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처음부터 완벽한 엄마는 아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는 엄마들 중 가장 책임감이 강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이다.
'엄마'이기에 적어도 자식들은 본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부모보다 더 나은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다.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고리타분하다고 느껴지는 사고방식을 바꾸고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어떻게든 자신을 갈아 넣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바쁜 아빠 대신 세 아이를 끌고 박물관, 과학관, 체험장, 심지어 노지캠핑까지 대부분의 것들을 홀로 해냈다.
내 또래 친구들이 흔히 듣곤 했다던, '큰 딸은 살림 밑천이다'는 말은 단 한번도 입에 올린 적도 없고 어른들이 하는 말에 대꾸한 적도 없다.
종갓집 장녀로 태어나 시댁 어른들의 비위를 능숙하게 맞추면서도 한 번도 내게 그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다.
꽃다운 나이 22살, 남들은 한참 놀기 바쁜 시기에 시부모도 없는 4형제의 둘째에게 시집와서 아직 결혼 안한 도련님들 먹이고 입히고 우애 돈독한 형제들 행사라면 언제든 시간을 비워 참석했다.
지금도 그렇다.
이제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남동생이 놀러가겠다고 말하면 시간을 비워 한 상 차려내기 바쁘고,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언제나 이것저것 챙겨 가고 챙겨 보내기 바쁘다.
자식들 일이라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 도움이 필요한 것은 도와주고 심적 지지가 필요한 일에는 주기적으로 응원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일에 절대 소홀하지 않고 심지어 오십이 넘은 나이에 대학원 석사를 마치고 새 자격증을 따기 위한 연수를 듣기까지 한다.
홀로 되신 외할아버지를 주마다 찾아가고, 할아버지를 위해 한 음식 중 우리가 먹을 게 있으면 오가는 길에 들러 나와 남동생에게 전달하고.
그 와중에도 본인은 외할머니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며, 돌아보니 그게 그렇게 속이 상한다며 내게는 언제든 힘들면 도와달라고 말하라고 한다.
가끔 '나는 딸이 둘인데 다른 집 딸들처럼 자주 전화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속상함을 토로하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나는 너희에게 좋은 엄마였어?'하는 성찰과 반성의 질문을 더 많이 하려고 애쓰는 사람.
완벽한 엄마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한 엄마였다.
그런 엄마 밑에서 크다보니 자연히 나 역시 그런 모습의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보다 훨씬 늦게 결혼했고 더 늦게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활패턴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바꾸고, 사용하는 언어와 곁에 두는 사람을 바꾸면 나도 엄마처럼 할 수 있겠지.
나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될 수 있겠지.
큰 아이를 출산한지 2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한달.
그런 엄마가 되려면 나 역시 우리 엄마만큼 아이를 키워봐야 한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하게 된다.
나와 엄마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엄마와 나의 남편들이 가진 성향이나 기본적인 성장배경, 성격들이 다르고, 엄마가 살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다르기에.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도, 나는 완벽하게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한동안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육아경력 2년차 초보 엄마는 이제서야 생각하게 된다.
생을 살아온 경험은 30년이 넘었어도 아이를 키운 경험은 2년이 고작이니.
나는 우리 아이와 함께 이제 막 육아라는 길에 접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니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조바심이 나더라도 그마저도 즐기면서 천천히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의 엄마가 되기 위해 나아가면 되는 거라고.
하루에 0.1%, 단 한 걸음이라도 말이다.
2살짜리 엄마가 서른 넘은 엄마를 따라잡기 위해선.
아직도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