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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읽고 쌓은 책의 높이 만큼 사람은 자란다

<독서-3> 자기만의 서재를 만들어라

by 조창완

쌓아두면 가장 배부른 것은 무엇일까. 돈은 그래본 적이 없으니 느낌이 없다. 나에게 쌓아두었을 때 가장 즐거운 것이 무어냐 물으면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서재를 가진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중에 봐야할 것 같은 책은 사서 모았다. 살때마다 책 뒤에 사는 시기를 적었다. 임신만추(壬申 晩秋) 같이 시기를 적었다. 가끔은 알량한 느낌도 썼다. 임신은 해이고, 만추는 늦은 가을이다. 느낌은 아래 첨부한 것처럼 썼다. 아버지가 용돈으로 보낸 돈의 상당수는 책을 사는데 썼다. 처음에는 벽돌 책장으로 책을 쌓다가, 나중에는 앵글을 구입해 몇단으로 쌓았고, 앵글도 더 늘었다. 대학을 마쳤을 때는 300권 정도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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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산 책 가운데 남아있는 책은 시집 정도다. 내 시집에 써 있는 살 때의 기록


첫 직장에 들어가고, 얼마후 구파발에 단층원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역시 앵글 책장의 집의 한켠을 차지했다. 책은 쌓여서 1000권이 넘어갔다. 99년 가을 결혼과 더불어 중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문제는 책을 가져갈 수 없었다. 봐야할 책 100여권을 골라서 짐으로 휴대하고, 나머지 책은 길음동에 있는 둘째처형에게 부탁했다. 책 무게로 인해 비행기 대신에 인천에서 톈진으로 가는 배를 탔다. 몇년후 처형은 먼지로 인해 책이 처치곤란하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잠시 귀국했을 때, 필요한 책 얼마는 남기고, 고물상에 부탁해 책을 처리했다.


2008년 한국에 들어올 때는 다시 중국에 있는 책이 문제가 됐다. 또 책은 버리기 힘들다는 이유로 짐의 대부분을 책으로 채웠다. 이사 박스 20여개는 책이 차지했다. 한국을 오가면서 사간 책과 중국에서 산 책도 있어서 꽤 늘었다.


이후 분당을 거쳐서 인천으로 온 후에도 책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4년전 집을 마련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의 안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벽은 책이 주인이다. 거실은 2단 책장을 비롯해 양면이 책으로 쌓여있다. 한쪽은 교양서적이 주인이고, 한쪽은 중국 관련서와 아내의 중의학 관련서나 한의학 서적이 차지한다. 내가 주로 사는 서재 방은 한쪽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책이 차지하고, 반대편은 아내가 모은 동화책들이 중심이다. 그런데도 책장은 언제나 부족하고, 집 한켠에는 책이 쌓여있기 일쑤다. 추측건데 지금 집에 있는 책은 3000여권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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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장. 거실 중국책과 아내 책(좌상), 서재 아내의 동화책(우상), 거실 교양서적(좌하), 서재 인문 기본서(우하)


책은 먼지의 근원이다. 한번씩 책장을 정리하다보면 책은 물론이고 책장 앞은 먼지로 가득차 있다. 책이 먼지의 근원지라는 것을 안다. 때로는 책 좀벌레도 있다. 책벌레는 물고기처럼 생겨서 지어(紙魚)라고 한다는데, 돋보기 대고, 모양을 살필 마음은 없어서 바로 잡아버린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흔히 간서치(看書癡)라고 한다. 좋은 의미 만은 아니다.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 모으기를 좋아하는 이는 스스로 그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별로 구애하지 않는 것 같다.


나랑은 비교할 수 없지만 조선에서 유명한 간서치가 많다. 우선 세종대왕은 물정을 잘 알았지만 간서치로 불려도 싫어하지 않을 분이다. 너무 책을 좋아해 아버지 태종은 충녕대군에게 책을 멀리 할 것을 지시했지만 따르지 않고, 어떻게든 책을 찾아서 읽었다. 분야도 사서오경은 물론이고 과학, 예술, 언어 등 모든 분야에 있으니 진정한 간서치라 할 수 있다.


간서치의 대표 주자는 규장각 검서관을 한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다. 이덕무가 세상을 뜬 뒤 출간된 유고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실린 ‘간서치전(看書痴傳)’에서 ‘책만 보는 바보’로 묘사된 인물이 바로 이덕무다. 물론 이덕무 만은 아니다. 당시 이덕무랑 같이 놀던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간서치다. 그들은 백탑파라는 모임을 통해 당시 책의 시대를 열었다. 이들이 책에 빠질 수 있는 것은 중국이라는 공간을 통해서이기도 하다.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은 중국을 방문한 후 책을 남겼다. 간서치이면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들 간서치의 지식은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로 이어지면서 학문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했고, 근대로 넘어가는 길에 나왔던 동학이나 개혁 사상도 이곳에서 뿌리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간서치의 역사는 끊어지지 않는다. 백탑파의 역사를 하나하나 되살린 소설가 김탁환도 당대의 간서치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꽤 오래전부터 ‘명사의 서재’라는 연재를 통해 사람들의 서재를 엿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벌써 571명 째 연재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역정이다. 다룬 인물도 어지간 하다. 주로 소설가, 시인, 사진가 등 책을 출간하는 이들이지만, 정치인, 코미디언 등도 있다. 소개하는 이들은 책과 독서에 대한 간단한 느낌과 더불어 4~5권 정도의 추천도서를 링크한다.


한길사와 파주출판도시를 통해 한국 책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는 김언호 대표는 “서점은 도시의 이성이고 빛입니다. 한 권의 책은 서점공간에서 독자들을 만나면서 지적·정신적 창조의 역량으로 존재하게 됩니다.”며 그가 펴낸 『그해 봄날』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시대의 현인들의 생각과 실천을 들려주고 싶어서 만든 책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서재는 덕소에 사시는 김삼웅 선생의 공간이었다. 외곽에 비교적 넓은 집을 얻은 이유도 아마도 책을 쌓아두기 위해선 듯 했다. 댁에는 2만여권이 넘는 책이 있다하는데, 나처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책보다는 희귀한 책들도 상당히 있었다. 김선생님은 여든이 가까운 나이지만, 이런 서고를 바탕으로 지금도 활발하게 글을 쓰고, 일년에 2~3권의 인물 평전을 내신다. 아마도 독립기념관에 김삼웅 서고가 생길 날도 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집 3식구는 각자의 책 영역이 있다. 꼭 자신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과 책의 공간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직 공부중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나 미술사 등 기본 서적이나 교양서 등의 일부는 방 책꽂이에 두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보던 책들 가운데 차마 버리지 못한 윔피키드나 삼국지 만화 시리즈 같은 책은 거실 책장의 한켠을 차지한다. 아내의 책도 거실과 서재 방에서 한 책을 차지한다. 그런데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아이가 학교 공부의 틀을 넘어서 내 서재에 있는 책들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내가 보던 책에는 중국 책이 많지만, 소설, 시, 문화, 철학, 사회, 예술 등 전반에 걸쳐있다.


나는 아이가 한국에서 공부해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세계를 더 돌아보고, 그곳에서 인문학이나 전공하고자 하는 고고학이나 역사학을 더 깊게 공부하기를 바란다. 물론 돈이 많은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무한지원은 못한다. 그래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은 유럽으로 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유혹을 많이 한다. 그러려면 그 지역에 관한 역사나 문화에도 익숙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 서적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바랄 뿐이다.


내 집의 서재 중에는 특수한 한 분야도 있다. 바로 중국 소설을 모은 곳이다. 개인적으로 ‘중국 소설을 보면 중국이 보인다’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다. 국문학을 전공해선지 소설 읽기를 좋아했고, 중국 소설도 한국에 출판되면 가능하면 다 읽으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중국 현대 문학을 전공한 이들도 있기 때문에 그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나도 그들에 못지 않게 중국소설을 읽었고, 관련한 책을 쓸 생각도 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내가 낸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는 내가 좋아하던 헤세의 소설에서 착안했고, 이번에 책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책들이 얼마나 독자를 갖고, 출판사에게도 의미가 있을 지는 더 생각해볼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 자기만의 서재를 만들고, 가족들에게 서재를 갖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작은 책꽂이를 두어, 학습 관련서 이외의 공간을 두면 아이들이 읽은 책을 보면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런 즐거움이 쌓이면 책과 친해지고, 책읽기 습관이 동반된다. 아무리 책 읽기 프로그램에 가입해도 자신의 공간에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효과가 다르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이나 생각의 카테고리도 있듯 독서도 범주가 있는 게 좋다. 만약 자신이 하는 일이 영업이라면 관련 분야의 책을 축적해보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영업에 관한 책을 보겠지만 이후 심리학, 마케팅, 전략 등 다양한 책으로 확산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 직업간을 오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런 자신감이 없으면 자존감도 사라지고, 결국 더 확신있는 삶을 살 수 없다.

얼마전 낮에 우리 집에서 술 자리가 생겼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가 내 책꽂이에 있는 시집들을 보고 추억에 빠져들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전후는 문학과지성사, 창착과비평사, 민음사에서 나온 시집이 큰 위로가 되던 시기였다. 그 친구들도 그 시집들을 뽑아보더니, 추억에 젖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 만큼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서재가 만들어주는 작은 연대이기도 하다. 아울러 나도 처음 결혼 전 아내의 집에 갔을 때, 아내의 책꽂이에 있던 책을 보고 안심을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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