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4>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넌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으면 책을 그렇게 읽냐?”
사람들이 가끔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그런데 전제가 잘못됐다. 우선 난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는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남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지 않는다. 어떻든 짬을 내서 책을 읽고,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한 단어, 한 문장, 한 장이라도 더 넘기는 것이 습관이다.
누구도 처음에 책을 잡으면 두툼한 두께가 먼저 걸린다. 언제 다 읽지. 하지만 읽다보면 남은 책장이 줄어들고, 마음은 가벼워지고 책장은 더 빨리 넘어간다. 보통 앞 부분이 적응하느라 힘들지 뒷장에서는 속도가 빨라지는 게 일반적이다. 뒤에 색인 등이 많아서 빨리 끝나면 기분이 더 좋다. 물론 특이한 이들은 더 보고 싶어서 아쉬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워 말기를. 다른 좋은 책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퇴계 이황은 “책을 읽는데 어찌 장소를 가릴 것이냐”고 했다지만 책 읽기 좋은 장소는 분명히 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기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전철이다. 부평에서 송파구 문정동까지 1시간 반 넘게 출근할 때 책을 읽으면 시간도 빨리가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몇 년 사이 팟캐스트를 듣기도 했지만, 책을 읽는 게 휠씬 성취감이 있다. 특히 애청하는 팟캐스트들이 정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자 모두 끊어 버렸다. 대신에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는 전철에서 책을 읽는 동지들이 많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개인개인에게 들려지고는 책을 보는 이들은 정말 드물다. 나는 가끔 책을 읽는 이들을 보면 반가워서 그가 읽는 책을 흘끔흘끔보곤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경험도 있다. 안양 누나 집을 다니러 가는 길이었는데 전철에서 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만난 적이 있다. 기억하는데, <달콤한 중국>이라는 책이었다. 사실 너무 반가웠다. 결국 그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분이 생경한 눈으로 나를 봤는데, 내가 저자임을 밝히고, 명함도 주었다. 물론 이후 따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중학교 이후에는 버스에서 책을 보면 어지러워 읽지 않았는데, 전철이나 기차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다. 오히려 책을 읽기에 불밝기도 괜찮은 지 상대적으로 피곤하지도 않다. 또 모두가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책을 읽고 있으면 왠지 나만 지식인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들까도 싶지만 지하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랑질이 책을 읽는거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읽는 장소는 집 서재다. 심심하면 거실의 쇼파로 가서도 책을 읽는데, 여기서 책을 보면 어김없이 잠이 스르르 온다. 책 읽다조는 모습은 아내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것에 자존감은 무너지지 않는다. 과거 당선전 문재인 대통령의 독서의자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500만원 정도 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물론 나중에는 50만원에 산 중고의자로 설명했다. 다른 당의 비판을 받았지만 나는 나쁜 소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자는 정말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몸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가능하면 좋은 것을 쓰는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 집에서 아이의 의자가 제일 좋다. 10만원대다. 내가 쓰는 의자는 4~5만원선인데, 지금은 내가 앉으면 얼마 가지않아 스르르 내려간다. 일단은 버텨볼 생각인데, 컴퓨터 작업하는 의자라 좀 쓸만한 것으로 바꾸어야할 이유가 보인다. 어떻든 서재에 앉아서 책을 보면 두 번째로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나는 짬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민간기업 임원으로 일할 때나 공직자로 일할 때도 가능하면 빨리 출근한다. 그러면 사무실에서 자연스럽게 한시간 정도 내 시간이 생긴다. 이 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 급한 원고가 있다면 원고를 쓴다. 다만 책 읽는 것은 눈치가 보이지만, 글쓰는 것은 일하는 것과 차이가 없어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아침 독서 시간은 상당히 집중하기에 좋다.
그리고 최근 눈에 띄는 것이 스마트도서관이다. 요즘 많은 지자체에서 스마트도서관을 운영한다. 기차역이나 터미널, 전철역 등에서 지자체 도서관이 무료로 책을 빌려주고, 반납하는 무인 시스템이다. 필자도 춘천에 있을 때, 뒤늦게 이 서비스를 신청해서 이용해 봤다. 보유한 책이 많지 않아서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이용하는 재미가 있었다. 춘천은 남춘천역이나 시청에도 스마트도서관이 있어 이용하기 좋았다. 내가 사는 부평구의 경우 도서관 1층에 밖에 없어서 그다지 효용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언제나 책을 휴대해라
개인적으로 왼쪽 어깨가 약간 불편하다. 항상 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 가방에는 통상 2권 정도의 책이 있다. 하나는 가벼운 책이고, 하나는 무거운 책이다. 책이 없으면 아무리 책을 보고 싶어도 읽을 수 있다. 요즘은 전자책도 많으니, 테블릿을 이용해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도 책 읽는 맛이 나지 않는다. 과거 아이패드는 책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 특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어볼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이 됐다. 이외에도 한 인터넷서점에서 전자책 전용 단말기를 산 적이 있는데, 집안 전자제품 공동묘지에서 놀고 있다.
생각하건데, 머잖아 많은 책들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인쇄 대신에 전자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요즘도 상당수의 책들이 전자책과 종이책이 같이 나오는 추세인데, 비용, 유통 등의 이유로 전자책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물론 전자책의 인터페이스가 좋아지만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더욱이 전자책에는 책을 갉아먹는 좀벌레 지어(紙魚)가 없다. 물론 버그나 바이러스는 충분히 생길 가능성이 많다.
책을 휴대할 때, 가벼운 책과 무거운 책을 휴대하는 것은 내 컨디션에 따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숙취상태에서 무거운 책을 읽으면 숙취가 더 심해질 수 있다. 가벼운 책으로 갈아탈 수 있으면 좋다. 반면에 무거운 책을 읽고 있으면 주변에 으스대기에 좋다. 물론 나도 주변에서 무게감있는 철학책을 읽고 있으면 한번 더 주목하게 된다. 이런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역시 하나의 삶에 재미다.
생각해보면 대학 다닐 때, 귀향길에서 타임지 같은 영어 잡지를 본 적이 많았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뭔가 있어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식은 때로 허영의 얼굴을 하고 오기도 한다. 그런 정도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에 충분히 애교로 봐주는 게 바람직하다.
-속독은 가능한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속독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 서점에도 속독법에 관한 책들이 몇권 있었다. 책 읽기에 호기심이 있었던 나는 몇권의 관련 서적을 읽었다. 대각선으로 책을 한눈에 보는 법 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가 그때 배운 방법을 쓰는 지는 모르지만 나는 책을 빨리 읽는 것은 맞다. 소설은 작가 스타일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시간 전후로 읽는다. 물론 심각한 소설은 3~4시간도 가능 경우가 있지만 상당수의 책은 2~3시간이면 한권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한시간 안에 완독하는 책들도 있다.
일단 책을 읽는 속도는 읽는 만큼 빨라진다. 글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하루에 A4 20~30장의 원고를 쓰기도 하는데, 글의 속도가 붙으면 아주 빨라진다.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보면 볼수록 빨라진다. 눈이 책 읽는데 습관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리다고 고민할 일도 절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의 기억에도 속독 이야기가 있다. 율곡 이이(李珥)가 우계 성혼(成渾)과 나눈 대화다. 성혼이 “나는 책을 읽을 때 한꺼번에 7∼8줄밖에 못 읽는다”고 하자, 이이는 “나도 한꺼번에 10줄밖에 못 읽는다”고 대답하고 한다. 율곡은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고, 성혼도 못지 않은 학자다. 한자로 된 책을 한꺼번에 7~10줄씩 읽었다면 대단한 것이다. 다만 한자는 표의문자라 전체를 놓고, 순서 없이 읽어도 경험 많은 이들은 이해가 가능하다. 반면서 순서가 있는 표음문자인 한글은 순서는 지키는 게 아무래도 이해가 쉽다. 한자가 한 솥안에 들어가도 뼈들이 있다면, 한국은 모두 녹아서 무엇인지 형태를 상상하기 어렵다.
속독이 나쁘지 않은 것은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디. 책을 읽는 사람은 앞 부분을 제대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다만 스토리 전개가 있는 글이야 뼈대를 잡아가면서 읽기 때문에 고민할 일도 없다. 그냥 읽어가서 이야기의 구조를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잡다한 지식이 들어있는 책들은 기억해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것을 다 기억하겠다고 해본 적은 없다.
최근에 저술한 책들 조차도 내가 몇프로테이지를 기억하냐고 물으면 부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다만 뇌는 생각보다 더 위대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바로 사람이 책을 읽을 때 연상, 기억, 피드백 등 다양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살아갈 때, 책이 다시 나에게 다가와 가볍게 속삭여주는 경우도 있다. 글을 쓸 때 가장 위대한 힘은 검색을 통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가끔 떠 올라주는 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곤 한다. 어떻든 속독은 나쁜 습관도 아니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의무사항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