한 것은 현장이 주는 압도적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하고 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사실 중국 영토는 너무 넓다. 만주벌판을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땅이다. 우리 조상들은 경술국치 후 그곳으로 이주해 일제와 싸웠다. 잔인한 일본들은 수없이 소개작전을 했지만, 그곳에서 살아갔고, 수많은 전투를 했다. 나는 그 현장의 상당수를 방문했다. 그들이 느꼈을 혹독한 추위와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애국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 때문에 함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하지만 그런 감동은 영원하지 않는다. 그걸 막는 것이 기록을 통해 축적해두는 것이다. 개인의 단위에서 아이 교육의 차원에서 이런 여행을 기획하고, 전달하고, 기록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깊다. 또 그런 기록은 한 사람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사실 한권의 책이 순식간에 써지지 않듯이 한사람의 삶도 한번에 정리하기 어렵다. 그럴 때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면 가져와서 정리하기도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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