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7> 유연한 사고의 힘
‘와호장룡’은 내가 가장 즐겨보는 영화다. 특히 저우룬파가 연기한 리무바이는 많은 인상을 남겼다. 리무바이는 당시 무당파의 고수로 나온다. 2001년경 나는 소림무술의 본산인 샤오린스(少林寺)와 무당무술의 본산인 우당산을 찾아 방송을 만든 적이 있다. 샤오린스가 있는 슝산의 도시 덩펑(登封)에는 수십개의 무술학교가 있고, 수십만명이 수련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오면 보여주는 공연장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현란한 속도의 장이었다.
반면에 우당산이 있는 스옌(十堰)은 너무 조용했다. 입구에 무당무술대학이 있었지만 진짜 스련자들은 즈쇼궁(紫宵宮)에 있는 무당 무술관에서 조용히 수련하고 있었다. 숫자도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 도교의 도사들이다. 그런데 무당 무술 수련자들은 흰 옷을 입고, 머리를 따 올린 채 빠른 속도가 아닌 기운을 모으는 듯 조용한 모습이었다. 무당 무술의 근본은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원칙 아래, 기운을 모아서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제압하는 무술이었다.
와호장룡에서 리무바이는 절대 빠른 호흡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부드러운 힘으로 상대를 읽고, 분석해서 대처한다. 물론 푸른 여우의 독침 비수를 맞고, 절명하지만 그는 한 무도인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을 보인다. 영화 속 리무바이의 모습에서, 실제 삶 속 저우룬파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유연함을 본다. 저우룬파는 전 재산의 99%인 8000억원을 기부하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
그의 삶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라는 노자사상의 절정을 느낄 수 있다. 도덕경(道德經) 8장에 “지극한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라는 말이 있다. 이런 이치를 잘 활용한 것이 쓰촨성에 있는 두장위옌(都江堰)이다. 이곳은 진시황때 만든 수리시설인데, 인류의 지혜가 담긴 명소다. 쓰촨의 협곡에서 나온 물은 민강(岷江)을 타고오면 물의 양이 시시각각 변하는 무서운 모습이다. 그런데 이빙 부자는 이 강에 물의 양에 따라 분산시켜 농사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지혜를 보여준 유산이다.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을 앞두고 리롄제(이연걸) 등 많은 홍콩 배우들이 삶의 기반을 홍콩에서 할리우드 등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저우룬파는 홍콩에 남았고, 가장 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청룽(성룡) 등 남아있는 홍콩 배우들이 친중으로 가는 상황에서도 그는 우산혁명을 조용히 지지하기 위해 검은 마스크를 끼고 나타나기도 했다.
와호장룡 속 리무바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쥐고 있을 수 있는 영원한 건 없다. 내려놓아야만 참된 것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다.”는 대사가 있는데, 그는 삶에서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노자, 무당무술의 힘을 대표할 수 있는 말이 유연함이다. 잡기에 능하지 않은 필자가 즐기는 운동은 테니스와 골프였다. 테니스는 대학 시절에 시작해, 중국에 있일 때와 세종시에 일하던 공무원 시절에 했다. 골프는 2017년 기업 임원으로 가면서 업무상 필요해 배웠다. 그런데 두 운동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힘을 쓰려는 것 보다는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니스에서 포핸드나 백핸드를 칠 때, 강한 공을 보내기 위해 힘을 주면 대부분 엔드라인을 넘어서 아웃이 된다. 반면에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면서 내보면 상황에 따라 더 강한 공이 가고, 정확하게 갈 수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강한 서비스를 보내서 에이스를 내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나이가 든 분들은 힘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보내는 것을 중시한다. 류현진이나 유희관 같은 투수가 압도적인 강속구가 없으면서도 강약조정으로 상대의 속도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확한 제구력으로 타자가 치지 못하도록 하는 원리와 같다.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드라이버를 칠 때 멀리 보내기 위해 힘을 주면 분명히 탈이 난다. 프로선수라 할지라도 자신의 힘을 통해 멀리 보내기 보다는 정확한 스윙괘도를 유지해 드라이버가 가진 헤드의 속성을 활용하면 충분한 비거리를 낼 수 있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골프 레슨계의 대가인 임진한 프로도 손목에 힘을 빼고, 헤드 무게를 최대한 활용할 때 좋은 비거리가 나온다고 가르친다. 물론 사람들은 그 경지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더 제대로된 거리를 내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몸통회전이 동반해야 한다. 초보자의 뻣뻣한 몸으로는 몸통회전이 될 리 없다. 수없는 연습을 통해서 몸통이 회전하고, 그 회전력이 배어야만 정확하고, 유연하게 공을 칠 수 있다. 무당무술의 한 수련법인 태극권도 마찬가지다. 가장 유서깊은 진식태극권(陳式太極拳)을 보면 대부분의 동작은 유연하게 흐르다가 순간순간 힘을 주는 정도다.
그럼 왜 유연함이 중요할까. 인체에게 있어 나이가 들수록 유연함은 중요하다. 기력이 떨어지는 시간에 딱딱한 몸을 가지고 있으면 다치기 쉽다. 젊은 시절에는 근육이 순간적인 힘을 발휘해 큰 위함을 피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그럴 수 없어 결국 골절이나 근육의 손상을 가져온다. 그래서 노인들은 화장실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몸에게만 유연한 게 좋은 게 아니다. 정신에게 있어 유연함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이론 물리학을 가르치는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는 유연함을 강조하는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유연한 사고의 힘>에서 오늘날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굳어 있는 사고가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유연한 사고란 여러 가지 발상들을 편안하게 떠올릴 수 있고, 틀에 박한 사고방식을 극복할 수 있게 하며, 풀어야 할 문제를 재구성하고,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서 마음을 열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이다.
저자는 부제처럼 유연한 사고가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창의성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거나,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조합해 내는 것과 연관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다.
사실 일반 직장은 별로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일단 창의적인 사고를 받아줄 체계가 없는 곳이 많다. 결국 창의적인 의견을 낸 사람은 쓸데없는 데 힘을 쏟게 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고, 차라리 가만 있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직장인의 창의성은 에디슨 같은 창의성보다는, 자신의 업무 프로세스 안에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개선하거나, 새로운 마케팅 방식 등 극히 한정적인 창의성이다. 그래야만 조직도 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성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드러진 한국의 강점은 유연성에 바탕에 둔 창의성에서 나온다. <오징어게임>이나 <마이네임> 등 콘텐츠가 넷플릭스 등 세계적인 OTT 세계에서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물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고 한탄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OTT는 갈수록 확대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콘텐츠를 가진 자가 승자가 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콘텐츠가 됐지만 이번에는 편당 10억원이라면 다음번에는 100억원으로 협상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안되면 디즈니나 HBO맥스에 팔 수가 있는 시대가 온다. 망을 까는 것은 정확한 투자가 나오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돈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제작자, 연기자, 보조시스템 등이 완벽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창의성은 유연함에서 나온다. 요즘 지인 가운데 몇사람이 넥플릭스에서 유통할 수 있는 극을 기획, 집필하겠다고 한다. 이분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있고, 동갑의 친구도 있다. 충분히 그런 콘텐츠를 기획하고, 대본을 집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들을 보면서 필자도 집필 의욕이 솟기도 했다. 이런 이들이 무한경쟁해야 새롭게 부상하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 힘에 하나는 나이도 잊고, 유연하게 무엇인가를 찾작하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