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6> 집안에 시를 읽는 문화를 들이자
대학 시절 전공수업 중에 ‘시 창작론’이 있었다. 돌아가신 정진규 시인이 수업을 했다. 선생님은 아주 탄탄한 시를 썼고, 수업도 탄탄하게 가르치는 분이었다. 수업 시간마다 시를 써오게 해 품평을 했다. 사실 나는 국문학을 선택했지만, 시 창작은 포기했다.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또 아무나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KBS에서 ‘시와 영화와의 만남’이라는 기획을 했다. 내가 안양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다. 비오는 토요일로 기억되는 그날,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여의도 KBS 별관에서 진행된 이 기획에 방청했다. 시인은 서정주 시인이었고, 영화는 마이클 포웰 감독의 1948년작 ‘분홍신’(The Red Shoes)이었다. 그 때 나는 질문을 하고 싶어서 꾸역꾸역 그곳에 갔다. 나는 노시인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시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리고 남의 시를 평가한다는 게 가능한가”
하지만 앞에서 정해진 이들이 질문을 하고 끝났다. 영화가 시작됐지만 한참을 졸다가 다시 투덜투덜 안양으로 돌아왔다. 철없는 어린 학생은 왜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시가 무엇인지, 시는 어디에서 오는지 답은 모른다. 그래서 가장 부질없는 줄 알면서 나는 시를 공부했다. 대학 1학년 때는 우리나라 시인들은 문파별로 분류해 그들의 시집을 읽었다. 그런 구분이 많지 않았는데, 한 평론가는 우리 당대 시인을 사회파(김광규, 김명수, 김창환, 정희성, 강인한, 고정희, 정호승), 존재파(하재봉, 조정권, 이명수, 윤석산, 김용범), 문명파(이성복, 이하석, 조창환, 강현국), 전통파(민용태, 라태주, 송수권, 이성선), 신서정파(박정만, 권달웅, 손기섭, 신협), 인생파(정대구, 이준관, 장석주, 감태준)로 분류해 놓았다. 나는 이 시인들의 시집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꼬박 읽고,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 두서개를 노트에 필사했다. 이 부류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최승자, 기형도, 황지우 등 마음에 와 닿는 시인들의 시집을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노트에 필사했다.
정진규 시인이 진행하는 시창작론 수업에도 나도 몇 개의 시를 내고, 더러는 주목을 받고, 지나치기도 했다. 사실 억지로 시를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써야하니 쓴 시가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사실 내가 시 쓰기를 포기한 것은 박용주의 시 ‘목련이 진들’을 본 후다. 나보다 몇살 어린 이 시인은 5월에 무참히 지는 목련을 보고, 오월 영령들과 연결해 엄청난 시심을 보여줬다. 나 역시 지는 목련과 오월 영령을 연결하는 시를 쓴 적이 있어서, 열패감은 더했다. 그래서 아 시는 쓸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절감했고, 이후에는 포기하다 시피 했다.
그럼 내가 왜 사람들에게 시를 읽으라 하는 것일까. 우선 시를 읽는 사람은 악해지기가 어렵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시경에 수록된 3백편의 시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악함이 없다’(時三白一言以蔽之曰思無邪)라고 말했다. 시경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지만 시경 속에는 약간 야한 것도 있는데, 공자가 사악함이 없다는 것은 시 자체가 가진 선함을 말한다. 그것은 민간에서 흘러다니는 노래라서 약간은 음란함은 있을 수 있지만, 사악한 인간의 본성이 걸러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시를 쓰거나 읽기 좋아하는 사람 중에 사악한 사람이 없다는 말과도 통한다. 내 경험으로도 시인들이 술 좋아하고, 여성을 밝히는 편력은 있지만 사악하다 할 정도로 막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시는 다른 글들과 달리 인간의 마음 뿐만 아니라 하늘의 마음과 연결되어야만 쓸 수 있으리라는 내 환상 때문일 수 있다. 대학시절부터 시를 포기했지만 나도 쓴 시가 있다. ‘어머니 머어언 길 올라 오시네’라는 시다. 미디어오늘에 들어가고 반년쯤 흐른 1996년 3월 29일 연세대생 노수석 군이 을지로에서 시위하다가 경찰의 강경집압으로 사망해 국립의료원에 안치되어 있었다. 나와 동기 강을영씨, 김동원선배는 노수석군의 사망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급히 취재를 갔다. 보수 언론이 사건의 진상을 감출 것이 명확했기에 우리가 보완취재를 해야했다. 자정이 지났다. 응급실에 얇은 스크럼을 짠 학생들 그리고 입구의 나트륨등, 그리고 전경들의 장막이 있었다. 학생들과 전경의 거리는 불과 5미터 남짓했다. 새벽 2시경 그 두 장막을 뚫고, 노수석군의 어머니와 누이가 들어왔다. 취재수첩에 썼던 짧은 메모를 기사가 안써지는 시간에 옮기고, 그 자리에서 한겨레로 보냈다. 이틀 후에 '독자의 시'란에 실렸다.(하단 첨부) 내가 밖에 발표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시다. 그날 내가 시를 쓰게 한 것은 내 이성이 아닌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힘이었다. 그 힘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라 샤먼의 기질을 가진 아들이 갖는 재능이다. 물론 세상에 나온 모든 시들이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 시는 어떻게 읽을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시집이 팔리는 드문 나라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처럼 백만부 이상 나가는 시집이 있고, 기형도 시집처럼 매년 만권 이상 팔리는 시집이 있는 특이한 나라다. 흔히 문단에서 평가받은 시인군과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시인들의 구분도 있다. 도종환이나 나태주, 류시화, 원태연 같은 시인은 문단의 평은 별로다. 반면에 기형도나 마종기, 허연, 나희덕, 허수경 시인은 문단에서도 인정받으면서 애독자층이 많은 시인이다. 그 사이에는 김용택, 정호승, 이병률, 안도현, 곽재구 등처럼 문단과 대중에게 절반씩 평가를 받는 이들도 있다.
그간 나는 많은 책을 버렸지만, 시집은 한 번도 버리지 않았다. 중국으로의 이주나 한국에소 이사 등에서도 꿋꿋이 시집이 내 서고에서 살아남은 것은 시는 늙지 않기 때문이다. 이백이나 두보의 시가 지금도 가끔씩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듯 좋은 시들은 절대 늙지 않는다. 소설과는 또 다른 생명력이다. 이는 서양 시인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시를 친근하게 느끼고 싶다면 집에 시집을 많이 쌓아둘 필요가 있다. 시집이 많은 집이라면 나는 그 집안 사람들이 분명히 착한 심성을 가진 집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럼 집에서 어떻게 시랑 친해질까. 우선 화장실에 시를 하나씩 프린트해 걸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윤동주부터 정호승, 나희덕, 정호승 등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가 좋을 것이다. 시를 읽는 순간 사람들은 가장 본연의 착함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가장 두보나 이백의 시처럼 한시도 좋고, 정민 교수나 김풍기 교수님이 추천하는 한시를 찾아서 올려도 좋다.
그런데 시는 고르는 기준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시집을 내기 위해 누구나 두드리는 문이 있다. 바로 ‘문학과 지성사’, ‘창작과 비평’가 가장 중요한 기준에 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은 21년 9월에 출간된 함성호 시인의 <타지 않는 혀>까지 559권을 펴낸 시인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마종기, 정현종, 황지우, 황동규, 최승자, 기형도, 김소연 같은 이들은 문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창작과 비평의 ‘창비시선’도 21년 10월까지 465권의 시선을 발간했다. 창비는 인문적 감성을 중시하는 문지와 다른 현장성을 중시하는 느낌이 강했다. 정희성, 박노해, 백무산 등 참여적인 시인은 물론이고, 문학적 성취도가 높은 시인들도 창비시선에 참여했다.
두 출판사의 시선집은 이미 충분히 거르고 나온 만큼 어느 시집이라도 들어서 큰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밖에도 10월까지 289번째 시집을 낸 민음사의 ‘민음의 시’, 세계사출판사나 솔출판사의 ‘솔 시선’는 믿을 만 하다. 잠시 춘천에 지내면서는 지역 출판사인 달아실을 알았는데, 달아실출판사도 얼마전 박제영의 <안녕, 오타 벵가>까지 16번째 시집을 출간했는데, 모두 수준이 있어서 지방에서도 시집 출판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고 고마운 적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집을 들고 우선은 겁부터 먹는다. 내가 시의 본질을 잘 읽어내는 것인가하고.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없게 하는 측면이 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말하면 시어 하나하나를 분석해 직유법이니, 구개음화니 하는 문법적인 분석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험생에 벗어났다면 시는 그렇게 읽으면 안된다. 시는 그냥 흥겹게 음을 내서 읽고, 그 느낌을 받아들이면 된다.
난 독한 시어들을 많이 쓰는 최승자의 시나, 착한 시어를 많이 쓰는 마종기의 시를 좋아했다. 읽으면 쓸쓸해지는 나희덕의 시나 칼날처럼 현장이 느껴지는 박노해의 시도 좋아한다. 이제는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바뀐 2호선 ‘신천역’을 지나면 나는 이희중 시인의 ‘지하철 신천역에서’를 생각하면서 나도 옛 연인과 스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시는 그냥 느끼면 된다. 그 자체가 지상에 있는 나를 천상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과 더불어 마음은 정화되고, 안정을 찾게 된다. 결국 시를 많이 읽는 사람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자신이 곧 하늘이다라는 생각들을 서서히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진 책을 볼 때 시집이 얼마나 있고, 어떤 시들을 좋아하는 지를 확인한다. 물론 그럴 정도의 시집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내놓은 첫시이자, 마지막일 시
어머니 머어언 길 올라 오시네
-고 노수석 추모시
어머니 머어언 길 올라 오신다
광천터미널 오는 길은 오죽하고
빗속을 달리는 고속버스 속에서는 오죽하실까
내 입학식 오실 때, 한걸음 가쁜 그 길이
오늘은 천길이실텐데 어찌 오실까
억만의 무게를 끌고 억겁의 시간으로
어머니 올라오신다
어머니 오셔서 내 몸 보시면 어떠실가
친구들이 지키고 있는 내 차가운 몸 보시면 어떠실까
나를 쫓던 전경 형들은 병원을 둘러싸고 있구나
차가워지는 내 영혼을
빗속에 빛나는 나트륨등의 따스함으로라도 녹이고
어머니 기다려야 할텐데
어머니 억겁을 지나 저기 오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