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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讀用書> 이야기가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운다

<독서-1> 권선징악의 재미에 빠지다

by 조창완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쓰거나, 공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어릴적 나를 읽기로 이끈 것은 무엇인가를 물으면 '이야기'라고 해야 겠다.


이야기 찾아 삼만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나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한글을 배웠다. 글을 배운 후 나를 이끈 것은 이야기다. 이야기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찾았다. 우선 내 위로 2살 터울 간격으로 있는 형과 누나 3명의 국어 교과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우리 집에서 지나간 책들을 쌓아놓은 곳은 마루 위에 있는 다락이었다. 방은 아니고, 짐을 올려놓기 위해 만든 큰 시렁이었다. 그곳에 가면 용도가 지난 누나와 형의 교과서를 비롯해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물론 쥐들의 보금자리기도 했다. 불도 없어서 어둑한 곳이었다.


내 키보다 휠씬 높은 곳에 위치한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엌으로 난 문을 열고, 문의 작은 창살을 타고 그 높은 곳으로 올랐다. 다행히 떨어져 본 적은 없다. 먼저는 형, 누나의 국어 책을 찾아서 이야기를 읽었다. 다음은 도덕책이었다. 그곳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마지막은 둘째누나의 일기장까지 읽었다. 둘째 누나는 꼼꼼히 일기장을 쓴 편이었다.


다음 읽을 거리도 있다. 아버지가 이장과 영농회장을 해서 내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서울신문이 배달됐다. 또 한달에 한번은 새농민과 어린이 새농민이 왔다. 가장 흥미로운 읽을 거리였다. 안타깝게 어린이 새농민은 띄엄띄엄왔다. 그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서울신문은 한자가 같이 쓰여서 한문을 모르면 읽기가 어려웠는데, 초등학교 4학년때쯤 읽기가 어렵지 않을 만큼 한자를 해독한 것도 읽기에 대한 유혹 때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때쯤 둘째누나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책 두권이었다. 당시 누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내 생일날 어린이용 도서 두권을 선물했다. 한권은 <삼총사>였고, 한권은 <주홍글씨>였다. 63년생인 누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5.18을 겪은 트라우마를 가진 세대기도 하다.


누나가 준 책 가운데 삼총사는 금방 읽었다. 너무 흥미로워서 두세번은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은 얼마후 초등학교에서 독서반이라는 것을 모집했다. 나도 무슨 생각인지 들었는데, 선생님이 독서 경험을 묻는 과정에서 삼총사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고, 잠깜 우쭐해진 경험이 있다. 그런데 주홍글씨는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들어 읽지 못하다가 동네 형이 부탁해 얼마를 주고 팔았다. 그 때문인지 이후에도 주홍글씨를 읽지 못했다.


고향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도 이야기를 좋아했다. 교과서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대신에 아버지가 읽던 김동길이나 유안진, 김형석 등의 책에서 나름 이야기를 찾는 재미에 빠졌다. 당시 어느 학교에나 도서관이 있었지만 도서관은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이 아니라 장식장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안양으로 진학했다. 그때 우리 집은 둘째누나가 안양에서 서점을 하고 있었다. 안양 대교 앞에 있는 서점에 딸린 방은 3명이 칼잠을 자야 하는 작은 곳이었다. 나는 밤에 서점에 나와서 공부를 했다. 당연히 눈 앞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교과서가 보일 리 만무했다. 그때 시리즈로 출간되던 김홍신의 <인간시장>이나 김용의 <영웅문>은 물론이고 다양한 소설들도 만났다. 특히 여성지의 성 상담 등은 가장 흥미로운 페이지였다. 아울러 이관용의 <바람의 아들> 같은 야한 장면에 있는 소설은 특히나 마음이 갔다.


그런 가운데 윤흥길의 <장마>나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 같은 문학적이고, 문제적인 작품들도 만났다. 특히 <장마>는 어린 나에게 좌우라는 개념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만들어줬다. 이후에도 내 책 읽기에 상당 부분은 이야기를 찾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헤세에 빠진 것도 그가 비교적 쉬운 삶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해서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됐는가를 물으면 나는 이야기를 쫓다가 책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어떤 요소가 어린 아이를 책으로 이끌었을까. 아마도 그 가운데 하나가 권선징악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마지막에 착한 쪽이 이기고, 악한 쪽이 패배한다. 결국 나는 결론에 나오는 착한 쪽이 이기는 경과를 만나기 위해 이야기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럼 나의 경험이 사람들에게 어떤 시사점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는 아직 체계적인 독서 입문 방식이 있지는 않다. 그저 책을 읽는 게 좋은 습관이라고 해서 독서를 지시하고, 아이는 따르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방식은 분명히 비 효율적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이 과정을 통해 책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그 결과다.


결국 아이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방식은 이야기에 빠지게 하고, 그 쾌감을 알아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들 용우가 비교적 책을 좋아한다. 아이가 어릴적 좋아하는 책은 <마법 천자문>등 학습만화 시리즈나 윔피키드 같은 연작 출간물이었다. 물론 만화로 부터 시작이다. 어떤 필자들은 학습만화로 독서를 시작하는 게 나쁜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만 꼭 특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는 <용선생 한국사> 같은 시리즈 물도 흥미롭게 읽는 것을 봤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초등학교 때 한자2급을 어렵지 않게 땄고, 고등학교때 한국사1급도 수월하게 통과하는 것을 봤다.


요즘은 이야기가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결과로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서양에서 읽히는 <해리포터> 등 상당수의 책들은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큰 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야기를 중심으로 독서에 빠지게 하는 테크닉을 독서 교육에 넣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책읽기의 가장 큰 기능중에 하나는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착한 세력이 살아남고 악한 세력이 멸한다는 것을 만난 이들은 나중에 악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 결국 그것이 선한 세상을 만들고, 아이들이 선한 인간으로 커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부머리 독서법>이란 책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최승필 작가도 2장에 걸쳐서 이야기 책의 가치를 설명한 것도 내가 말하는 관점과 유사하다. 저자는 이야기책을 읽으면 수학 실력도 올라간다고 하는데,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은 시험들은 한 과목이 한 과목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국어 문제에도 상대성이론이 나와서 수험생을 당혹하게 한 적이 있다. 또 화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오랜 시간을 소모하게 하는 국어 문제가 나와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또 수학 문제 역시 문해력이 없으면 곤란하게 만드는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국어가 중요하기도 하다.


이야기를 잘 아는 것은 결국 기승전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는 것이고, 그 과정을 안다는 것은 창의적으로 그 과정을 채워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집에서 드라마를 볼 때, 아내는 내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에 놀라는 경우가 종종있다. 물론 극에서 쓰이는 복선 같은 장치를 통해 이야기의 구조를 알아채기도 하지만, 이야기 책에 익숙한 나는 그 전체 맥락에서 한 부분을 보기 때문에 아내가 놀랄 만큼 드라마의 앞을 잘 볼 수 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과서는 로버트 맥키가 쓴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이다. 이 책은 영화로 만드는 스토리의 기본 구조를 잘 설명하는 책이다. 맥키는 "이미 23세기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을 쓴 이후로 이야기의 <비밀>은 거리에 들어서 있는 도서관 만큼이나 공공연하게 사람들에게 드러나 있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그 비밀의 구조를 말해준다.


아이들이 이야기에 빠지면 이후 확장성이 넓어질 수 있다. 반면에 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게임 등에 빠지게 되면 이야기가 체계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흥미를 잃을 수 있다. 물론 게임 역시 전체는 한 이야기의 얼개를 갖고 있지만, 주변의 장치가 너무 많아서 한가지 이야기를 머리에 넣는데는 취약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끈 <오징어 게임> 역시 이야기의 정석에 충실한 작품이다. 특히 중간에 가장 중요한 키를 쥔 1번 노인이 마지막에 이 게임의 기획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놀랄 수 밖에 없다. 또 이정재라는 인물이 나중에 사악하게 변했다면 사람들은 더 절망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정재는 자기의 방식으로 선함을 지키려는 모습이 있고, 이후 이루어질 변화에 관심을 끌게 된다. 아울러 앞 우승자였다가 이번에는 게임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동생에게 마저 총을 쏘는 황인호(이병헌 분)의 변화도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런 장치들은 이야기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상투성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다.


독서는마음의양식.jpg 내가 다른 영광 백수중학교 교정의 독서상. 아이는 학교에서 책 읽을 도서관을 얻지 못했고, 뒤에 있는 목련의 순수만 보면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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