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직도 너를 잘 모르나보다.
최근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건 큰 아이와의 관계다.
아니, 정확히는 ‘관계’라기보다는 아이를 재우는 문제라고나 할까.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그냥 데려다 놓으면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고 자기 일어났다고 노래는 부를지언정 울지는 않던 아이다.
그런데 세돌이 다 되어가는 지금, ‘수면교육은 참 잘 시켰다’는 주변 어른들의 말이 무색하게 엄마가 없으면 제대로 누워있으려고도 안 하는데다 옆에 있어달라고 해서 같이 누우면 자기 혼자 노래 부르고 뭐하기에 바빴다.
밖에 있겠다고 해도 싫고, 옆에 있어도 안 자고, 엄마가 깜빡 잠들면 깨우고.
결국 피곤에 지친 엄마가 화를 내고 짜증을 내야 훌쩍거리다 끝나는 시간.
전쟁. 그거 말고는 따로 이름 붙일 말이 없는 시간이었다.
어제 남편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스트레스를 털어놓으니, 남편은 그런다.
“나하고 있을 땐 안 그러는데.”
살짝 짜증이 나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남편이 잠깐 들어가서 아이와 몇 마디 나누고 난 후에 다시 나왔을 때, 아이는 내가 나올 때처럼 따라 나오거나 징징거리지 않았다.
쿨하게 아빠를 보내주고 아빠가 보고 싶으면 아빠를 불렀다.
남편은 망설임없이 아이의 부름에 응답했고, 아이는 그렇게 두어번 아빠를 부르다 혼자 잠이 들었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스트레스는 훨씬 덜한 방법.
남편의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했다.
어쩌면, 최근 아이가 무슨 일만 하면 엄마를 찾는 게 그래서 그런 걸까?
엄마는 불러도 잘 안 오고, 맨날 기다리라고만 하고, 자는 것이 중요하지 아이의 기분이 중요하진 않은 사람이라서.
아빠는 ‘화장실 갔다가 금방 올거야.’하고 다시 돌아가지만 엄마는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자고 있어.’ 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라서.
아빠에게는 안정감을 느끼는 반면 엄마는 늘 불안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째보다 관심을 더 바라는데다 밥 먹는 시간도 긴 둘째 탓에 큰 아이에게 ‘기다려’, ‘잠깐만’이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무슨 말만 하면 기다리라고 하고, 무슨 말만 하면 잠깐만이라고 하고.
원체 혼자 잘 노는데다 특정한 것에 집착이 없는 아이라 엄마가 그렇게 말해도 크게 반응하지 않아서 괜찮은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반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체념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저러고 또 잊어버리겠지.
엄마는 어차피 말만 기다리라고 해.
떼가 적고 대화가 통하는 아이라 대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엄마를 체념해갔던 건 아니었을지.
남편은 비약이라고 했지만 오늘 하원 후 지켜본 아이는 엄마에게 별 기대가 없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생각을 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오늘은 아이의 부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평소처럼 안 되는 건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되, 아이가 두번 이상 엄마를 부르지는 않도록.
아무 생각하지 않고 누워있으려고 애를 쓰되, 아이에게 빨리 자라고 채근하지는 않도록.
그렇다고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 갑자기 짧아진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완전히 잠들고 나서 거실로 나온 내 마음이 편안했다.
화를 내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지도 않은 밤.
어쩌면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내게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하면서 오늘도 잠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3년차면 직장에서는 웬만한 업무는 다 파악한 중고신입일텐데.
3년차 엄마는 아직도 초보티를 못 벗은 어설픈 부류인가보다.