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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지식은 쓸모를 찾을 때 가치가 있다

<생활-1> 독서, 경험을 되새김질해 자기 자원화

by 조창완

전에도 인용했지만 나는 고전평론가 고미숙 작가에게 들은 “읽고 난 후에 삶에 변화가 없는 독서는 진정한 독서가 아니고, 다녀온 후에 변화가 없는 여행은 진짜 여행이 아니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공감된다.

우리가 판단을 통해 세상을 읽는 것이나, 책을 읽는 행위도 어딘가에 쓰기 위함이다. 15년전쯤 고미숙 작가와 같이한 여행을 하면서 나는 내가 다양하게 얻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책이 내 인생에 준 영향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대학시절에는 책을 열심히 읽는데 치중했다. 물론 대학 2한년 때 사회과학 동아리에서 학술부장을 맡으면서 세미나(흔히 댓거리)를 하면서 책을 더 깊게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학년 봄에 나는 학술부장을 맡은 후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한 독서 리스트를 만들었다. 당시 대학 운동권이 읽는 책의 대부분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라는 정파와 연결된 책이었다. 민족해방 계열은 북한의 주체사상과 관련된 것까지 받아들였고, 민중민주쪽은 노동운동에 관한 책을 찾았다. 내가 학술부장을 하던 1993년은 전대협이 해산되고, 한총련이 부상하던 시기였다. 나는 후배들에게 어디에도 치중되지 않은 지식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자본주의 경제학은 물론이고 문학, 예술까지 포괄적인 리스트로 100여권 정도를 선정했다. 매주 한권씩으로 독서토론을 했고, 방학때도 격주 단위로 만나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식을 나누면 서로 성장한다(敎學相長)는 말처럼 우리는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배우면서 인문분야의 지식을 쌓는 계기가 됐다. 물론 후배들의 술을 사줄 능력이 안되는 나는 세미나만 마치면 자리를 떴고, 술을 나누면서 사회를 가르친 이들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좋은 배움의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에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었다지만 그냥 지나가는 듯한 지식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책들이 나에게 더 깊게 다가온 것은 대학 4학년 봄부터 피시통신에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하이텔이 사라질 때 다운받아 내 블로그에 올려놓은 서평을 보면 일주일에 2~3편은 꾸준히 올렸다.


내가 처음 쓴 서평은 1996년 6월 4일에 쓴 무라카미 류의 <69>였다. 그런데 나는 서평을 책 내용만 쓴 것이 아니라 책과 내 생활을 연결해서 썼다. 첫 문장은 이랬다.

“'짐 모리슨'이 무대에서 탈각하려하던 일탈적인 행위들. '우드스톡'에서 진흙 속을 뒹굴던 욕구들, '아폴로13호'가 깨어버린 달나라의 신화들이 산산히 부서져 눈처럼 내리던 1969년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해다. 전남 영광의 작은 농촌에서. 그래서 '69'라는 숫자는 친숙하다. 거기에 그 '69'의 이면에 넘치고 있는 '자유'라는 내음은 나를 흥분시킨다. '69'의 작가 무라카미 류는 일본의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물론 당시는 그가 아이를 배태할 나이는 아니므로 그와 나는 1세대라는 격차를 두기는 뭐하지만 어렴풋이 나는 한세대를 넘어에 느끼는 동질감을 이 소설을 통해 얻게 됐다. 물론 그와 나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큰 지형적 차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곰곰이 유추해 보건데 그가 느끼던 '사세보'에서의 추억은 내가 지금 분출하고자하는 욕구의 다름 아님을 느끼곤 한다.”

결국 내 서평에는 내 생활이 많이 들어있었다. 이런 독법은 내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결국 서평을 쓰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삶을 한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하이텔서평쓰던공간.jpg 하이텔에 서평을 썼을 때 화면 캡처


여행 역시 나는 나름대로 자산으로 활용한 측면이 있다. 우리 가족은 2008년에 중국에서 귀국했다. 아이가 7살때였다. 힘든 2년여를 보내고, 우리 가족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찾아왔다. 2010년 11월에는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에서 공직자로 취직했기 때문이다. 다음해에는 같이 일하던 선배의 차를 사서, 운전도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많이 했다. 여행을 갈 때, 그냥 놀러가는 여행 보다는 답사를 많이 했다. 전국 각지를 돌면서 역사 유적을 많이 찾았다. 자연스럽게 아이는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지금은 고고학을 전공하고자하는 꿈을 키우게 됐다.


때로는 아이의 초등 동창 가운데 친한 몇집이 같이 여행을 갔다. 그러면 나는 일정한 계획을 세워서 가이드북을 만들고, 현지에서는 여행을 안내했다. 그런데 그 길에 역사 뿐만 아니라 문학 등도 같이 인식하게 했다. 가령 충남 보령을 찾았을 때는 아이들이 무량사에서 매월당 김시습을 알게 하고, 소설가 이문구나 시인 임영조를 느껴보게 하기도 했다. 물론 토정 이지함 등도 답사 자료에 넣었다. 나중에는 이 가족들과 함께 상해와 항저우, 샤오싱 등을 방문하는 여행도 했는데, 물론 임시정부 관련 유적지도 잔득 넣었다.

이런 여행을 준비하는 것은 나에게는 작은 노동일 수 있지만, 여행을 좀 더 의미있게 만들려는 시도다. 지금 쓰는 글들은 그런 경험치들이 녹여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중국에 있을 때는 가능한 많은 곳을 돌아보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직접 답사비용을 만들 수 없어서 KBS 세계는 지금 통신원 등으로 일했다. 일단 현지 통신원이 아이템을 올리고, 본사가 채택하면, 통신원은 직접 현장을 취재해 영상을 본사로 보낸다. 본사에서는 이 영상을 5분 정도의 방송물로 만들고, 전화로 녹음해 방송하는 것이었다. 한편 당 100만원의 비용을 주었는데, 나름대로 생활비 역할도 했다. 중간에 700만원 정도의 영상 장비를 잃어버린 적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계기였다. ‘사라지는 만리장성’, ‘소림 무당 무술의 현장’, ‘숨겨진 비경 신농지아를 간다’, ‘살아있는 역사 핑야오 고성’ 등도 기억난다.

이런 단편들도 있었지만 2002년 여름 35일간 진행한 ‘중국 철학기행’이나 돌아가신 최우석 부회장과 같이한 삼국지 기행, 동북 독립유적지 답사, 김산 다큐멘터리 코디네이터 등으로 굵직하게 중국을 답사한 것도 신선한 배움의 길이었다.

양승동.jpg 현재 KBS 사장인 양승동 피디가 <나를 사로잡은 조선인 혁명가 김산>을 촬영할 때, 현지 코디를 했다. 사진은 중국 혁명 성지 옌안의 보탑산이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흔히 사회에서 경험을 통해 배운 지식과 책이나 교육을 통해 얻는 지식 두가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두 지식은 모두 장단점을 갖고 있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은 적잖은 위험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중국에 관한 지식도 특히 그런 위험이 상존한다.

중국의 미래에 관한 책도 관점에 따라 천양지차다. 제임스 베커의 ‘중국은 가짜다’라는 책을 보면 중국은 곳 망할 것처럼 보이지만, 키신저의 책 등을 보면 중국은 양대 강국을 넘어서 원톱 국가도 될수 있는 나라다. 그런데 이런 지식의 가장 큰 난점은 선입견과 편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중국 선에는 ‘털 끝 만한 격차도, 하늘과 땅 만큼 차이를 만들 수 있다.’(毫釐有差 天地懸隔)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중국을 보는 눈도 조금만 실수가 있지만, 결론은 전혀 엉뚱하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식은 함부러 예단할 수 없다. 특히 책으로 얻은 지식은 위험할 수 있다. 일단 사람, 시간, 환경의 격차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지식이 정확한지를 확인하는 것은 정말 어렵고도 중대한 과정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얻은 지식을 모두 검증할 수도 없는 게 일반적인 지식 습득 과정이다.

또 이런 소극적인 자세로 있다가 때를 놓쳐서 좋은 기회를 날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정확한 판단을 해서 실행해야 할 경우가 있다. 기회는 ‘앞머리는 길고 뒷머리는 대머리’는 말이 있다. 지나가 버리면 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일본의 마케팅 전문가인 고세키 나오키는 저서 <빠른 판단의 힘>에서 판단의 방식을 말해준다. 저자는 먼저 문제점과 목표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4분면을 제시한다. 수익의 크기와 경쟁상대 유무를 두 축 기준으로 4분면으로 나누고 문제점이 어느 분면에 속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문제점이 정확히 도출되었다면 해결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저자는 각 분면에서 어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지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제1사분면은 양 극단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 또는 포기하는 ‘트레이드오프’, 제2사분면은 선택해야 할 요소가 많을 때 상·하위 개념으로 계층화해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트리구조’, 제3사분면은 또 불특정다수와 경쟁에서 마케팅 요소를 더해 승부를 거는 ‘압축’, 제4분면은 경쟁상대 행위가 상호의존적으로 영향을 미쳐 전략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게임이론’이다.


저자는 판단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판단이라도 저자가 제시한 ‘의사결정의 4가지 도구’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그러한 판단 습관이 쌓이면 쌓일수록 일류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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